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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믕됴 Jun 09. 2023

초록색 일기장이 품고 있는 새하얀 것

사람들은 일기장에마저 거짓말을 쓴다.



  학창시절, 일기장에 툭하면 거짓말을 했다. 선생님이 검사하시니까 내놓기 부끄러운 일은 빼놓고 쓴 적도 있고, 쓸 말이 없는데 억지로 쓰려다보니 없는 사실을 지어내기도 했다. 내가 거짓말에 소질이 좀 있는 모양인지, 일기장에 거짓을 쓰면서 신기한 경험도 했다. 거짓을 생산한 나 자신만은 핏빛처럼 선명하게 알아볼 수 있어야 할 새빨간 거짓말이 유백색으로 보이던 신기한 경험.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거라는 말은 정말이다. 소름이 끼칠 만큼 차디찬 진실이다. 행복하지 않은 순간에도 인간은 순간적으로 자신이 행복한 상태라고 속일 수 있다. 행운이라 해야할지 불행이라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사실을 유년기에 깨달았고, 어린 시절과 학창시절 내내 아주 잘 써먹었다. 성적과 시험의 압박, 숨막히는 교우관계와 풋사랑, 사춘기 호르몬 때문에 생기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마치 손 안에서 터지는 폭죽놀이처럼 아프고 아름다웠던 모든 장면들에서 나는 내가 불행하지 않다고 속여왔다.


  결국 나는 아무도 검사하지 않는 내 머릿속에조차 거짓을 입력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얼마나 똑똑하고 안정되었는지, 반대로 내 애인이 나에게 집착하는 모습이 얼마나 어리석고 답답한지에 대해 찌질하기 짝이 없는 거짓말을 적어 내려갔다. 그걸 적는 동안에는 글씨가 획 하나하나 분명 뻔히 새빨갰다. 하지만 거짓말을 다 입력하고 나서 마침표를 찍으면 그 모든 글자가 하얀 색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건 진실이 되었다. 맨 처음 내가 느꼈던 혼란과 죄책감과 스스로의 미숙함에 대한 수치심에 의한 괴로움이 마비되고 세상에서 가장 비겁한 자존심만 남았다. 그리고 근 10년이 홀로 흘렀다.


  자신이 만든 거짓말에 파묻혀 스스로의 감정도 믿지 못하게 된 사람을 타인이 구할 수 있을까? 당연한 말이지만 불가능한 이야기다. 다만 나에게 소중한 누군가를 위해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의지는 분명 구원이 될 수 있다.


  이제 예비신랑이 된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고, 그 사람이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자 혼란과 죄책감과 미숙함에 대한 수치심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일기장을 사러 다이소에 갔다. 짙은 초록색 인조 가죽 커버에 'WRITE. BECAUSE YOU ARE ALWAYS RIGHT'이라고 음각으로 새겨진, 자석으로 닫을 수 있는 일기장을 발견했다. 이 무슨 삼류 소설에나 나올 것 같은 설정인가, 하면서도 일기장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남자친구를 만난 날마다 그날의 생각과 감정을 글자로 적었다. 거짓없이 그대로 적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쉽지는 않았다. 너무 오래 빨강과 하양을 구분하지 않고 지내서인지 색맹이라도 되어버린 것 같았다. '모르겠다' 하고 적었다가 볼펜으로 가로 줄 두 개를 척척 그어놓은 곳이 몇 군데인지 모른다. 잘 적어내려가다가 도저히 못 쓰겠을 때는 괜히 화가 나서 X자를 북북 그려놓고 팩 덮어버리기도 했었다. 그래도 다음번에는 다시 적었다. 한 번도 빨간 글자를 적지 않았다. 그리고 마치 원래부터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처럼, 나는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 있었다. 아주 안전하고, 아주 편안하게.


  사랑을 노력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사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이미 그를 많이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기장까지 사 가면서 노력을 기울인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다만 일기를 쓰기 시작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적어놓은 글을 보면 이랬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 마음을 얼마나 잘 알까? 만약 다들 선명하게 잘 안다면 그 사람들은 그걸 어떻게 다 감당하고 살까? 마음이 선명히 보이면 머릿속은 좀 단순해질 수가 있을까?



  

  글을 봐서 내겐 정말 아무 확신도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일기장을 사기로 결심하고, 더이상 스스로 거짓말을 하거나 스스로의 거짓말에 속지 않기로 마음 먹은 건 무슨 요행이라도 되는 거였을까? 그가 조상이 점지해준 운명이라도 되는 걸까?


  요행은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믿고 친밀해질 애착의 대상이 필요하고, 나는 애착의 대상을 갖고 책임을 질 준비가 된 순간 본능적으로 유의미한 타인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 뿐이다. 운명은, 반쯤은 맞는 것 같다. 지금은 확신한다. 내가 혼자 아무리 발버둥을 친들, 남자친구가 지금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아무 의미 없는 짓이었을 것이다. 그저, 운명의 상대라 할지라도 내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면 놓치고 말았을테니 반쯤만 맞다.





  

  내가 준비가 되었을 때 나타나준 남자친구는 가끔 나에게 묻는다.


  "도대체 어디 있다가 이제 나타났어?"


  그리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혼자 말한다.


  "아니다, 이거보다 이전에 나타났으면 나 안 만나줬겠다."


  ...이럴 때, 우리가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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