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 육각수 냉장고
드디어 우리 집 냉장고가 바뀌었다.
그 동안 쓰던 냉장고는 무려 골드스타, 그러니까 금성 냉장고였다.
초딩 시절 오래오래 쓰던 작은 냉장고를 버리고 당시 최신형이던 육각수 냉장고를 새로 샀었는데 어린 눈에 얼마나 커 보이던지 음식을 아무리 넣어도 다 못 채우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크고 튼튼하던 냉장고가 최근 들어 문도 잘 안 닫히고, 소리도 시원치 않은 것이 이러다 한여름에 고장나면 골치 아프다 싶어 부랴부랴 새 냉장고를 사게 된 것이다.
사실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가전제품에 큰 관심이 없는데, 중학교 때 사진으로 처음 본 양문형 냉장고에 반해 툭하면 엄마한테 우리도 월풀 냉장고 사면 안 되냐고 물어보곤 했었다.
그때마다 존중받지 못하던 내 의견이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빛을 발한 것이다.
(물론 월풀 냉장고를 사진 않았다.)
냉장고를 20년 넘게 썼다고 하면 사람들이 다 놀라는데 냉장고 뿐 아니라 우리 집은 어떤 물건이든 한번 사면 쉽게 버리는 법이 없다.
전자렌지는 3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여전히 먹다 남은 피자며 편의점에서 사온 떡볶이 등을 데울 때 충분히 자기 몫을 잘 해 내고 있다.
뒤통수가 뚱뚱하던 텔레비전 역시 20년 가까이 쓰다가 결국 화면이 틀어져 몇년 전에야 새로 장만했고, 여전히 우리 집 텔레비전은 새것처럼 느껴진다.
나 역시 보고 자란 게 있어서인지 뭔가를 한번 사면 굉장히 오래 쓰는 편인데 굳이 고장이 없으면 바꿀 이유가 없기도 하지만, 일단 익숙해지고 나면 그 물건에 정이 들어서 선뜻 내다 버리기가 너무 어렵다.
(아이폰 5야, 잘 버텨 줘야 해!)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하교길에 깡통을 걷어차며 집까지 걸어오다 보면 그 깡통에도 정이 들어버렸다던 해영이의 대사를 들으며, 즐겨 쓰던 머리띠를 깔고 앉아 망가뜨리는 바람에 머리띠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눈물 글썽글썽하던 어린 시절 내가 떠올라 피식 웃었다.
이번에 냉장고를 바꿀 때에도 겉으로는 '고물 냉장고 바꾸니 속이 다 시원하네' 하고 말하긴 했지만, 서운한 마음에 손잡이를 몇번이나 쓰다듬었는지 모른다.
*새로 산 냉장고는 역시 성능이 너무 좋아서 문만 열어도 마트 냉동 코너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아주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