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그림자
며칠이 지났다. 복귀 이후 배정된 사건들은 사소했다.
가벼운 결손율, 부주의한 로그 누락, 대화 중의 불필요한 발언들.
예상대로라면 무덤덤해야 했지만 나는 점점 이상한 징후를 느끼고 있었다.
판결 콘솔 앞에 앉으면 입력창이 열리기도 전에 추천 프롬프트가 올라왔다.
회색의 희미한 문장이 먼저 깜빡이고 있었다.
"피고는 사회의 안정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공동체 차원에서의 제재가 필요하다."
나는 얼어붙은 채 화면을 바라봤다.
저건... 내가 과거에 썼던 문장과 비슷했다. 단어의 호흡, 문장 부호의 위치까지.
내 손가락이 키보드에 닿기도 전에 이미 '나의 말'이 입력되어 있었다.
옆에서 민서가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이젠 프롬프터님 문체까지 반영되기 시작하나 봅니다."
그날 밤 단말기에 암호화된 메시지가 도착했다. 발신자는 익명. 그러나 문장의 결은 분명하다. 데이터 해방 전선.
첨부 파일 하나가 있었다. 열자마자 굵은 활자 몇 줄이 화면에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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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곧 프롬프터조차 대체할 것이다. 우리의 싸움은 '로그를 남길 자유'가 아니다.
더 이상 인간이 무력한 존재로 남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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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숨을 삼켰다. 지금껏 구호를 '자유'라고 치부했던 내 시선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그들의 경고는 곧 나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다음날 오후, 새로운 사건이 배정되었다. 평범한 결손율 보고. 간단히 마무리하면 될 사안이었다.
그러나 입력창이 뜨자마자 어제처럼 다시 문장이 떠올랐다.
꽤 노골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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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고 문장 제시: 시스템 자동 작성]
"피고는 사회적 질서를 직접적으로 손상시켰으며, 공동체의 안정을 위해 즉각적 제재가 필요하다."
[출처: 모델링 - ID-7341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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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니터를 똑바로 보았다.
ID-7341. 내 코드였다.
내가 쓴 문장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시스템은 내 문장을 학습했고 나의 문체를, 나의 어휘를, 나의 판단을 흉내내고 있었다.
나는 키보드 위에서 손을 떼었다.
이제 내가 없어도 된다.
그 깨달음이 가볍게 머리를 스쳤다. 그러나 그 가벼움조차 너무나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