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랑이와 나는 싸우지 않는다. 예랑이와 만난지도 벌써 1년 하고도 6개월이 지났고 그 중 4개월은 결혼준비를 하는 중인데 아직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그렇다고 참고 넘어간 것도 아니다. 애초에 싸울 일도 없었다.
우리는 성격과 취향이 잘 맞는 편이다. 하지만성격과 취향이 잘 맞아서 결혼준비를 시작했더라도 커플간에 싸우는 일은 허다하다. 심지어 결혼준비 전에는 한 번도 싸운 적 없는 사이 좋은 커플들도 결혼을 엎네 뒤집네 언성을 높이곤 한다.
곰곰히 생각해봤다. 도대체 우리는 결혼준비를 시작한지 4개월이 넘도록 왜 싸우지 않는건지. 싸우지 않는게 불만인 건 아니지만, 평생 안 싸우고 살 것도 아니고 누군가 언젠가 한 번 쯤은 실수를 할텐데 일단 한 번은 싸우고 푸는 과정을 겪어 봐야 하지 않냐는 불안함도 있었다.
그렇게 한참만에 내 나름의 답을 내렸다.
우리는 결정적으로, 서로를 귀여워한다.
덕질하는 사람들 사이엔, 멋있어 보이는 건 콩깍지가 떨어지기라도 하지 귀여우면 그냥 끝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귀여움은 웬만한 것들은 아무것도 아닌 일로 만드는 절대적인 힘같은 역할을 한다.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도 촌스럽다기보다 귀엽고, 처음 만났을 때보다 살이 쪄서 몸매가 바뀌어도 귀엽고, 직장이 힘들다고 징징대는 것도 귀엽다. 귀엽게 보이기 시작하면 정말 어디서 엄청난 범죄라도 저지르고 오지 않는 이상 끝이다.
순간적으로 사람을 상대의 애인이 아니라 부모가 된 것 같은 마음으로 만들어서, 다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싫거나 화나도 참는 게 아니라 애초에 화가 나지 않는 거라 싸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결혼준비 과정에서는 많은 것들을 선택해야 한다.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은 마음은 같지만, 둘의 가치관이 다르니 각자 생각하는 최선의 선택의 형태가 달라서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갈등은 오히려 누군가 한 사람의 양보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이보다 더 자주 갈등의 씨앗이 되는 건 독립의 문제다. 각자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성인으로서 선택한 자신의 가족이 바로 예비 배우자인데, 정서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배우자보다 부모를 과하게 우선하는 듯한 언행을 지속하면 상대는 실망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부모를 내팽개치는 것도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 일이고, 우리 정서를 빼놓더라도 굉장히 불안한 일이다.
그런데 상대를 귀여워하는 건 부모가 되는 연습이자 죄책감과 불안을 내려놓고 상대에게 집중하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물론 귀여워서 귀여워하는 거지 귀여워해야하니까 귀여워하는 건 말이 안된다. 하지만 세상에 어느 하나 귀여운 구석 없는 사람이라 단언할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하려고 작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배우자로서 든든한 사람을 골랐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귀여워서 고른 거였다니. 깨닫고나니 당황스럽긴 하지만, 나는 언제나 귀여운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닥 놀랍지는 않다.
앞으로 싸울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아마 싸우게 되겠지만, 그때도 귀여워할 수 있었는지는 추후 후기를 남겨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