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강의 여름을 걷는 할머니
“....없습니다.”
담당의의 목소리는 한 번에 알아듣기엔 언제나 너무 작았다. 애자는 이 진료의자에 앉을 때마다 자신보다 담당의가 더 환자같다고 생각했다. 동행한 딸 s도 알아들을 수 없었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재차 묻는다.
“뭐가 없다고요?”
“이상이 없다... 혈액검사, 초음파 검사 수치 모두 이상이 없습... 이제 완치라고 봐도…”
큰 걱정을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애자는 담당의의 확인에 홀가분함을 느꼈다. 애자는 5년 전에 종양 제거 수술을 했다. 수년에 걸친 정기검진 끝에 비로소 더 이상 암환자가 아니라는 공식 인증을, 기어들어가는 작은 목소리로라도 받은 셈이다.
“아 엄마, 개운하다. 맘 졸였지? 우리 엄마 그동안 고생 많았네. 우리 기념으로 저 아래로 산책 좀 하고갈까. 나 아직 애들 돌아올 때까지 시간 있어. 저 쪽으로 내려가보자.”
딸은 애자를 병원 맞은편 강둑 아래로 이끌었다. 오랜만의 산책이다. 애자는 어릴 때부터 걷는 일을 늘 좋아했다. 걷다가 멈추는 일도 좋아했다. 허리가 두툼한 노년이 되어서도 아이처럼 이건 모지, 저건 모지,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가 궁금했다. 남편은 40년동안 “빨리빨리”만을 외치거나 저 멀리 잰 걸음으로 혼자 가서 담배를 태우고 있곤 했으므로, 평생 좋은 산책메이트가 될 수 없었다. 그는 산책이 하고 싶을 때면 이웃들과 관악산 등산을 가거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영등포역에 내려 롯데, 신세계, 경방필 백화점 할인코너를 샅샅이 돌곤 했다. 백화점 지하층에서 이건 모지, 저건 모지를 하다보면 귀가하는 길에는 늘 싸구려 양산, 프라이팬, 한봉지 더 주는 빵이나 만두 같은 것들이 손에 들려있었다.
딸이 애자의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어 팔짱을 끼어온다. 마흔을 훌쩍 넘은 딸과의 팔짱이 영 불편하고 어색했지만 서운해할까봐 빼지는 않았다. 어정쩡하게 끌려가는 모양새로 병원에서 좁은 횡단보도를 건너 강둑 아래로 내려갔다. 넓지 않은 주차장을 천천히 걸어 벗어났더니 방치된 것 같은 마른 풀들 사이에서 이제 막 땅빛에서 연두빛으로 향하는 여린 새순들이 땅위로, 버드나무 가지 사이로, 자라나고 있었다. 산책로는 한산했다. 한 달 후면 이 섬 아닌 섬의 둘레길을 따라 만개하는 벚꽃나무 사이로 행락객들이 발디딜 틈없이 몰릴 것이었지만, 새순의 연두빛을 보고자 굳이 3월의 이곳에 걸음하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와 여기 뭐야 미쳤네, 서울 한복판에 이런데가 있었어? 나 매일 서울교 지나다니면서도 여기가 공원인줄 몰랐어. 어머 엄마엄마 설마 저거 뻘이야?”
중년의 딸이 철딱서니없이 호들갑을 떤다. 여기가 공원인가. 샛강을 따라 강둑의 한편엔 규모가 큰 종합병원이, 맞은편엔 서울에서 제일 큰 수산시장이, 그리고 그 사이로는 n차선 큰 도로로 차들이 쌩쌩 달리지만, 애자는 이곳이 어쩐지 어릴 때, 그러니까 60여년 전에 맨발로 뛰어다니던 그 때와 변한 것이 없는 것만 같다. 그 때도 지금처럼 샛강의 흐르는 물 위로 어린 버드나무가 물놀이하듯 낭창한 가지를 드리웠다. 애자는 아직은 차가운 3월의 바람에 시린 눈을 몇 번 꿈벅였다. 뿌옇게 흐려진 시야 사이로, 유속이 느린 물과 버들가지들이 서로 어우러져 노는 사이로, 기호 오빠의 구부정한 뒷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서울 한복판에서 뻘이랑 습지를 다보네. 나 20대 때만 해도 여기 물이 흐르는 걸 본 적이 없거든. 어떻게 된거지?”
딸 s는 이 곳이 어지간히 인상적인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여의도와 영등포를 잇는 짧은 다리 서울교를 차로 건너다보면 그 아래로 수풀들이 제멋대로 무성하게 자라있어 늘 버려진 곳처럼 보였다. 차로 다닐 땐 애자 역시 이곳의 기억을 떠올리기 힘들었다.
“왜, 여기 이름이 샛강이잖아. 엄마 어렸을 때 여름방학만 되면 외삼촌댁이 신길동이라 놀러와서 오랫동안 머물곤했거든. 그 때 엄마 사촌 기호 오빠는 틈만 나면 여기 나와서 하루종일 낚시하곤 했어. 엄마가 국민학생 때니까 오빠는 고등학생이었겠다. 아직도 생각나. 낚싯대 맨 뒷모습이.”
애자는 잠시 망설이다 그 모습이 늘 청년답지않게 구부정하고 쓸쓸했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착한 기호 오빠의 등 뒤로 쏟아지던 외숙모의 이해할 수 없이 험한 구박도.
애자의 외삼촌은 타고난 사업가였다. 사업을 하고싶어 늘 들썩들썩했다는 뜻이지 썩 소질이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황해도 출신이었지만 해방 이후 서울과 오사카를 오가며 무역을 하다가, 한국전쟁이 끝나고 남쪽에 정착해 명동의 기쁜소리사 건물에서 침대 전문 가구점을 본격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기쁜소리사는 유명 음향사로서 1950-60년대 라디오에 시간을 알리는 시보 협찬사이기도 했어서, 명동의 이 건물은 당시 서울에서 손꼽게 유명한 건물이었다. 수원에 살던 열 살의 애자가 여름방학을 맞아 전차를 타고 외삼촌댁에 놀러오면, 외삼촌은 남대문 시장에 그를 데리고 가서 샌들이라는 신발을 사주곤 했다. 동화 속의 공주님 구두같던 그 샌들을 애자는 차마 신을 수 없었다. 동무들이 일제히 검정 고무신이나 운동화를 신는 등교길에 뭔가 다른 세계에서 온 것처럼 생긴 신발을 장착하고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외삼촌의 매장과 집은 애자에게 늘 너무 다른 세계였다. 시장에서 산 샌들도, 침대라는 커다란 가구도, 그 가구를 주로 사러 오는 파란 눈의 키가 큰 외국인들도.
애자의 딸 s의 눈에는 2019년 도심 한복판의 이 공원이 또 다른 세계였다. 공원이라고는 하지만 여의도공원이나 남산공원같은 여느 도심의 공원과는 달라보였다. 탄성고무매트나 보도블럭으로 탄탄하게 다져 깔아놓은 산책로와 그 주변으로 네모 반듯한 화단, 간격 맞춰 심은 역시 반듯한 수형의 나무들, 그늘막과 돗자리를 펼 수 있게 갖춰진 잔디마당, 카페와 편의점, 벤치와 시계탑, 가로등과 알록달록한 놀이터. 음수대와 연못. 도심 속 공원이라면 갖추고 있을만한 이 모든 인공시설물이 이곳엔 없었다. 제멋대로 구불구불 흐르는 물줄기 옆으로 검회색 뻘이 제법 두껍게 드러나있고, 저멀리 들리는 4차선 도로의 자동차 소리를 지울만큼 새들의 지저귐이 소란스러웠다. 목의 깃털이 반지르르한 흰뺨검둥오리와 아직 떠나지 못한 청둥오리들이 물가에서 먹이를 찾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산책로는 잔디밭과 산책로를 구획하는 블럭이나 데크 대신 경계없는 야자매트를 깔아 만들었고, 놀랍게도 멸종위기종 서식지 보호를 위해 부득이하게 만든 울타리는 하얀 페인트칠을 해서 끝을 뾰족하게 다듬은 목재가 아니라 마른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은 것으로 대신하였다. 이 공원이라기보단 자연습지와 숲에 가까운 곳에서 이른둘의 엄마가 마흔둘 딸에게 얌전하게 팔짱을 끼인채로, 60여 년 전의 추억을 상기시키고 있었다. 딸은 비밀의 숲이라도 들어선 듯, 시간의 문으로 가는 이정표라도 확인한 듯, 애자의 팔을 꼭 낀 채, 밟으면 물이 찍찍 새어나오는 축축한 매트 위를 돌아서지 않고 계속 걸어나갔다.
애자의 외삼촌은 이 세계 저 세계를 넘나드는데 뛰어났다. 그 세계는 나라나 도시이기도,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명동에서 사업을 확장하며 턱이 뾰족한 술집 여자와의 사이에 귀여운 아이를 하나 두었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대사는 또 다른 세계와 치렀다. 턱이 뾰족했던 여자는 배신감에 사무쳐 그들의 세계에 둘러쳐있던 얄궂은 차단막 너머로 아이를 던져두고 사라졌다. 그 뒤 세월이 아주 오래 흐르는 동안 서로 다른 차원에서 내던져져 가족이란 이름으로 한 데 묶여 살아야했던 네 사람 - 애자의 외삼촌과 외숙모, 두 사람 사이의 아이 인호 , 그리고 갑자기 이곳에 버려진 아이 기호 -은 그저 존재만으로도 서로에게 생채기를 입히는 삶을 살았다.
s는 이 오래된 강가의 습지와 나무들 사이를 걷는 동안 엄마의 어린 시절로 더 들어가보고 싶었다. 듬성듬성 서서 가지를 흔드는 버드나무들 사이로 어려서부터 들어왔던 엄마의 가계도가 잔가지처럼 얼기설기 복잡하게 아른거렸다. 황해도 출신 8남매 중 둘째인 외할아버지와 4남매 중 막내딸이었던 외할머니 사이의 장녀 애자, 이북에 남은 애자의 이모고모삼촌들과 남쪽으로 내려와 수원에 정착한 일가족들, 그렇게 모여살게 된 엄마 애자의 수많은 사촌들, 딸의 이름을 공들여 지어주지 않던 그 때에 형님과 동서가 부엌일을 끝내고 부뚜막에 쭈그리고 앉아 큐브 조합하듯 똑똑 맞춰나간 어여쁜 이름들, 영자, 영옥, 영숙, 영희, 경숙, 은숙, 애숙, 인숙, 그리고 대호, 대봉이, 인호, 기호… 가계도의 잔가지 끝을 더듬던 s는 드디어 엄마의 사촌오빠 기호를 기억해냈다. 애자의 옛 앨범 속 훤칠한 키에 우수어린 표정의 그 분이 여기서 낚시를 하며 시간을 보내던 청년이었다니, s에게도 무슨 일인지 귀여운 꼬마 애자가 폴짝거리는 사이로 그 청년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타고난 사업가였지만 이 세계 저 세계 충돌시키는데 일가견이 있던 애자의 외삼촌은 1960년대 초반, 명동에서의 사업에 실패하고 신길동으로 거처를 옮겨 영등포역 앞에 다시 가구점을 차렸다. 난데없이 나타난 혼외자, 남편의 사업 실패… 애자의 외숙모는 남편의 혼외자 기호를 온갖 쌍욕으로 키웠다. 그의 기다란 등은 쏟아지는 구박과 욕설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어 늘 앞으로 굽어있었다. 샛강은 유일한 도피처이자 은신처였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삼부자에게 낚시가 거의 종교였던 것처럼 그에게도 오직 샛강에서의 낚시가 구원이었다. 낚싯대를 둘러매고 고무신에 발을 넣는 순간까지도 계모의 욕설은 끊이지 않았다.
“저 쓸모없는 노므 새끼 동도 안텄는데 또 낚시나 쳐하러 가네 저거. 도대체가 이 집구석에 들어와서 네가 하는 일이 뭐니. 사내놈이 턱주가리도 뾰족시리하게 밉상으로 생겨서는!”
기호의 귀와 심장은 늘 샛강 자락에 낚싯대를 드리우고나서야 비로소 잠잠하게 가라앉을 수 있었다. 여름에 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이대로 물이 불어 영원히 이곳에 가라앉았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몸과 마음을 끝없이 가라앉히다보면, 또 다른 소리와 빛이 그를 채워주었다. 강바닥 저 밑을 헤엄치던 힘이 센 장어의 입질, 잔잔하게 물 위에 올라앉아있던 윤슬을 걷어올리며 끝까지 기싸움에서 지지 않으려는 생명의 몸부림과 사방으로 흩어지는 물보라, 싸움을 끝내고나면 어느새 중천에 떠서, 모진 미움을 받아내느라 구부정하게 젖어있던 그의 등을 바싹 말려주는 뜨거운 태양과 온갖 여름의 생기들. 그리고 비행장의 헬기들이 날아오르는 소리와 이에 질세라 경합하는 매미 소리.
“오빠야”
여름방학이면 놀러오는 사촌동생 애자는 숫기는 없었지만 속이 깊었다. 험한 구박을 듣는 그를 잠자코 지켜보다가 아침을 뜨는 둥 마는 둥 낚시터로 뒤따라나오곤 했다.
“저기서 언니야들이랑 데이트하는 공군 아저씨들 있잖애. 나는 그 아저씨들보다 오빠야가 훨씬 멋지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장어도 잘 잡고.”
기호는 애자가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짐짓 상관없는 말로 그를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주려는 열 살 꼬마가 기특했다. 강 건너 여의도의 비행장에서는 작은 헬기와 경비행기들이 자주 뜨고 내렸다. 주말이면 제복을 입은 공군들과 여자친구들이 짝을 지어 강둑에 앉아 데이트를 하곤 했다.
“오빠야도 나중에 공군 아저씨되어서 애자 태우고 먼 데 갈까?”
“먼 데 어디?”
“음…아르헨티나?”
“그게 어딘데?”
“저기 지구 반대편.”
잘 닦인 공원의 연못에 사는 물고기들은 영악하다. 인기척이 나거나 과자봉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그쪽으로 득달같이 몰려든다. s는 걷는 동안 이 공원이 그런 영악함을 갖추지 않아 좋았다. 아니 오히려 너무 영악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연과 인공의 경계, 과거와 현재의 단절을 눈치챌 수 없게끔 그라데이션해놓은 것이 모두 계산된 일이라면 누구의 설계인지 기가 막힌 솜씨라고 생각했다. s는 이곳에서 애자의 몇 마디를 따라 쉽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느리게 흐르는 더운 여름의 물가에서 기호가 하루종일 드리웠을 낚싯대의 끝을 상상할 수 있었다. 가라앉는가 싶으면 다시 올라오고, 멈춘건가 싶으면 흐르는 시간과 물결.
지켜보고 있는 이는 느린지 빠른지 가늠할 수 없는 속도로 숲의 버드나무는 두께를 더해갔고, 외삼촌댁으로 여름방학의 시간을 보내러 상경하던 꼬마 애자는 무럭무럭 자라 전차를 타고 서울로 출퇴근을 하는 젊은 직장인이 되었다. 모든 것이 알맞게 혹은 제 속도로 흘렀지만, 서울은 급성장기에 접어든 엇나가는 사춘기 아이처럼 좌충우돌하며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는 속도로 마구 몸집을 불렸다.
기호는 정말 아르헨티나로 떠났다. 하지만 경비행기가 아니라 커다란 국적기로, 젊은 공군 청년이 아니라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당시에 불어닥친 남미 이민붐을 타고 가족들을 모두 이끌고 떠났다. 스물여섯살의 애자는 약혼자와 함께 김포공항 송영대에서 비행기가 활주로를 떠나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기호 오빠가 이제라도 따뜻한 가족들과 함께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 유년 시절의 아픈 기억을 제대로 등지기를 기도했다.
“엄마, 이제 돌아갈까?”
“그래, 너도 아이들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 되었네.”
강둑을 다시 올라오자 기호가 서울을 떠날 무렵 샛강 건너편에 세워진 진주 아파트가 노인의 주름처럼 자잘한 균열을 드러낸 채 서있었다.
애자는 여의도환승센터에서 600번 버스를 탔다. 고맙게도 한 젊은이가 냉큼 자리를 양보했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오래 했더니, 앉자마자 졸음이 쏟아졌다. 그는 바깥과 버스 내부의 온도 차 때문에 뺨이 붉게 물든 채 깜빡 잠이 들었다. 잠에 겨운 애자를 태운 버스는 서울교를 건너 서울의 서남쪽으로 향했다.
애자의 버스가 출발하는 것을 보고 s는 맞은편에서 262번 버스를 탔다. 버스는 강을 건너 북쪽으로 향했고 s는 산책의 여운이 남아 스마트폰을 열어 검색창에 여의도샛강생태공원을 입력했다.
“1990년대 후반 이야기에요. 글쎄 이 아름다운 샛강을 밀어서 주차장으로 만들어버린다는거에요, 무성한 버드나무와 억새를 다 밀어버리고요. 억울해서 눈앞이 캄캄했죠.”
“저는 한강관리사업소 자문위원이었으니까요. 그 당시에 김수영의 시 ‘풀’을 읊으면서 소장님을 설득했어요. 여긴 남겨둬야한다고요. 감사위원들이 저한테 삿대질을 했어요, 주차장도 화장실도 없는 이런게 무슨 공원이냐면서요. 제가 문제 생기면 제 돈으로 전부 고치겠다고 하면서 밀어붙였죠.”
“정영선, 대형 주차장될뻔한 여의도 샛강을 살린 조경가와의 인터뷰”
검색된 기사들을 읽으며 s는 마포대교 위에서 조금 울었다. 사람들은 모두 엄마와 고향을 떠나거나 잃는다. s는 오늘, 당분간은 엄마 애자를 잃을 일이 없다는 작은 목소리를 들었고, 아스팔트 밑에 영원히 봉인될 뻔한 엄마의 여름방학 사이를 걸었다. 머무는 철새를 만났고, 떠나간 아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도 언젠가 떠나거나 잃겠지만,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는 이 커다란 도시에서 오늘 어치의 상실의 유예에 감사했다. 오로지 풀을 위해 <풀>을 읊었다는 초로의 조경가에게 감사했다. s는 애자에게 카톡을 보냈다.
엄마 다음에 풀이 많이 자랐을 때 우리 샛강 또 걸어요.
애자는 진동 소리에 놀라 살풋 잠이 깼지만 돋보기를 찾아쓰기가 어려워 메시지 읽기를 포기했다. 마침 내릴 정류장에 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