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은 갓 서른이 된 남자분이었다. 열정이 끓어넘치는 전형적인 젊은 선생님. 기분이 유난히 좋을 때면 아이들에게 허물없이 형이나 오빠처럼 대했고, 당연하게도 그런 와중에 1:60명 사제지간의 격이라는 것은 아름답게 유지되기가 어려운 일이었다. 아이들은 자주 선을 넘었다. 오래된 격자 쇠창살 창문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와 교실 안 풀썩대는 먼지가 금빛으로 훤히 보이던 가을날이었다. 수업 시작종이 울리고 선생님은 교단에 선 채로, 아이들은 책상에 앉은 채로, 날씨가 좋아 공부하기 싫으네 어쩌네 농담이 오고 가다가 한 아이가 선생님에게 뜬금없이 볼멘 소리를 했다.
“선생님은 차별이 너무 심해요!”
젊었던 선생님은 급작스런 공격에 당황하셨는지, 스스로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 부분을 비난받아서 그러셨는지, 기분이 확 상해서는 아이들을 도발했다.
“내가 차별을 한다고? 그래, 이 기회에 나한테 불만있는 사람 손들고 다 말해봐!”
아이들 사이에서 어떤 영웅심리와 군중심리가 함께 모락모락 자라나 섞여가던 그 교실의 달뜬 공기가 기억난다. 아이들은 분명 젊고 열정적인 선생님을 좋아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했지만 기회가 생기자 분위기에 취해 하이에나떼처럼 그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양여진만 예뻐해요, 아니에요 조성호만 예뻐해요, 특별히 예뻐한다는 아이 이름이 열 명 이상 거론되고(60명 이름 다 나올 기세;;) 이제는 선생님 생김새까지 불만이라고 할 판이었다. 선생님의 얼굴은 점점 굳어갔고,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 불만을 말하기 위해 손을 번쩍 올려 귀에 붙이는 아이들은 점점 늘어났다.
나는 뭔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별이라니,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교실 한가운데로 아이를 몰아가며 따귀를 올려붙이던 이전 학년의 선생님을. 네가 이러니까 네 애미가 도망가지!! 따위의 말을 서슴치않으며, 악만 남은 아이를 결국 울리고 말던 우악스럽던 손아귀를. 춤을 잘 추는 아이, 수다를 잘 떠는 아이, 모든 아이의 ‘잘’을 찾아서 아낌없이 응원해주는 지금의 선생님을 저렇게 근거없이 비난할 수 있는 일인가? 가슴 속에서 불덩이같은 것이 치밀고 올라와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미리 손 든 아이들이 많아 내 차례는 빨리 오지 않았다. 짝꿍은 다급한 얼굴로 발을 동동 구르며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고 속삭였다.
“야, 손내려, 하지마. 선생님 화 많이 난 거 같아. 너까지 왜 그래, 제발 하지마.”
나는 사뭇 결연한 의지로 든 손을 거두지 않았다. 선생님은 굳어지다 못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지목했다. 박호단은 뭔데, 일어나서 말해봐.
“선생님은 그렇게까지 잘못하신 것 없다고 생각합니다.”
120개의 눈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며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았다. 선생님은 잠시 당황하는 눈치였지만, 옅게 웃어주었다. 그 상황이 어떻게 마무리됐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 기억은 아주 오래 남아 나의 첫 기억이 되었다. 남들과 다른 내 생각을 다수 앞에서 용기 내어 말한 첫 경험. 이 첫 경험으로 말미암아 나는 그 이후로 어디서든 자신있게 내 소신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는 아름답고 간결한 마무리를 짓고 싶지만.
말을 내뱉고 자리에 앉은 나는 시원한 기분보다는 복잡한 기분이 들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선생님은 그렇게까지 잘못하신게 없다니, 뱉어놓고보니 권력자에게 빌붙은 이방의 아첨 같았다. 나는 그저 선생님한테 잘보이고 싶었던 거 아닐까. 군중심리에 휩쓸리지 않았다는 자부심이 들었다가, 그냥 영웅심리에 취한 것 같다는 자기비난에 휩싸이기도 했다. 내 경험이 나의 용기를 완전무결하게 드러내주는 경험으로 남으려면, 내가 보호하려는 대상이 선생님이 아닌 한참 약자였어야한다고, 내 발언이 보호하려는 대상이 아닌 공격자들에게로 향했어야 했다고 오래 생각했다.
사람의 성향은 유전자에 아로새겨진 채 태어나기 마련이라지만, 이후 성장하면서 그 별 것 아닌 첫 경험이 나의 내면에서 차지하는 지분은 꽤 컸다. 자주 저울질했다. 속절없이 군중심리에 휩싸이고 있지 않은가. 약자의 편인가, 아닌가. 근거도 없이 남들과 다르다는 우쭐함에 취해 판단이 흐릿하지는 않은가.
60명의 열세 살 아이들은, 아무말대잔치로 선생님께 대들어보기도 하고, 나처럼 중2병스러운 고민을 해보기도 하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서른살 선생님과 함께 조금씩 자랐다. 선생님은 성서에 손을 올려놓고 자신이 믿는 신에게 간절하게 기도한 후에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적나라한 성교육을 해주셨다. 나는 어떤 행위를 통해 내가 세상에 나왔는지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역사책을 권하시고, 별밤과 춤과 영화를 가르쳐주셨다. 너희끼리 버스를 타고 박물관에 가서 고려청자 진열장 앞에서 귀를 기울여보라고 해주셨다. 물방울무늬 원피스와 마론인형과 만화영화의 세상 밖에 그렇게 다채롭고 매력적인 요소들이 있는 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점심시간에 열어주시던 댄스타임 덕분에 처음으로 자신의 소질을 발견한 한 친구는 나중에 유능한 댄서가 되었다. 나는 그 때 들었던 온갖 재미있는 이야기들 덕분에 역사를 전공으로 삼았다. 아이들 세상에서 걸어나와 어른의 세계로 가는 길목에 처음으로 만난 감사한 어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