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표를 몰라도 가수가 될 수 있어

Do - 슈프림팀

by 김이름

기숙사에서 나와 연구실로 가는 길, 오전 8시 30분 쯤에 이 곡을 들으며 비장한 마음을 먹는다. 아마도 서너시간 못되게 잠을 잤을 것이다. 기숙사에서 연구실은 그리 멀지 않았다. 걸음도 워낙 빠른 탓에 노래 세 곡을 채 듣기도 전에 연구실에 늘 도착했다. 개강 후 학생들이 캠퍼스에 시끌벅적하든 아니면 방학 후 텅 빈 거리를 걷든 관계없이 기숙사 방을 나서기 전부터 귀에 이어폰을 끼워 넣었고, 연구실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누가 나를 불러도 못 들은 척, 내 시야에 아는 사람이 걸려도 힘을 주고 못 본 척하며 10분동안 나를 충전시켰다.


대학원생 시절, 막내를 벗어나 이제 나의 업무를 도와줄 후배도 생겼고, 루틴도 몸에 익어 딱히 육체적으로 힘든 건 없었다. 하지만 멘탈은 너무나도 나약했던 그 당시의 나는 정신적으로 고된 연구실 생활을 버티게 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올림픽과 같은 큰 대회에 참전하는 선수들이 경기 전에 힘이 되는 노래를 듣듯이, 나도 연구실 출근길에 정신력을 다듬는 그런 노래를 들었고 그때 이 곡은 반드시 포함되었다.




각종 매체에서는 20대를 뭐든 할 수 있는 시기라며 20대 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들, 20대 때 반드시 가봐야 할 곳 Top N, 20대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 등을 내세웠고, 당시 나는 20대 중반을 향해 가는데 20대가 끝날 때까지 몇 년이 남았는지 세어보면서 괜시리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반드시 20대가 해야 할, 가야 할, 먹어야 할 것들이 아무것도 생각나지는 않지만 나의 그 시절은 몸빵(?)으로 버텼다. "젊은 놈이 힘까지 빠져있으면 다 끝장 / 노력하는 만큼 방황하는 법 이겨내고 웃어" 라는 가사를 곱씹으며 여기서 포기하면 나중에 아무것도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비장함으로 하루하루를 지냈다. 하루 서너시간 자고 주말에도 출근하며, 타지역 출장이라도 있는 날에는 KTX에서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라는 기쁨에 기차에서 자기 위해 밤을 세워 연구와 일 사이의 무언가를 했다.


음표를 몰라도 가수가 될 수 있고, 색깔을 몰라도 화가가 될 수 있으며, 글자를 몰라도 작가가 될 수 있는 것. 이 전부는 너무나도 큰 위안이 되었던 것이다. 노력만 하면 다 될 수 있다니. 노력이 배반이라는 얼굴을 보였던 것은 30대가 지나서부터 였던가? 그래서 더 이상 이 노래에 감흥이 없는걸까? 어쨌든 그 당시에 20대 인생의 정점을 찍기 위해 밤잠을 설쳤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은 여러 편의 교수님의 발표 자료, 연구 용역 제안서, 중간 보고회 자료, 최종 보고서.

또 나의 초록 발표 자료, 최종 연구 논문, 석사 학위.

그리고 연구실 제주도 엠티 계획표, 스키장 엠티 계획표.

연구실 회식 때 노래방에서 분위기 띄우기 위해 불러야 할 노래 리스트.

마지막으로 연구소 취업.

나열하고 보니 결과물이 꽤 실망스럽다. 아무리 20대가 해야 할 To do list가 생각이 안나지만 위의 결과물 완성하기는 없었던 것 같은데.


20대 초중반을 열심히 갈아 넣은 나는, 석사 학위를 받고 나서 취업을 한 후에 더욱 불안정해지기 시작했다. 30대까지는 몇 년 남지 않았는데 내가 20대에 이룬 건 도대체 뭐지? 난 뭘 하면서 젊음을 허비한거지?

뭔가 특별한 걸 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20대 후반에 두드러지게 나타났지만, 그 전까지 이 곡은 나에게 대학교 3,4학년 + 석사 학위 2년, 도합 4년의 시간을 4시간씩 잠을 자며 버티게 했던 출근길의 음악이었다.

이전 01화인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