마지막 확인란
며칠이 지났다.
복귀 이후 사건 배정은 점점 줄어들더니 오늘은 배정이 없었다.
판결 콘솔은 늘 켜져 있었지만 화면에는 같은 메시지만 반복되었다.
[알림] 자동 권고문 실험 단계 진행 중 - 신규 배정 없음
빈 화면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처음에는 휴식 같았지만 이내 불길해졌다.
더 이상 내가 필요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 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어쩌면 이미 내가 '결과값'으로 존재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추가로 떠올랐다.
점심 부렵, 복도에서 동료를 붙잡았다. 그녀는 커피를 들고 있었고 눈 밑에 살짝 검어 보였다.
"혹시 너도 배정 멈췄어?"
동료는 살짝 웃었다.
"응. 요즘 자동 권고문이 바로 판결까지 이어지잖아. 우린 그냥 서명만 하면 되니까."
"서명만?"
"그렇지. 혹시 시스템이 틀릴 수 있잖아. 근데 솔직히 말하면 뭘 고칠 수 있겠냐 우리가"
동료는 어깨를 으쓱했다.
확인만 하고 서명만 한다. 프롬프터 직업도 이제 대체되는구나.
그날 밤, 대기 상태였던 콘솔이 갑자기 깜빡였다.
오랜만에 사건 배정 알람이 울렸다.
'''
[사건번호: 2091-SH-37153]
피고: (익명)
결손율: 100%
설명: Null Case 재시뮬레이션 - 모델 안정성 검증
'''
아무리 봐도 결손율 100%. 눈을 씻고 쳐다봐도 사건 설명은 그대로였다.
이번 사건은 평범한 결손율 보고가 아니었다.
화면이 자동으로 넘어가며 권고문이 떴다.
섬뜩함이 느껴졌다.
'''
[자동 권고문 제시]
"피고는 공동체의 질서를 반복적으로 의심했으며, 패턴 동기화율이 97.8%에 도달한 시점에서 더 이상 수동 판단이 필요하지 않음. 피고의 존재 자체가 시스템 안정성에 위험 요인으로 판단됨."
'''
그리고 마지막 줄.
'''
[판결 권고: ID-7341 - 격리 조치
'''
내 ID였다. 내 이름은 없었지만 이 사건의 피고는 바로 나였다.
모니터 불빛이 내 얼굴을 차갑게 비추었다.
머릿속에 지난 며칠간의 사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null case 의 보고서.
데이터 해방 전선의 메시지.
그리고 내 문체를 흉내 내던 자동 권고문.
나는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자동 권고문을 승인할 수도, 덮어쓸 수도 없었다.
이 선택은 기록으로 남는다.
그리고 이 선택은 아마도 내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커서가 깜빡였다.
시간이 길게 늘어졌다.
나는 숨을 들이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