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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믕됴 Jul 11. 2023

내 결핍은 1억 짜리였다.


  사람에겐 누구나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구멍이 있다. 그 구멍은 평생토록 메울 수 없거나, 메웠다고 착각하거나, 메워졌는지를 죽는 순간까지 확신하지 못하거나, 아예 그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다. 그 구멍은 여러 개일 수도 있고, 잘 보이지 않는 조그만 것일 수도, 누구에게나 훤히 보일만큼 커다래서 남들까지 그 구멍으로 끌고 들어가버릴 수도 있다. 보통 사람들은 어렸을 때 생겨버린 이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 어른으로서의 일생을 산다. 그 구멍을 결핍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내 결핍의 크기는 겉으로 보기엔 1억짜리였다. 안 쓰고 안 먹고 안 입고 1억을 모으고 나니 그 구멍을 대충이나마 때울 수 있었다. 용접을 해서 단단히 메워두었다기보다는 덩치가 그럭저럭 믿음직한 1억 짜리 두꺼비 한 마리가 밑이 깨진 장독 하나를 몸으로 막고 있다는 느낌이긴 하지만, 그나마도 없었을 때보다는 훨씬 낫다.


  1억이라는 액수가 정확히 어떻게 매겨진 건지 나조차도 모르겠다. 그저 언제부턴가, 이제부턴 깨져버렸던 장독에 뭔가를 채우는 걸 시도해볼 수 있겠다는 확신이 찾아왔고 그 순간이 1억을 모은 시기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귀납적으로 추론한 것 뿐이다. 물론 그 경위야 어찌 됐든 상관 없다. 중요한 건 이제 내가 그 장독을 채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지금 1억짜리 두꺼비가 지키고 있는 건 내가 오랫동안 품고 있었으면서도 절대 채워질 수 없다고 생각하고 내내 외면해왔던 꿈이다. 따뜻한 배우자를 만나 든든한 울타리를 짓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꿈. 


  재밌는 건, 내가 이 두꺼비를 올챙이적부터 키우는 데 공을 들이느라 독 안에 뭘 어떻게 채워야 가득 차오를지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음에도 두꺼비가 자리를 잡고 앉은 순간부터 마치 당연하다는 듯 '따뜻한 배우자'부터 찾아나섰다는 것이다. 누가 알려준 적도, 일깨워준 적도 없음에도, 심지어 아주 어린 시절부터 매우 적극적으로 부정했던 일임에도 말이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는 말을 강하게 부정하는 사람인데 참 아이러니하다.


  아직 다 채우려면 멀었고, 내 장독대에 밑 빠진 놈들이 얼마나 더 있는지 제대로 살펴보지도 못했지만, 지금은 찰랑찰랑 조금씩 고여가는 꿈을 마음껏 흐뭇해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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