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를 건너다 문득 생각이 났어.
며칠 전, 종합운동장에서 2호선을 타고 삼성역으로 가려다가 나도 모르게 출구 밖으로 나와 버렸다.
마침 날씨도 좋고, 한 정거장이니 그냥 걷자 싶었다.
종합운동장에서 삼성역으로 걸어가려면 꽤 긴 다리를 지난다.
이 다리 이름이 삼성교라는 건 얼마 전에 알았고, 그 전까지는 그냥 내 마음대로 탄천다리라고 불렀었다.
탄천다리를 처음으로 걸었던 건 스무살 무렵이었다.
그 날은 꽤 쌀쌀했고, 늦은 가을이었다.
종합운동장에서 프로야구 경기를 보고 나서 지하철 역을 향해 걸어가는 내게 그 아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금 여기서 지하철 타면 사람이 엄청 많을 거야. 삼성역까지 걸어가는 게 어때?"
좋은 생각이었다.
둘 다 길을 잘 몰라 표지판을 살펴 가며 삼성역 방향을 향해 걷다 보니 탄천다리가 나왔다.
친한 친구 사이였지만, 그날은 뭔지 모르게 어색했고, 둘다 말이 없었다.
그렇게 조용히 탄천다리를 건너는 도중에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세차게 내리진 않았지만 그냥 맞고 가기엔 조금 부담스러운, 그러니까 적당히 내리는 비였다.
그 아이는 가방에서 우산을 꺼냈고, 우리는 함께 우산을 썼다.
사실 내 가방 속에도 우산이 있었지만, 자연스럽게 우산을 나누어 쓰는 그 기분이 좋아 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비가 조금씩 많이 내렸다.
내 오른쪽에 서서 왼손으로 우산을 들고 있던 그 아이는 조심스럽게 우산을 오른손으로 옮겨 잡더니 왼팔로 내 어깨를 감쌌다.
난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주먹을 꼭 쥐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이었다.
아, 우리 이제 곧 특별한 사이가 되겠구나, 생각했던 것이.
그로부터 며칠 후, "우리 사귈래?" 라는 고백을 들었고, 그날부터 우리는 정식연인이 되었지만
나는 탄천다리 위에서의 그 비오던 밤이 진짜 우리 사랑의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