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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뫼르달 May 02. 2023

<공대생이 만난 헤겔>-2

헤겔 철학에서의 '체계성'과 '서술'


3)헤겔 철학에서 자유 개념


1.타자 속에서의 자유


 모든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다. 오늘날 이 같은 주장에 반기를 드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자유는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가치로 자리 잡았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는 요소들은 존재한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기아와 전쟁의 공포가 도사리고 있으며, 사회 공동체나 사적인 관계 역시 우리의 자유를 가로막기 마련이다. 또한 우리 스스로도 누군가의, 혹은 자기 자신의 자유를 위협한다. 완전한 자유를 찾아 속세를 떠나는 이들도 있다.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단절하고 제한하는 존재를 과연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는 존재할까? 아이러니한 일이다. 누구나 그 가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유이지만, 세상 어디서도 완전히 실현되고 있지는 않으니 말이다. 우리는 경험해보지도 목격해보지도 못한 자유를 당연한 가치로 받아들이며 갈구한다. 먼 옛날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중세와 근대를 거쳐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자유를 영위하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끝없이 자유에 대해 고찰해왔다. 그리고 그러한 고찰이 가장 폭발적으로 이루어졌던 시기는 바로 프랑스 혁명, 즉 헤겔의 시대였다.



프랑스 혁명은 당대의 유럽 사회를 뒤흔들었다

 


 헤겔의 철학은 ‘자유의 철학’이다. 모든 인간은 자유롭다는 프랑스 혁명의 메시지는 청년 헤겔을 사로잡았다. 그에게 자유는 가장 숭고한 가치이며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라는 사실은 당연한 전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런 전제에 앞서 과연 ‘자유 개념’이 존재할 수 있는가? 라는 비판적 물음을 회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헤겔의 학문적 배경이 되었던 칸트를 참조하는 것이 좋겠다. 칸트는 자연 법칙 만으로 세계의 모든 인과성들이 설명될 수 없다고 여겼다. 그렇기에 그 나머지 부분에 대한 설명, 즉 자유 의지가 개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헤겔은 칸트의 사상과 비판적으로 대결하며 자신의 사상을 전개했으나 자유 의지의 가능성에 대한 칸트의 견해는 수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더해 헤겔은 자유의지를 세 가지의 계기로 규정했다. 첫 번째로, 자기 자신을 설명하고 제한하는 모든 요소를 사상시킨 뒤에 얻어진 순수한 자기 자신. 두 번째로는 자신이 속한 모든 제한과 관계 즉 현실 속에서 타자와 관련 맺는 제한된 자신. 그리고 세 번째는 앞선 두 계기들을 사변적으로 통합한 스스로를 제한하는 동시에 정립하는 타자 속에서의 자신이다. 이 세 가지 계기들의 연속적인 생성 과정이 헤겔의 자유 의지에 대한 설명이 될 것이다. 헤겔은 이러한 자유 개념의 기반 위에 학문을 펼쳐 나갔다. 자유 개념은 헤겔에게 자명한 사실이었고 그렇기에 더더욱 엄밀한 체계성 속에서 서술해야 하는 중대한 사태였다. 헤겔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는 단지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 라고 결론 내리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서술하고 입증하는 일이다.  


 흔히 ‘자유’의 개념은 무차별적 ‘자의’와 혼동되곤 한다. 그러나 헤겔의 자유는 무엇이든 마음대로 행하고 사유하는 무차별적 자유가 아니다. 그의 입장에서 그러한 자유는 부정적이고 불완전한 자유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다면 헤겔이 추구했던 자유는 과연 어떠한 형태의 자유인가? 그는 자유 개념에 대해 아주 상세히 논증했다. 앞서 언급했듯 그의 철학에서 자유는 절대적 입지를 지니고 있고, 그것을 상세히 서술하는 것이 자유에 대한 완전한 실현이기 때문이다. 그가 상세히 서술한 자유 개념을 한 마디로 정의해보자면, 그것은 ‘타자 속에서의 자유’이다. 진정한 자유는 ‘나’ 이외의 것들을 모두 배제한 독단적 자유가 아닌, 타자와의 필연적 관계 맺음 속에서 정립되는 자유라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헤겔이 강조했던 ‘비동일성의 동일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다시 말해 헤겔의 자유는 곧 부자유 속의 자유, 즉 ‘타자 속의 자유’인 것이다.      

 

 헤겔의 이러한 계기들과 초기 철학은 그가 칸트만큼이나 많은 영향을 받은 피히테 철학과도 유사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자유의 철학’에 대한 적극적인 피력도 헤겔이 피히테를 계승한 점이라 할 수 있다.



2.진정한 자유


 헤겔 철학은 명실상부 ‘자유의 철학’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철학은 무수한 관계성으로 정립되는 ‘관계의 철학’이기도 하다. 그리고 ‘관계’란 필연적으로 제한과 억압을 내포하고 있다. 혹자는 제한되고 종속되는 철학이 어떻게 자유의 철학일 수 있냐는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유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명백한 오류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무차별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그저 욕구에 복종하는 것일 뿐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욕구하는 대로 움직이는 욕망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그러한 무차별적 자유는 자유롭다고 주장하면서도 내적으로는 욕망에 종속되는 모순을 안게 된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자유보다 내적으로 정립된 자유가 더욱 중요하다. 진정한 자유는 스스로 정한 규칙과 제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에 따라 스스로를 제한하는, 그렇기에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는 진정한 형태의 자유. 다시 말해 진정한 자유는 무규칙성이 아닌 자기입법성에 근거하며, 참된 자유는 ‘자의’가 아닌 ‘자율’이다. 또한 헤겔에게 중요한 점은 자유의 현실성이다. 칸트는 이성과 현실을 엄밀히 구분하여 정의했다. 그는 스스로 입법하는 자율을 자기 자신의 영역으로만 한정했다. 그러나 헤겔에게 그러한 구분은 통합된다. 이성적인 것이 곧 현실적인 것이고 현실적인 것은 곧 이성적인 것이다. 즉 자유는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인 현실성을 지녀야 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유를 현실에서 실현하는 것 역시 중대한 사태가 된다. 


 현실적인 자유의 실현을 목적으로 한다면, 타자를 배제하고 오직 자기 자신만을 고찰하는 형태의 자유는 무의미한 것이다. 현실 속 인간은 탄생하는 순간부터 필연적으로 타아와의 관계 속에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것이 곧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숙명이다.



고도의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는 개미들


 ‘사회적 동물’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곧 필연적인 타아와의 관계를 의미한다. 집단으로 살아가는 동물 종은 무척 다양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사회를 구성하는 종은 흔치 않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회성, 즉 ‘진사회성’을 지니는 종의 대표적 예시가 바로 개미이다. 개미는 애벌레에서 성체로 우화할 때에 다른 개체의 도움 없이는 번데기를 찢을 수 없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이다. 참된 의미의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존재는 타인과의 관계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타아를 배제하고 자기 자신만의 개별적 자유를 고찰하는 모순적 유아론(唯我論) 만으로는 정신적 유아(幼兒)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타아를 배제하는 것으로는 개인의 개별성을 보장할 수 없다. 동시에 보편성만을 추구하게 된다면 개별성은 상실되기 마련이다. 개미들은 완전히 사회에 종속된 원시적 개체들이다. 그들의 사회가 제아무리 체계적이라 할지라도 각각의 개체는 개별성을 지니지 못한다. 보편성에 매몰되는 것은 곧 인간성의 상실을 초래한다. 우린 철저한 개인주의자였던 홉스가 절대권력에 의한 전제주의를 지지했다는 사실로부터 교훈을 얻어야만 한다. 개인주의와 전체주의는 동전의 양면처럼 같은 근원을 지닌다. 반대 개념에 대한 극단적 지양 말이다. 자아와 타아, 개별성과 보편성은 영원한 적대관계도 영원한 우호관계도 아니다. 그저 서로 끝없이 관계를 맺어 나갈 뿐이다. 참된 의미의 개별성사회화(보편화)의 과정 속에서 정립되는 것이며 사회성(보편성) 역시 개별화의 과정 속에서 정립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헤겔의 철학은 자유의 철학인 동시에 관계의 철학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진정한 자유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진정한 관계 역시 자유를 통해서 이뤄진다. 다시 말해, 자유는 상호적인 것이다. 그러한 과정은 개별적 주체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성숙의 과정과 동시에 세계 정신, 즉 역사의 성숙도 함께 이뤄진다. 세계 정신의 발전 과정 속에서 개별자는 도야를 향한 원동력을 얻고, 그렇게 도야된 개별자를 통해 절대정신은 실현된다. 헤겔의 세계관 속에서 자아와 타아, 세계와 개인, 과거와 현재는 끝없이 관계 맺으며 발전해 나간다. 앞서 언급했듯 진리는 전체적인 것이며 결론과 목적이 아니라 과정을 포함한 전체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한 진리의 생성 과정은 모두가 동등한 지위의 긍정적 자유를 전제해야만 진정으로 실현될 수 있다. 또한 그러한 생성 과정을 통해 긍정적 자유는 진정으로 실현될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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