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이 충분해 평생 안 보던 드라마의 결말이 궁금해

고마운 숨 - 타블로(feat. 얀키, 봉태규)

by 김이름

저는 언제쯤 잘 풀릴까요?


몇 주 전에 구입한 책 제목이다. 신점/사주와 관련된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내용인데 가볍게 읽기 좋을 것 같아서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고, 친구가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 장 채 넘기지 못하고 나는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당황한 친구는 꼭 자기가 울린 것 같다며 당장 눈물을 그치라고 했고(?) 아무래도 사연있어보이고 싶지가 않아 카페 티슈를 몇 장 적시고 나서 책을 마저 읽었다.




엄마의 자매 중에서 한 분이 신점을 보러 다니셨고 엄마가 한번 따라간 적이 있었다. 신점인지 철학관인지 잘 모르겠지만 한동안 엄마는 이모와 함께 그 지역의 용하다는 곳은 여러 곳 방문하셨던 것 같다. 한번은 내가 대학교 자퇴로 인해 고민을 하던 때였다.


"이름아, 엄마가 철학관 가서 물어봤는데 그만두지 말래. 다시 돌아갈거라더라. 그러니까 참으렴."


"엄마는 그런 걸 믿어? 그럼 모든 사람들이 다 철학관이랑 신점 보면서 살면 되겠네!"


라고 소리치며 자퇴를 강행했고, 그렇게 세 달을 못 채우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게 되었다.

집을 떠나는 그 날까지, 엄마는 -그러게 엄마가 뭐랬니! 를 시전했고, 나는 -그건 내가 결정한 거라고! 하고 반항하며 다시 집을 떠났다.


내가 엄마라면, 그렇게 용했다면 철학관과 신점에 의존했을텐데 그 이후로 엄마는 이와 관련해서 따로 말씀을 안꺼내시는 걸 보니 더이상 미래를 점치러 다니시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미래를 보는 게 무서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셨을지도 모르겠다. 딸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긴 하는데, 내가 많이 불안해보였다고 했다. 다 지나고 나서 하신 말씀이지만, 엄마는 내가 좋지 않은 생각을 할까봐 연구실에 매 겨울마다 귤을 몇 박스씩 보내면서 내 주변인에게 내가 잘 보일 수 있도록 힘써주셨다. 어째저째 졸업을 하고 바로 취업까지 이어서 하게되었다.


하지만 취업 후에도 나의 불안정한 마음은 잠잠해지기는커녕 심하게 요동쳤다. 그 무렵 아버지가 편찮아지셨고 아버지 간호와 걱정에 마음을 쓰시는 엄마에게 부담이 되기 싫어서 꾹꾹 감정을 눌러담았다. 이 시기에 참 많이 들었던 노래였다. 에픽하이의 열꽃 음반은 대체적으로 어두웠고 모든 노래가 나를 진흙의 바닥까지 눌러 내릴 때, 이 곡이 나오면 살짝 삶의 희망을 보았다. 당시에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가사들이지만 살면서 이런 날이 진짜 있기나 하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일은 내 우울에 크게 자극이 되지 않았다. 이미 깊은 우울 속에 있기에 아버지의 장례식에서부터 지금까지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다. 죽음이란 항상 내 발 밑에 따라 붙은 그림자처럼 동반하여 지내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후 직장 생활을 이어나갔지만 엄마는 나를 고향으로 호출하였고 삶에 지칠대로 지친 나는 본가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냥 공무원이나 해서 소소하게 살아가야지, 라는 생각으로 어느정도 휴식을 취한 후 다시는 전공 쪽으로 쳐다도 보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며 핸드폰 번호도 바꾸고 공부를 시작했다. 내 인생에서 두 번째로 행복했던 시기를 꼽으라면 바로 이 때였다. 사람들 사이에서 기 빨릴 필요 없이 오로지 공부에만 파묻혀서 어느날은 내리 앉아 14시간동안 수험서를 보기도 했다. 이공계 과목만 공부하던 내게 행정과 국어, 한국사, 영어는 새로운 세계였고 예상했던 수험기간보다 빨리 임용되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잠식해온 우울감은 쉽사리 떨쳐지지 않았다. 가족과 함께였지만 그것도 편하지 않았다. 내면 속의 풀리지 않는 질문, 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알고 싶었다. 해답을 도출하지 못할 즈음엔 죽음에 가까워질 수 있는 계획들을 의사 선생님 앞에 털어놓고 한층 더 무거운 약봉지를 받아들고 돌아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결코 한 사람이 처리하기 버거운 업무를 배정받고는 이대로면 죽을 것 같아서 면직을 했다는 점이다.


다음 직장을 위해 공부를 시작했고 두 가지의 길 앞에서 고민이 시작되었다. A라는 직업을 가질까, B라는 직업을 가질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려면 현재 다니던 국비학원 커리큘럼을 통째로 바꿔야 하기에 당시에는 큰 갈림길이었다. 친구는 기분전환겸 가볍게 타로를 보라고 했고, 제대로 타로를 봐본 적은 없기에 반신반의하며 타로집을 찾았다.


친구 소개로 간 곳은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를 받아 사주를 기반으로 타로 리딩을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웬걸, 타로 선생님은 A라는 직업과 B라는 직업을 처음 들어보신 것이다. IT 및 데이터 분석 쪽의 직업은 잘 모르셔서 적잖이 당황하는 눈치셨다. 사주와 선택한 카드 느낌대로 갈테니 일단 골라보라고 하셨고 선생님께서는 그 결과를 읊어주셨다.


"둘 다 해도 상관은 없어요. 뭘해도 다 잘 할거에요. 내년 돌아오는 생일쯤부터 대운이 시작하기 때문에 잘 풀릴 것 같네요."


당장 A를 선택하느냐 B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수업 과정이 달라지는데 뭘 해도 상관이 없다니. 조금은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하지만 타로 결과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기에 그날 친구와 근처 가게에서 점심 겸 저녁을 배불리 먹고 돌아왔다.


타로 결과를 잊을 무렵, 여러 곳에서 면접 제의가 왔고 하루하루 정신없이 면접을 보러 다녔으며 최합을 하여 전직에 성공했다. 그때가 바로 생일 한 달 전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이후부터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내가 선택한 직업은 결국 A도, B도 아니였고 개발자였다. 개발 경험은 없으나 시대 흐름을 잘 타고나서 AI를 이용해 회사 서비스 몇 개를 런칭했다. 한 줌이나 되던 우울증 관련 약도 점점 줄더니 의사 선생님의 권고 하에 중단 되었다. 처음에 의사 선생님이 처방전을 보시고는 이만한 양을 먹었다고 놀라셨는데 이젠 병원도 다니지 않는다. 그 다음에는 내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과거에 고마운 선후배와 동기들, 지금 옆에 있는 친구들에게 처음으로 감사함을 느꼈다. 점점 하고 싶은 게 많아졌고 더 늦기 전에 시도해보고자 직장을 그만뒀다. 실행에 옮긴 모든 것이 실패한다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마음가짐에 내 중심에 자리 잡을 무렵 이 노래가 다시 떠올랐다.


나를 숨쉬게 하는 건 잔잔한 비, 친구와의 달콤한 시간낭비, 붉은 꽃 푸른 꽃 새벽의 구름 꽃, 사랑이란 정원에 흐드러지는 웃음 꽃, Bloom 내 마음의 휴식, 제주도의 바람과 서울 밤의 불빛..


왜 살아가느냐에 대한 답을 찾았냐고 한다면, 사실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태어났기에 살아가는 것이고 어차피 사는 것이라면 주위에 행복한 것들만, 기분 좋은 것들만 두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괜찮다. 사소한 것이 사람을 이만큼 행복하게 하다니. 가성비가...


미래가 궁금하지 않았다. 나에게 미래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상영되는, 엄마가 보고있는 저 드라마는 어떻게 끝날지 마지막이 기대가 된다. 음악은 듣기도 불편했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이 자꾸만 앨범을 내고, 노래를 들으며 친구 옆에서 큰 소리로 따라 부를때면 또 시작이라는 표정으로 저만치 앞장서 가버린다.


이제야 이 노래가 와닿는다. 과거의 나는 이해되지 않았던 모든 감정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타로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운이라는 시기가 정말 있는걸까? 다른 신점을 또 본적이 있었는데, 직장 얘기 꺼낸적도 없는데 나보고 앞에 두 직장을 최대 3년씩 다녔었다면서 이 다음 직장도 오래 못다닐거다, 무당 말 듣고 반감 가져서 버텨봤자 또 3년이라고 했는데 역시나 1년 채우고 퇴직했다. 뭘까. 나는 신점과 타로, 사주에 쉽게 간파 당하는 사람일까? 알게 뭐람. 이제야 살만한데. 이제야 세상이 재미있는데.






저는 언제쯤 잘 풀릴까요? 를 읽고 카페에서 울었다고 글 서두에 얘기를 꺼냈었지 참. 눈물이 터진 대목이 이러했다. 서점을 운영하던 작가분이 장사가 되지 않아 신점을 보러 갔는데, 이 분의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셨다고 했다. 어머니가 병 중에 돌아가시고 일년 반 뒤였는데, 그 작가 분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울음이 터졌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신기하게 읽었다. 그런데 그 분이 말했다. "저희 엄마 이제 괜찮으시대요?"

돌아가신 아빠가 생각이 났고, 대충 사연을 알고 있던 친구는 나를 혼자 둘 수가 없어서 집까지 함께 와주었고 집에서 남은 울음을 마저 뱉어냈다. 아빠가 보고 싶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에 대한 첫 눈물이었다.


우울할 때에도 울지 않았던 내가, 이제 마음의 여유가 생긴듯하다. 까마득하게 잊었던 웃음과 눈물의 느낌을 되찾고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도와준 많은 조력자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아직은 챙겨야 할 빈 공책이 많아. 챙겨야 할 형 동생이 많아. 묻지 못한 질문이 너무 많아. 듣지 못한 답이 남았잖아.


이 가사와 함께 물음표와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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