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쉰들러리스트 속 색의 사용과 윤동주 시의 관계
사랑은 진부하다, 고결하다, 나약하다, 강렬하다, 추하다, 아름답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어떠한 서술어를 가져와도 괴리감을 만들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오늘날 가장 쉽게 소비되는 개념이고, 한편으로는 가장 높은 가치를 가진다고 여겨지는 개념이다. 나는 여기서 사랑이라는 개념의 힘, 평범성, 그리고 영원성을 발견한다. 그리고 ‘쉰들러리스트’라는 고전의 위상에 있는 영화는 3시간의 긴 상영시간 속에서 이러한 사랑의 특성을 수면 위로 드러내어 관객이 인식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나는 영화의 미장센을 통해 등장하는 상징적 요소들 속에 내포된 “사랑”의 특성들을 조명하고, 이를 윤동주의 시에 대입해서 그 미학을 고민해보고자 한다.
쉰들러리스트라는 영화의 상징적 요소를 살펴보기 위해 감독이 의도적으로 배경의 색을 박탈시킴으로써 획득한 ‘빨간색’의 극적인 대비 효과에서 발견되는 영화의 주요 흐름을 살펴보자. 흑백으로 완전히 뒤덮인 영화 속에서 색을 가진 요소를 찾아보면, 우리는 먼저 영화의 시작과 함께, 안식일의 마지막 날 촛불이 꺼지는 장면에서 붉은 불빛의 소멸을 목격한다. 그리고 유태인 수용지구에 대한 독일군의 수색이 이루어질 때 혼란과 폭력 속에서 숨죽이고 활보하는 빨간 옷을 입은 어린아이를 본다. 이 아이는 이후 수레 속 짐처럼 쌓인 시체들 속에서 다시 발견된다. 그 후 체코로 이송된 쉰들러 노동자들의 안식일 시작 기도 때 점화한 촛불 위에서 붉은 불빛의 재탄생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쉰들러에 의해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손잡고 초원 위로 걸어올 때 배경(세상)은 모든 색깔을 되찾는다.
일제강점기 활동했던 시인 윤동주는 나라를 잃은 슬픔을 자신의 시에 ‘부끄러움의 미학’으로 풀어냈다. 거대한 역사적 흐름 앞에 한 없이 작은 개인의 무력감, 박탈감, 그리고 압도감을 처절하게 고백한 그의 시에는 자기 자신, 민족, 조국의 미래에 대한 지속적이고 깊은 관심이 담겨있다. 이제 윤동주의 시 속에서 영화에서 드러난 세 가지 사랑의 특성을 색이 담은 상징을 통해 살펴보자.
1) 사랑의 힘 : 촛불
안식일은 붉은색을 가진 촛불의 소화와 점화로 명료하게 인식된다. 따라서 영화에서 촛불이 가진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영화를 해석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 촛불은 전이한다. 불이 붙은 촛대는 불이 없는 촛대와 접촉하면 불은 옮겨붙는다. 한 촛대가 다 타서 사그라들기 전에 다른 촛대에 불을 옮길 수만 있다면 불은 지속된다. 이렇게 한 대에서 다른 대로 옮겨지는 촛불은 미약하고 은은하지만 자기 주위를 끊임없이 밝힌다. 이러한 촛불의 작지만 강렬한 힘을 영화에서는 수미상관적 구조를 장식하는 안식일의 촛불을 통해 드러내면서 나치의 폭압 속에서 살아가는 유대인 노동자들의 희망을 미약하게 이어가는 역할을 한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쉽게 쓰여진 시」 부분
시적 화자는 자신의 고향이 아닌 ‘남의 나라’라는 타지에서 ‘속살거리는 밤비’의 거대한 어둠과 방해 앞에 압도된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여 소멸하지 않는다. 빛이 만연한 ‘시대처럼 올 아침’의 운명을 믿고 ‘최후’의 척후병이 되어 자기 주위의 어둠을 내몰고 ‘최초의 악수’를 건넨다. 이렇게 시의 ‘최후’와 ‘최초’는 영화의 수미상관과 촛불로 관철되는 강렬한 사랑처럼, 다가올 운명의 아침까지 작지만 지속적인 저항을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구조를 드러낸다.
2) 사랑의 평범성 : 빨간 옷을 입은 아이
상업성과 이윤만을 생각하던 쉰들러가 자신 사업의 방향성을 유대인 보호로 결정하게 된 계기는 빨간 옷을 입은 아이가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건물 속으로 숨어 들어간 후 나중에 시체로 발견된 것을 목도하면서일 것이다. 촛불의 붉은색에 담긴 사랑의 상징성을 아이에게 대입하면, 잔인함과 혼돈 속에서 사랑이 소멸하는 것을 나타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후 쉰들러는 독일 군 간부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유대인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방패가 되어준다. 쉰들러리스트의 여백은 폭력으로부터의 보호막, 안쪽의 이름들은 ‘생명서(書)’ 치환된다고 말하는 유태인 회계사의 말은 쉰들러의 행동이 가진 성격을 집약하는 비유이다.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 「참회록」 부분
그렇게 쉰들러는 나치라는 이름의 ‘운석 밑으로’ 덤덤히 걸어갔다. 천 명에 가까운 리스트를 만들어 안전한 곳으로 옮겨서 생명을 살린 이후에도 자동차를 팔지 않아 살리지 못한 10명, 배지를 팔지 않아 살리지 못한 2명을 생각하며 그는 괴로워한다. 쉰들러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을 가진 인물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수백만 마르크를 독일 장교들을 매수하는 데 사용하고, 생산된 포탄과 총탄을 일부로 사용될 수 없게 생산하며 전쟁 속에서 가장 피해를 받는 평범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평범한 사랑을 구현했다.
3) 사랑의 영원성 : 쉰들러 리스트의 생존자들
흑백의 영화에서 부분적으로 등장한 빨간색의 상징성에서 벗어나 모든 색깔이 다시 회복된 것은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쉰들러 리스트의 생존자들이 손을 잡고 걸어오는 장면부터이다. 그들은 오스카 쉰들러의 무덤에 돌을 올려놓음으로써 경의와 사랑을 표현한다. 쉰들러가 살린 천명의 유태인은 이후 후손들을 낳아 대를 이어 다시 사회를 꾸린다. 전쟁 속에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방패가 된 쉰들러는 흑백으로 지배되었던 암울한 상황 속에서 사랑의 빨간색을 지켜냈고, 그 색이 점차 세상을 물들여서 다시 색으로 가득 찬 세계를 만들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한 거외다.
- 「별 헤는 밤」 부분
화자는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 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풀이 무성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의 작은 노력들이 ‘파란 잔디’가 되어 세상을 싱그럽게 물들일 것이라고 말한다. 쉰들러가 살린 그의 후손들은 세상을 생명력 가능한 봄으로 만들었다. 그의 무덤 위에는 조의가 담긴 돌이 가득 쌓여 ‘자랑처럼’ 세상에 빛을 재탄생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런 빛의 재탄생과 색깔의 회복은 그가 죽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이어질 사랑의 영원성을 상징하며 영화는 끝난다.
600만 명이 넘게 학살된 대규모 인종 청소 폭력 속에서 쉰들러가 살린 천 명의 사람은 말 그대로 작은 ‘등불’ 일지도 모른다. 쉰들러는 거대한 폭압 앞에 선 작은 개인의 무력함, 박탈감, 그리고 압도감 속에서 ‘슬픈 사람’이 되어 더 살리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를 했다. 하지만 그의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는 그가 살린 사람들이 남긴 수많은 조각 바위들이 쌓여, 그의 작지만 필사적이었던 노력이 일궈낸 사랑이 다시 견고하게 우뚝 섰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쉰들러와 그의 회계사 이자크 슈텐은 영화의 마지막에 이런 대화를 나눈다.
쉰들러 :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어.”
슈텐 : “당신은 이미 그 이상을 하셨습니다.”
윤동주의 시는 이렇게 말한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자화상」 부분
윤동주의 시는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획을 그었다. 그가 유산처럼 남긴 부끄러움의 미학은 오늘날 다채로운 한국이 있기까지 어떤 개인들의 처절한 노력이 있었는지를 추억하게 해 준다. 이처럼 오스카 쉰들러는, 유산처럼 남겨진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는 세상 속에서 ‘추억처럼 사나이’가 되어 그가 추구한 강력하고 평범하고 영원한 사랑이 추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