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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뫼르달 Jul 06. 2023

울타리 너머에는 비가 내린다

 비가 오는 날에는 늘 따뜻한 우유를 마신다. 자그마한 창문 방충망에 맺힌 물방울들을 손가락으로 긁어내어 하얀 티셔츠에 문질러 닦는다. 귀에 꽂은 것은 장고 라인하르트. 차분한 마음으로 노트를 펼쳐 오래된 글들을 읽고. 고개를 돌리면 물담배 연기 같은 하늘이 아득하다. 세 손가락 기타리스트의 경쾌한 스윙 너머로 빗줄기는 고자누룩해진다. 마치 저주를 피하기 위해 서두르는 집시들 마냥 순식간에. 그 모든 빗줄기들은 어디로 갔을까. 비가 정말 그치기는 한 것일까.


 "스무살짜리는 자기가 무엇이고 앞으로 무엇이 되려는지 아직 분명한 생각이 없었다. 철학자인지, 시인인지, 소설가인지, 극작가인지, 아니면 학자인지. 어디를 향할지 모른 채 다만 힘만을 느끼고 있었다"
 /슈테판 츠바이크<발자크 평전中>



 지난 봄 나는 이런 구절을 날림체로 노트 귀퉁이에 남겨두었다. 그 페이지에는 툴루즈 로트레크의 그림 엽서도 끼워져 있다. 로트레크의 그림을 보면 늘 무겁고 차가운 빗줄기를 떠올리게 된다. 불구의 귀족.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남자. 그는 캔버스를 채우기 위해 스스로 그림 속에 빠져들었다. 다시 문제의 그 구절로. 어디를 향할지 모르는 스물. 나는 누구를 위로하려 했던 것일까, 아니면 독촉하려던 것일까. 불과 수개월 전의 일인데도 까맣게 잊힌 기록이다.


 어떤 단어도 소원을 들어줄 수는 없다. 어떤 축복도 항상 선물이 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부르는 순간 말은 떠난다. 아무도 길들이지 못하는 짐승처럼. 그러니까 내가 너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는 것은.


 나는 울타리 안에 갇힌 짐승, 그리고 울타리 밖에 너를 가둔 사람. 우리는 담 너머로 많은 말들을 주고받는다. 어느 하나 제대로 도착한 건 없다. 너머의 세상은 불가능이다. 나는 늘 이곳에 있다. 너는 이곳을 소리낼 수 없다. 나는 그곳을 감히 말하지 못한다.


 어쩌면 우린 서로의 목소리를 기억하겠지? 모든 음성은 종점을 정해두고 있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언어장애를 겪는 병사들도 노래는 부를 수 있었다고 한다. 오른팔을 잃은 병사들은 연습을 거듭하여 왼팔을 오른팔처럼 쓸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우연히 읽은 칼럼에서 나는 문학의 가능성을 다시금 느낀 것이다. 너의 이름을 새로 쓰게 된 날이다. 보고싶은 K, 그리운 K.


 창밖으로는 어느덧 만만한 볕이 든다. 아직 마르지 않은 방충망에는 세 가닥 손가락 자국. 다 식은 우유를 한모금 마시고 나는 다시금 지금으로 돌아온다. 매일같이 하는 이야기. 너의 이름을 부르고 싶은 날이면, 나는 노트를 펼쳐 울타리 너머로 길 잃은 낱말들을 던진다.


 나의 갈라진 성대가 상정한 유일한 대타자, 바다가 없는 도시의 K, 울타리 너머의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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