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것들 - 병살(feat.이소라&빈지노)
살아가면서 내가 무언가를, 또는 누군가를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은 얼마나 될까? 우리는 하루하루 불확실함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어제와 비슷한 하루가 시작되는듯 하면서도 어제와는 또 다른 하루가 펼쳐진다. 그렇게 시작된 하루는 어떻게든 흘러간다.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 모여 삶이 되고,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계속 반복되고 있다.
딱 한 달만, 딱 일주일만, 그게 아니면 단 하루만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시기가 있었다. 하루가 시작되는 것을 멈추고 아무도 나에게 개입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아무 생각없이 쉬고만 싶었다. 난 아직 이런 세상의 루틴에 참여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내가 올라탄 햄스터 쳇바퀴는 계속 돌아갔고 그 안에서 꾸준히 달리지 않으면 세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어 열심히 발을 놀렸다.
숨막히던 시절은 지났다. 당장에라도 죽을 것 같은 시기는 정말 어찌되었건 간에 살아졌다. 그 당시에도 어찌됐던 하루가 저무는 날 침대에 누울때면, 하루를 넘기긴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위안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등바등 지내며 내가 획득한 그날의 기쁨, 슬픔, 분노, 우울, 그리고 오늘 들어온 월급, 새로 산 옷, 내 곁의 사람들, 이 순간, 그리고 내 자신 모두 언젠가 사라진다. 열심히 살아서 쟁취한 그날의 부산물들은 보자기에 싸서 어깨에 지고 저승으로 갈 수 없다. 어차피 공수레 공수거인데 이렇게 치열하게 사나 싶었다.
그렇다면 이 둘의 균형을 잘 맞추면 된다. 하지만 누구든 이걸 몰라서 못하는 건 아니지 않나. 아침 일찍 일어나 오늘은 이런 일을 하고, 누구를 만나고 계획을 짜지만 결국 불확실성에 의해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곤 했다. 그럴 때면 오늘 하루도 망했구나 하는 자책을 한다. 반복되는 나날 중 어느날 귀에 꽂힌 이 가사는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돌아보는 하루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것으로 자신을 책망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준다. 나 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서툴고 또 미흡하다고 괜찮다고 말한다. 고민이 생기면 방법을 찾아주는 위로를 좋아하지만, 이렇게 해보라고 저렇게 해보라는 둥의 제안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렇다는 말이 힘이 되는 날이 있다. 그래서 '여다그살 ㅡ 여기 사람들 다 그렇게 살아' 라는 말을 내가 좋아하는가 보다.
기상학과 출신으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있다.
"인생이란 건 창밖의 날씨 같지. 난 누워서 그냥 바라볼래."
날씨를 예측하는 일을 했고, 내일 비는 몇 시부터 몇 미리가 오기 시작해서 몇 시쯤 그칠 예정이고 그 뒤 기온은 어느 정도 떨어질 것이다, 를 전망하거나 올 여름은 평년보다 기온이 높고 강수가 보통이라는 계절 예보를 도맡았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강수는 단 하루 조차도 정확히 3시에 오기 시작해서 6시에 그친 적이 없었다. 대체로 그러겠거니 하는 확률이며 아예 틀릴 때도 있다. 지금은 사람들과 함께 기상청 예보가 틀리면, 입을 모아 욕을 하지만 실무자로 일을 한 적이 있기에 사정을 알고 있다. 날씨는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삶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예측의 오차는 왜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과거의 습관이 아직도 이어져 하루에 세 번 이상 기상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일기도를 보곤 한다. 하지만 그저 전망하고 관망할 뿐이다. 내 삶도 그렇게 변했다. 통제할 수 없는 인생의 날씨를 그저 누워서 바라보고 있다. 굳이 애쓰기보다는 비가 오면 집에 있고, 외출을 해야 한다면 조용히 욕 한번 뱉고 최대한 바지가 젖지 않게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선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 애쓰기보다는 받아들이고 주변 사람들과 그 길을 함께 걷는다.
'함께' 라는 말에 상당한 책임감을 가질 때도 있었다. 관계를 지키려 애썼지만, 어떤 인연은 쉽게 사라져간다. 그땐 내가 뭘 잘못했나 곱씹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인생의 구조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혼자가 되나 싶었지만 주위에는 사람이 많이 있었고, 지금은 이 불확실한 삶 속에서 이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며 순간 순간을 의미있게 보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뭐, 꼭 의미가 있진 않아도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