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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하 Aug 18. 2021

크루엘라, 에스텔라, 휘슬소리 사이에서

융의 콤플렉스 심리학을 통한 크루엘라 인물 분석

   ‘크루엘라’라는 비상한 인물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융의 정신분석 개념을 활용했다. 따라서 융의 정신분석 개념을 가와이 하야오의 「카를 융 인간의 이해」라는 책을 정리하여 간단히 소개한 후, 이를 바탕으로 영화에서 다뤄진 크루엘라의 일생을 되짚어보며 성격과 복수의 저변에 어떤 심리 기작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콤플렉스라는 개념은 융의 정신분석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융은 그의 심리학을 ‘콤플렉스 심리학’이라고도 칭했다.) 융 심리학에서 콤플렉스란, “무의식 안에 존재하면서 어떤 감정에 의해 연결된 심적 내용의 집합체”이다. 즉, 심적 내용이 동일한 감정에 의해 연결고리를 형성하고, 이 감정과 관련된 외적 자극이 주어지면 해당 심적 내용이 의식의 제어를 넘어 활동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자아는 인간의 의식 체계의 중심 기능이다. 자아의 활동은 우리로 하여금 외부 세계를 인식하고 판단하고, 자극에 대처하는 방법을 찾아내도록 한다. 자아는 통합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면의 복잡한 의식 상호작용 속에서도 하나의 인격을 갖도록 만들어 준다.

  콤플렉스와 자아는 대립 관계를 형성한다. 콤플렉스는 그 자체로 자립성을 가지고 자아의 통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통합성을 지니는 자아의 정상적 활동을 혼란시킨다. 이는 일상생활에서 여러 장애를 불러오는데, 우리가 흔히 하는 말실수, 일시적 난독 등이 이런 장애에 해당된다. 우리가 크루엘라를 분석하는 데 사용하게 될 콤플렉스의 대표적인 예는 ‘심적 외상’이다.

  콤플렉스는 어떻게 자아를 위협하게 될까? 먼저, 콤플렉스의 형성에 있어서 사람은 심적 외상 등 참기 힘든 경험을 무의식 중에 억압하면서 살아간다. 그 경험이 주는 공포심, 죄책감 등의 감정을 억압하며 살아가다가 비슷한 감정을 동반하는 경험을 하면 형성되어 있던 콤플렉스에 해당 경험이 흡수된다. 이렇게 콤플렉스는 점점 확대되고 강해져서 결국 자아의 존재를 위협하게 된다. 개인의 무의식 안에 내재해 있어서 지금까지 한 번도 의식화된 적이 없는 내용은 콤플렉스의 감정적 중심이 되는 ‘중핵’이 된다. 융은 이런 콤플렉스가 회피하는 것이 아닌 대결함으로써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해소된 후에 건설적인 방향으로 재설정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요소가 있다고 했다. 이제 앞서 소개한 융 심리학에서 콤플렉스와 자아의 대립 관계와, 콤플렉스의 해소 과정을 통해 ‘크루엘라’라는 인물을 분석해보자.


1. 콤플렉스의 형성 : 심적 외상

  에스텔라는 어릴 적 자신을 키운 어머니(에밀리 비첨)가 절벽에 떨어져 죽는 것을 목격하고, 자신이 어머니를 죽였다는 생각을 한다. 그에 대한 죄책감과 그때 상황에 대한 공포심은 에스텔라의 무의식 안에 내재하게 되어 콤플렉스의 중핵을 형성했다. 이후로 에스텔라는 에밀리가 항상 이야기하던 ‘착한 에스텔라가 되어라.’라는 말에 따르기 위해 노력하였고, 분수대를 찾아가 차를 마시며 어머니에게 말을 거는 듯한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그러한 목표를 지속적으로 설정했다. 이러한 심적 억압(죄책감과 공포심에 기인하여 착한 에스텔라가 되기 위한 의식적 노력)은 콤플렉스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도록 유도하여 은연중에 콤플렉스의 세력을 확대시키는 환경을 가져왔다. 즉, 인격을 결정하는 에스텔라의 자아는 자신의 왕좌를 콤플렉스라는 적국에 빼앗길 수 있는 가능성을 형성했다. 융은 이런 상태에서 ‘이중인격’이 발현된다고 주장했다.


2. 콤플렉스의 발현 : 휘슬소리

  에스텔라는 자신의 생모인 남작 부인 바로니스가 휘슬을 불 때 자신의 콤플렉스를 의식적으로 확인하게 된다. 남작 부인의 휘슬소리는 에밀리가 자신의 손에 죽은 것이 아닌, 바로니스에 의해 죽은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한다. 이는 에스텔라의 무의식 안에 내재하여 의식화된 적이 없는 내용(콤플렉스의 중핵)이 처음으로 의식 속에서 인식하게 해 주었고, 내면의 콤플렉스를 외적 대상(바로니스)에게 투영하여 대결할 수 있는 상황의 형성을 가져왔다.

  결벽증을 치료하기 위해 내원한 남자아이가, 자신의 콤플렉스를 치료사라는 외적 대상에 투영하여 억압되어 있던 공격성을 분출하는 사례와 마찬가지로, 에스텔라는 억압되어 있던 공포심과 복수심을 바로니스라는 외적 대상에 투영하여 걷잡을 수 없는 공격성을 드러낸다.

3. 콤플렉스의 해소 : 복수와 활동성

  점점 과격해지는 크루엘라의 공격성은 지금까지 에스텔라라는 정체성 속에서 강하게 억압되어 있던 감정을 발산하는 과정에서 표현된다. 이로써 크루엘라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자아 안에 수용하며 자아 속에 배제되어 있던 것을 서서히 받아들이고 재통합을 형성하는 과정을 진행한다. 복수의 완성으로 외적 대상에 투영된 콤플렉스가 해소됨으로써 크루엘라의 공격성은 건설적인 활동성으로 변모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된다. 크루엘라의 마지막 대사 “나에게 계획이 있어”는 그러한 건설적 활동성을 암시하는 대사인 듯하다.


  지금까지 융의 콤플렉스와 자아의 개념으로 크루엘라의 성격 변화와 복수 행동 저변의 심리를 분석했다. 에스텔라는 콤플렉스는 배제하는 자아의 강한 억압을 대변하는 인물, 크루엘라는 콤플렉스를 인지한 후 억압을 벗어던지고 감정을 분출하는 상태를 대변하는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바로니스 남작 부인은 크루엘라의 콤플렉스가 투영된 외적 대상이자 크루엘라가 콤플렉스를 인식하도록 유도한 매개 인물이다.

  물론 이 분석은 한계가 매우 많다. 그 한계의 주된 부분은 다뤄지는 개념의 내용이 개인적인 자아와 콤플렉스로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융 심리학에는 분석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집단 무의식과 원형, 꿈 해석 등의 매우 중요한 개념들이 있지만 영화에서 표현되는 미장센과 플롯의 자체적인 한계와 나의 얕은 지식 때문에 생기는 공백이 있다. 그러나 이 글이 크루엘라라는 매력적인 인물을 다각도로 살펴봄으로써 설정된 인물에 생명력을 부여하여, 이 멋진 영화가 계속 기억될 수 있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살아있는 크루엘라, 에스텔라, 그리고 휘슬소리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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