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 - 어반자카파(feat. 빈지노)
폭식하듯 책을 읽어가던 시절이 있었다. 살아가는 것에 대한 해답이 필요했다. 우연히 책에서 마음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던 때, 어떠한 울림이 도파민처럼 터져나왔고 뇌에서 강한 스파크가 등줄기를 따라 심장에서 팍-하고 튀었던 강렬한 자극을 느꼈었다. 한창 고민이 많던 시절 그렇게 침대 속에서 책만 읽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게임 튜토리얼 같은 학창시절이 끝나고 고등학교 졸업 직후 우리는 오픈 월드에 떨어진다. 의무교육까지는 (모든 사람들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조작법이나 규칙을 학습한다. 그리고 세상은, 자 이제 조작법은 익혔지? 그럼 게임을 시작하지. 라며 기본 아이템이 장착된 나라는 아바타를 세상에 소환한다. 캐시 충전이 된 친구들과 기본템으로 현실의 몹을 처리하며 하나하나 템을 장착해가는 친구들과, 그리고 대체 무슨 템 조합이 저러지? 라고 느끼는 친구들과 부대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나는 플레이를 소심하고도 조심스럽게 하는 편이기에 게임 진행이 더뎠다. 우리 모두는 몇 개의 하트(life)를 가지고 시작했을까? 세상속에서 나를 조작하며 맞이하는 많은 고난은 내 하트를 깎아 먹고 있지만 아직은 살아있다(!). 우리는 모두 스탯이 달라서 그에 맞는 능력치에 따라 가진 하트가 다를지도 모르겠다. 친구들과 함께 인생의 맵을 확장하다보면 서로 모험하는 길이 달라 헤어지고 모험 중 새로운 사람을 마주쳐서 함께 떠나다가 또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지내왔다. 어찌됐든 플레이를 하던 초반에는 이 게임(이 아니라 삶)에서 클리어 해야 할 목표가 대체로 정해져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많은 고수들이 알려주는 팁대로 클리어하면 어렵지 않게 진행할 수 있다며 공략집이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대학교에서는 학점을 잘 받을 수 있는 수강 과목을 이수하고, 가능하면 교환학생이나 해외 연수를 다녀오고 토익은 몇 점을 받아오는 등 준비를 하는 것, 그래서 이를 바탕으로 어떤 기업에 지원을 할 것 등의 공략이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나이에 따른 공략집도 존재했다. 이 공략집이 제일 유명세를 탔다고 생각했다. 고수들은 몇 살 안에 결혼을 하라고 했다. 그 후에 자녀는 언제 낳을 건지, 몇 명 낳을 건지를 물어보고, 상세한 공략을 내세우는 사람은 자녀의 학군을 위한 아파트 매매법도 가이드 한다. 세상에 나와있는 이러한 공략집은 십년 전만해도 대체로 비슷한 결이었다.
나는 이 공략집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이 가이드에 대해 의문점이 많아서 아주 많이 들여다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한 나는 호락호락하게 이런 안내문을 따르지 않았다. 정확히는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인생 초반에는 컨트롤이 매우 미숙했기에 여러 실수를 반복했다. 그리고 이제야 기본적인 컨트롤이 익숙해질 때쯤이 되어서야 공략집들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여러 종류의 공략집을 살펴보았는데 내가 살아온 방식과 공략집에서 초반에 안내한 방법이 너무나 달라서 인생 진행이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에서라도 이 공략을 따르면 잘 살아나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 시점에 만난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공략집에 따르면 대학원 졸업 후 이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한다고 나와있다. 평소에 결혼을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막연하게 결혼은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때가 되면 결혼을 하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인걸까? 드라마를 봐도 커플이 이루어지는 걸 보여주지만 그 이후의 삶은 보여주지 않았다. 어디서도 깔끔한 해답을 찾을 수 없었기에 수많은 고민 끝에 나는 이 공략집은 따르지 않겠다고 결심 후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그 다음 공략집이 또 있다. 평생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다. 첫 직장은 공무원은 아니었지만 무기계약직이라면 평생 직장으로 쳐주나? 라고 생각하며 회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석사 연구원이었기에 이 분야의 룰에 따르면, 박사 학위까지 받지 않는다면 연구를 하며 평생 남아있을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숙제가 주어졌다. 숙제에 대한 답을 적어내려가기 전에 급작스럽게 퇴사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계획에 없던 공무원이 된 이후에는 공략을 공유해준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일을 하면서 평생 직장에 대한 의문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내가 정년 퇴직 전에 불의의 사고로 게임 오버가 떨어진다면 아무 의미가 없겠지만, 60대가 되어 퇴직을 했다고 가정했다. 그 이후에 나는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벌써) 막막했다. 내가 80대까지 살아남는다면 20년동안 어떻게 벌어먹고 살지 싶었다. 결혼은 계획에 없으니 자녀가 나를 부양할 수는 없으며, 이것 때문에 결혼을 하기로 전략을 바꿨다 해도 자녀들이 나를 부양해줄지 의문이다. 지금의 수익으로 저축을 하면 남은 생을 살아갈 수 있을지도 감이 오지 않는다. 내가 살 집을 간신히 지역 상관없이 마련했다 치더라도 노후에 병원이나 마트 등의 인프라가 좋은 곳의 동네에서 살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내리기 어려웠다. 로또라는 치트키가 먹힌다면 큰 고민거리는 아닐텐데 말이다. 차라리 하루라도 빨리 내가 하고 싶은 일과 그 업에서 파생되는 것들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까지 미친 뒤에 공무원 면직을 결심했고, 인생 고수들의 안타까운 눈빛과 함께 모든 굵직한 공략집을 덮었다.
지금의 나는 ‘공략집을 보지 않고도 인생을 플레이 할 수 있는 법을 안내하는 공략집’들을 읽고 있다. 순수하게 하고 싶은 걸 그냥 할 만한 배짱은 없는 듯 하다. 그렇기에 책이라는 수단을 통해 몇 개의 해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발견 한 이후로 가끔은 내가 떠올리는 것들을 먼저 시도해본 고수들의 후기를 찾아보기도 하고, 내 혼란한 마음을 대변하는 문장을 발견하는 재미로 픽션들을 읽고 있다. 내가 읽고 있는 공략집을 쓴 사람들이 당부하는 공통적인 말이 있다. 확실히 말하건데 정답이 꼭 있지는 않다고. 그러니까 너도 내 말을 전부 다 믿지는 않아도 된다고.
옛날부터 듣던 이 노래는, 하고 싶은 대로 살기에는 겁이 나서 세상의 잣대에 맞춰서 살아가야 하는가라고 현실에 타협하려는 나에게 정신 차리라고 일깨워줬다. 흔하디 흔한 "하고픈 걸 해, 가지고 싶은 걸 그냥 가져" 라는 가사가 훅에서 반복되지만 어찌보면 가장 단순한 말이 주는 힘이 큰 용기를 가져다 준다.
이제는 이미 그려진 지도 따위는 필요 없다. 이 게임에는 정답은 없고 내 인생의 맵은 내가 그려나가면 되는 것이다. 뭐 가끔 저 사람은 어떻게 그렸나, 뭘로 그렸나 흘끗 커닝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