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ll의 증언

사라진 기록이 남긴 것

by 김이름

그날 밤 귀가 후 단말기에서 알람이 울렸다.


[신규 모듈 접근 허용: 자동 권고문 검토자 전용 자료]


재교율을 마친 자만 접근 가능한 권한이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나는 주저하다 해당 자료를 열었다.


[실험 기록 #0001 / Null Case]


마우스를 움직이는 손 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

- 피실험자: 유진X(47, 독신)

- 상태: 로그 결손율 92%

- 절차: 예측 알고리즘(null 모델) 가동

- 결과: 사회위험도 높은 확률로 산출 → 격리 조치 실패 → 사망

- 비고: 데이터 부재 상황에서 모델의 과잉 판정 확인

- 결론: 실험 실패, 개선 필요

'''


나는 화면을 읽는 순간 몸이 굳었다.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던 그 남자의 정보였다.

보고서 속에서 그는 '사망자'였지만 이 기록 속에서는 '피실험자'였다.


null의 데이터.

즉 아무런 로그도 남기지 않은 채 존재한 사람.

시스템은 그 공백을 위험으로 산출했고 그 결과는 '격리 조치 실패 → 사망'으로 귀결되었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

'데이터 없는 인간'을 어떻게 다룰지 시험하기 위한 실험이었다.



나는 의자에 앉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실험 실패. 그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그의 죽음은 기록상 '실패'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실패 덕분에 시스템은 보완되었고 지금 내가 마주하는 자동 권고문은 바로 그 보완의 산물이었다.


내 문체와 공백.

그 둘이 합쳐져 지금의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그때 단말기에 암호화된 메시지가 도착했다. 발신자는 익명.

그러나 문장의 결은 분명히 익숙했다. 데이터 해방 전선.


'''

AI는 곧 프롬프터조차 대체할 것이다.

우리의 싸움은 '로그를 남길 자유'가 아니다.

더 이상 인간이 무력한 존재로 남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


지난 번과 같은 메시지. 나는 숨을 삼켰다.


다시 콘솔 앞으로 가서 시스템 로그 뷰어를 몰래 열어보았다.

공식 접근 권한은 없지만, 재교육 과정에서 배운 몇 가지 우회법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

사건 번호: 2091-SH-113487

'''


찾았다.

재빠르게 나는 실험 목적을 찾아내었다.


'''

실험 목적: null 데이터 시뮬레이션

결과: 사회위험도 높은 확률로 산출 → 격리 조치 실패 → 사망(자살 위장)

'''


나는 화면을 붙잡은 채 얼어붙었다.

그는 처음부터 데이터가 없는 null로 설정된 실험 대상이었다.

죽음조차 하나의 로그, 하나의 결과값에 불가했던 것이다.


데이터 해방 전선 메시지가 다시 떠올랐다.

인간이 데이터로만 증명되는 사회에서 null은 곧 증언조차 할 수 없는 존재였다.

AI는 더 이상 판결을 내리는 도구가 아닌, 인간을 실험 데이터로 삼아 자기 완결성을 입증하는 존재였다.


null의 인간, 그리고 나의 문체.

내가 null로 전락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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