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접니다.
출퇴근 왕복 세 시간이 걸리는 회사에 다니는 나는 퇴근 후의 짧은 저녁시간과 황금 같은 주말을 작곡, 작사, 녹음, 믹싱 등 내 자작곡을 다듬어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일에 할애한다.
레이블도 없고 찾아 들어주는 사람도 몇 없는 인디 뮤지션인 나에게 음원 발매는 절대 돈 버는 일이 아니며 오히려 돈 나가는 일이다.
금전적인 건 둘째치고 노래를 다듬는 작업이 마냥 즐겁냐고 묻는다면 답하기 애매하다. 물론 처음에 새로운 곡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고 내가 상상한 느낌과 일치하는 코드와 멜로디, 가사가 붙여지는 순간에는 정말 뿌듯하면서도 마법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곡 작업의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극한의 고통을 마주하게 된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올 만큼.
어떤 악기와 음을 넣어야 사운드가 꽉 차게 들릴지 감이 안 잡힐 때. 원인불명이거나 알아도 잡히지 않는 노이즈. 상업 음반 퀄리티로 제작한다고 소중한 돈과 시간을 투자했는데 데모에 담겼던 진심이 최종 음원에 투여되지 않았을 때 느끼는 좌절감과 허탈함. 편곡, 녹음, 믹싱, 마스터링을 도와주는 사람들과의 충분하지 못한 소통과 크고 작은 오해에서 비롯되는 너무나 당연한 사람 스트레스.
나는 왜 사서 고생인지,
언제부터 음악이라는 취미가 고생이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사람은 무언가 잘하고 싶은 게 있으면 열심히 한다.
열심히 하면서도 재미를 놓지 않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느 순간 노력이 집착이 되는 부류도 있다. 나에겐 후자의 일이 일어난 것 같다.
중요한 변수는 실력이다. 실력이 있으면 잘하고 싶은 마음이 결과물까지 고스란히 이어져서 누가 봐도 꽤나 흡족한 결과물이 나온다. 나의 경우, 선천적인 게으름을 바탕으로 최소한의 투입으로 최대한의 산출을 얻기를 바라는 도둑놈 심보와 부족한 예산과 시간이 합쳐져 실력 향상은 매우 더디거나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그렇기 때문에 매 작업의 끝에는 뿌듯함보다는 아쉬움, 개운함 보다는 찝찝함이 남는다.
실력 없음의 문제를 빠른 시일 내에 극복하지 못한다면 결과물보다 과정에 집중함으로써 창작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집착과 그에 따른 고통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말이 쉽지 결과물이 아닌 과정에 집중하는 것은 어느 상황에서든 쉽지 않다.
결국, 실력도 없고 결과물이 아닌 과정에 집중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지 못한 나에게 노래를 만드는 일은 고생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음악을 취미로 대한다면 고생일 필요도 없고, 고생이어서도 안된다. 하지만 취미로 시작한 음악은 어느새 취미의 틀을 벗어나버렸고, 취미도 부업도 자기계발도 제2의 직업도 아닌 뭐라 정의할 수 없는 무언가로 내 생활의 중심부에 자리 잡았다. 취미란 운동이나 게임처럼 본업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여가시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한 활동이다. 즉, 취미의 주목적은 현생의 고통을 덜기 위함이지 더하기 위함이 아니다. 재미로 시작한 일이 부담이 되고 현생을 침범하기 시작했다면, 그건 더 이상 취미가 아니라 제2, 제3의 정체성을 갖기 위한 도약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충분한 실력이 없는 사람에게 취미가 숙명이 되고 나아가 직업이 된다는 건 불행한 일일까.
취미를 벗어나 그 너머의 의미를 추구하는 순간 고통은 불가피한 걸까.
속풀이 하듯 위에 두 문장을 적고 다시 읽어보니 조금 슬퍼졌다.
긍정문으로 다시 써 본다. 내가 믿고 싶은 대로.
좋아하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고 취미 이상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마음의 뿌리에는 단단한 용기가 있다.
취미를 벗어나 그 너머의 의미를 추구하는 순간 고통은 불가피하지만 그건 마땅히 겪어야 할 성장통일 뿐, 고통스럽다는 것은 지금 성장하고 있다는 뜻이므로 격려받을 일이다.
딱 떨어지는 답을 좋아하지 않는다.
진실은 항상 두 극단 사이의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홧김에 튀어나온 문장보다는 고쳐 쓴 문장에 더 가까워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