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후변화 소송에 대한 고찰
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시민사회의 기후변화 소송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유엔환경계획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3월까지 24개국에서 제기된 기후변화 소송 중 654건이 미국에서 제기된 것이었고 그 외 국가들의 소송은 약 230건에 달했다. 미국의 기후변화 소송에서 청구인들은 보통법, 성문법, 공공신탁법, 행정법 등을 포함한 다양한 법적 근거를 사용하여 기후변화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묻고 있다.
이 중 가장 화제가 된 사건은 Juliana v. United States 이다. Juliana v. United States는 21명의 청소년들이 미국 정부를 대상으로 제기한 소송으로 기후변화의 원인을 제공한 정부의 정책이 청소년의 헌법상 권리를 침해했다고 주장한 사건이다. 2015년 8월 12일 오리건 주 연방지방법원에 처음 소송이 청구된 이후부터 정부와 석탄발전업계의 끊임없는 저항을 불러오고 있는 이 사건은 2016년 11월 10일 오리건 주 연방지방법원의 Ann Aiken 판사가 청구인 적격, 정치적 문제, 적법절차조항에 대한 미국 정부의 주장을 모두 반박하는 소송 각하 요청(motion to dismiss) 기각 판결을 내리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시민사회와 환경단체는 법원의 판결에 열렬한 환호를 보냈고 언론은 해당 판결에 대해 기후변화의 헌법적 함의를 처음으로 인정한 역사적 판결이라고 입을 모았다.
기후에 대한 권리는 중요한 기본권인가?
이번 판결의 가장 큰 쟁점 중 하나는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 미국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적법절차(due process)의 원칙에 위배되는지에 있었다. 미국 수정헌법 제5조에 의하면 누구라도 정당한 법의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생명, 자유, 또는 재산을 박탈당하지 않는다. 원고는 이러한 적법절차의 원칙을 근거로 피고의 행위가 현재의 기후위기를 초래했고 이로 인해 자신들의 건강과 행복을 보장받지 못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부의 행위가 헌법의 적법절차 원칙에 위배되는지에 대해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원고가 침해당한 권리가 ‘중요한 기본권’(fundamental right)에 해당하는지 여부이다. 판례법에 의해 중요한 기본권에 관한 사건에는 엄격심사기준(strict scrutiny)을 적용하고 그 외 사건에는 대개 합리성심사기준(rational basis)을 적용하는데 이번 사건은 합리성심사기준을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예측되었기 때문에 기후변화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엄격심사기준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는 기본권인지가 중요한 쟁점으로 다뤄졌다. 이에 대해 오리건 주 연방지방법원의 재판부는 헌법에 열거되지 않은 권리를 새로운 기본권으로 인정할 때는 그 판단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특히 어떤 권리들은 다른 권리의 행사를 위해 필요하므로 기본권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Obergefell v. Hodges 판결은 결혼이 다른 기본권을 뒷받침해주고 있다고 판단하여 결혼할 권리가 중요한 기본권임을 인정했다. 이번 Juliana 사건의 재판부는 이러한 판례와 같은 논지에 근거해서 “인류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기후에 대한 권리”는 사회질서와 자유를 위해 꼭 필요한 중요한 기본권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결혼이 가족의 기반이 되는 것처럼 기후는 사회의 기반이 되기 때문에 기후가 안정적이지 않다면 문명의 존재와 발전은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험난한 여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본다.
2018년 말 제9연방항소법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일시중지(temporary stay) 신청을 받아들였고 이에 불복한 원고가 제기한 중간 항소에 대한 판결은 2020년 1월에 내려졌다. 결과는 정부의 일부 승리. 세명의 판사 중 한 명은 원고의 손을 들어줬지만, 두 명은 본 사안은 사법부가 아니라 행정부와 입법부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응하는 원고의 정정청구(motion to amend)에 대한 재판 절차는 현재까지(2022년 5월 12일) 계속되고 있다.
기후변화는 우리 사회의 기반을 흔들 정도로 위협적이며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행정부와 입법부의 조치가 부족하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정부 부서가 의무를 다하지 않을 때 사법부가 개입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답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이다. 처음 소송이 제기된 날로부터 7년이 지났지만 정부의 반복되는 소송 중지 신청과 사전 기각 신청으로 인해 재판 시작일이 계속해서 연기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미루어 볼 수 있듯이 Juliana v. United States의 앞날은 매우 험난해 보인다.
그러나 Juliana v. United States는 원고의 승소 여부를 떠나서 기후변화와 헌법적 쟁점들 간의 연관성을 처음으로 심도 있게 짚었다는 점에서 환경단체와 시민사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특히 수정헌법 제5조의 적법절차조항의 적용을 받는 기본권과 관련하여 안정적인 기후를 보장받을 권리가 중요한 기본권이라고 주장한 것은 기후변화를 개인의 권리에 대한 문제로 접근하게 했다. 미국의 판례법은 수많은 사건들을 통해 헌법이 보장하는 중요한 기본권의 범위를 재정립해왔다. 미국 헌법의 권리장전에 열거된 기본권뿐만 아니라 헌법에 명시되지 않은 기본권도 중요한 기본권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생활 보호의 권리, 결혼할 권리, 자녀를 교육할 권리 등이 새로운 중요한 기본권으로 인정되었고 이들 권리에 대한 정부의 제재는 엄격심사기준을 통과해야만 허용 가능하게 되었다. 안정적인 기후를 보장받을 권리가 중요한 기본권으로 인정될 수 있을지에 대해 예견하기는 이르지만 이에 대한 논의가 미국 법원에서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후변화에 대한 미국 사회의 태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 청소년이 정부에 묻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떨까? 다른 국가들에 비해 조금 늦긴 했지만 2020년 3월 13일 청소년 원고 19명이 기후변화를 방치하는 국회와 정부를 상대로 헌법소송을 제기했다. 청소년들의 요구에 응답하여 2020년 10월 말에 대통령 의견서가 헌법재판소로 제출되었지만 그 내용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청소년들이 기후위기 당사자임을 부정했고, 따라서 청소년들은 기후위기로 인해 생존권, 평등권, 인간답게 살 권리 등의 기본권 침해를 입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정부는 기후위기 대응에 필요한 조치를 이미 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은 올해 2월 또다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기후변화의 문제를 법원에서 다루려는 움직임이 처음 일어났을 때 어떤 사람들은 코웃음을 치며 그게 가능한 일이냐고 물었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점차 우리 생활 속의 실재적 위험으로 자리 잡았고, 법원의 시각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네덜란드 대법원은 2019년 12월 20일 세계 최초로 정부의 기후변화 책임을 인정했고,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도 2021년 3월 자국의 기후변화법에 대해 온실가스 감축 내용이 충분하지 않아 미래 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일부 위헌 결정을 내렸다.
아직까지 현재 진행형인 미국과 한국의 기후변화 소송. 어떤 결말을 맞을지 알 수 없지만 법정에서의 변론이 치열하고 세밀하게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을 통해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에 대한 담론이 한층 더 성숙해지기를. 그리고 이 소식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더 큰 사회적 변화의 씨앗이 되기를 기대한다.
2019년 12월 26일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을 통해 기고한 글을 일부 수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