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가 내 꿈의 근처라도 가보고는 죽어야지 싶더라고

Always Awake - 빈지노

by 김이름

새벽 2시는 이 노래를 듣기에 딱 좋은 시간이다. 학교가 시끌벅적한 아침부터 오후까지는 수업을 들으러 가거나 산학협력단이 업무를 하는 시간이기에 연구비 처리에 열을 올리다가, 날이 어둑해지는 시간부터 나의 연구에 본격적으로 집중한다. 나에게 잔소리를 하던 방장도, 심부름을 시키던 선배들도 모두 각자의 연구에 돌입한다. 약속이라도 한듯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밤 11시가 넘어가고 12시쯤 되면 막차를 타기 위해 퇴근하는 사람들이 속속 등장한다. 이곳이 회사였다면 얼른 도망쳐야 할 망한 워라벨이지만 대학원은 이런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새벽 한 시가 되면 거의 사람이 남지 않거나 나 홀로 남는다. 마지막에 연구실을 나서는 선배가, 늦은 시간이 되면 이상한 남자가 건물을 돌아다닌다고 하니 문 꼭 잠그고 있어, 라는 말을 남기고 기숙사로 돌아간다.

나는 이 때 기지개를 쭉 피고 일어나 맥심 커피를 뜨거운 물에 녹인다. 여름에는 물을 아주 적게 넣고 최대한으로 커피 가루를 녹이고 얼음을 쏟아 넣어 시원하게 만든다. 혼자 남는 게 무섭지는 않다. 옆 호실에 위치한 많은 연구실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남아있기에, 화장실을 가기 위해 복도로 나서면 불이 켜져 있는 옆 방 창문에다가 혹시 제가 이상한 사람을 만나서 소리지르면 나와주세요 하고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자리로 돌아와 다시 의자에 앉기가 겁이 난다. 오전 9시부터 새벽 1시가 넘을때까지 나는 이 공간, 이 자리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지만 한 자세로 다시 오래 앉아있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막막해져온다. 이때 나는 이어폰을 끼고 Always Awake를 재생한다.


이 노래를 듣는 순간 뇌가 각성하며 노트의 새 페이지가 펼쳐지듯, 컴퓨터가 재부팅되듯 머리가 깨어난다. 내가 돌보는 연구를 바라보며 이 과제가 죽이 되더라도 취침 시간을 뒤로 미뤄야 한다는 다짐을 한다.




시간에 뒤쳐지거나, 같이 뛰거나 선택하라면 난 신발을 신을거야.

(맥심) 커피를 한 잔을 비운 다음에, 심박수를 키운 다음에, 한숨을 쉼표처럼 찍고 다시 한밤중에 싸움을 해.

왜냐면 난 내가 내 꿈의 근처라도 가보고는 죽어야지 싶더라고.


이 가사가 흘러나올때마다 마음을 다잡는다. 한 곡 무한 반복이기 때문에 3분 간격으로 결심을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직까지 내 숨이 붙어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내가 저 시간을 버텼다니.




하지만 당시의 나는 버틴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재미있었다. 데이터를 정제하는 과정이, 분석을 위해 짜는 프로그래밍이, 결과를 시각화하기 위해 색깔 팔레트를 선택하는 시간이.

문서 툴을 열고는 보고서 제목을 넣고 흘러가는 대로 내용을 작성하고 결론으로 대충 마무리를 한다. 그리고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 상세하게 내용을 추가한다. 그리고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 표와 분석 그림을 넣는다. 그리고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 오타를 확인한다. 그리고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

어떤 날에는 이런 업무를 하는 내 자신이 멋져보이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이 끝이 난다면 그 순간 내가 기억할 만한 건 잠에서 깬 나일 것 같다는 가사가 이제야 와닿는다. 잔소리를 하는 방장의 가시같은 말이, 질문을 하면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선배의 눈빛만이 뇌리에 박힐 줄 알았는데, '연구실 생활'이라는 키워드가 주입되면 자동문처럼 기억의 문이 열리고 이어폰을 귀에 꼽는 나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즐기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나 뿐만이 아니라 내가 있던 연구실과 연구실이 있던 건물의 새벽에 불이 환하게 켜진 모든 랩실 사람들이 그랬다. 이 글을 쓰는데 새벽에 불이 꺼진 복도에서 마주치면 고생해라- 하는 옆 연구실의 선배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과거의 어느 날, 어느 때와 다름없이 모두가 퇴근하고 커피를 한 잔 타서 자리에 앉아 이어폰을 집어 들며 "이 노래를 이 시기에 만난 건 정말 행운" 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격한 운동을 할 때면 가끔 이 노래를 찾는다. 하지만 연구실을 졸업한 이후로 그만한 각성이 도통 생기질 않는다. 이 곡을 재생하면 흘러나오는 것은 내가 낡은 건물 안에서 밤새 모니터와 씨름하는 모습 뿐이며, 추억에 잠겨 오히려 힘이 쭉 빠질 뿐이다. 추억에 잠식되기 전에 얼른 엊그제 나온 아이돌 신곡으로 노래를 바꾼다. 내가 아끼던 노래에서 더 이상 힘을 얻을 수 없는 건 왜일까. 이 글의 시리즈를 작성할 때 쯤엔 답을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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