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현, 삼중통역자> 전시를 보고
반도의 끝자락에 있는 시가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국립현대미술관의 청주관에 들렀다. 덕수궁 분관에서 휴관 중에 막을 내린 <박래현, 삼중통역자> 전시를 보기 위해서였다.
박래현은 누구?
그의 이름은 낯설어도 운보 김기창의 이름은 다들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만원 지폐에 세종대왕을 그려넣은 사람, 바보산수로 유명한 근현대의 한국화가 김기창. 박래현은 그 자신 또한 화가이자 김기창의 아내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만약 박래현이 50대에 안타깝게 세상을 하직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수식어가 서로 바뀌었을까? 박래현의 남편, 김기창. 아마도 시대가 허락하지 않았을테지만 박래현은 확실히 화가의 아내, 훌륭한 내조로 신사임당상을 받은 여인으로만 기억되기에는 아까운 대가이다.
육아와 가사와 예술
1920년에 태어나 일본에서 유학한 미대언니였고, 신랑감이 청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끝끝내 부모가 반대한 결혼을 밀어붙인 걸크러쉬. 전시 초반에 소개된 그의 결혼의 변을 보자.
"솔직히 말하여 말 잘하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 오히려 불충분한 언어로 상대방과 의지를 통하게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어느 안도감 같은 것을 안겨 주었고, 또 하나 결혼 후 계속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자는 결심은 두 사람의 결합에 큰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남편 시중기, 1962
자신의 예술세계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합의에 도달한 결혼. 하지만 이 우월한 근대의 워킹맘에게도 육아와 가사는 시간을 야금야금 갉아먹는고된일이었으니, 그가 쓴 남편시중기 등에 그 고민과 고역이 문장마다 드러나있다. 잔뜩 뿔이 난 색색의 부엉이 그림 “화난우향”은, 아이 넷과 남편의 뒤치닥거리로 하루를 보내고, 식구들이 모두 잠든 밤에야 비로소 붓을 들 수 있었던 그가 자신을 부엉이라 부르며 생활과 예술을 병행했던 고충을 너무나 잘 드러내주고 있었다.
유학
그는 40이 넘어 홀로 유학길에 오른다. 자그마치 7년이나 가족을 두고 예술 세계에 몰입했다. 작은 전시실에서 몇 걸음을 옮기는 것만으로 그 시간을 압축해서 경험해서일까. 놀라웠다. 넓은 세계를 만난 그는 정말 이무기였다가 용이 된 전설의 캐릭터처럼 거침없고 눈부셨다. 강렬한 금빛과 붉은 색을 사용한 (실은 금빛이 아닌데도 그렇게 느껴지는) 추상화는 토속적이면서도 이국적이고 강렬하면서도 포용력이 느껴졌다.
한 예술가의 화풍이 이토록 짧은 시간에 이토록 변화무쌍하면서도 완벽하게 아름다운 것을 본 일이 드물다고 말하면오버일까. 일본에서 유학했지만 해방 후 일본화풍을 지우기 위해 노력했고, 동양화에서 추상화로, 다시 판화와 태피스트리로 영역을 확장해가는 그의 모습에서 초봄의 산불같은 기세를 느꼈다.
삼중통역자
박래현은 자신을 삼중통역자로 불렀다고 한다. 청각장애인 남편을 위해 영어를 한국어로, 한국어를 다시 수화로 옮기는 역할을 해야했음을 일컫는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회화와 판화, 태피스트리의 영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분야의 경계를 허무는 예술언어의 통역자이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영화든 소설이든 21세기의 콘텐츠로 다시 만나고 싶은 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