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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유 Nov 30. 2024

다른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않기로 했다

회사는 지극히 내향적인 성격인 내게 극도의 외향성을 요구한다. 모르는 사람에게 명함을 건네며 나를 소개해야 하고, 수천 명이 참석하는 국제회의에 가서 전 세계에서 날아온 사람들과 교류하고, 조직 내외부로 미팅과 행사와 발표가 끝없이 이어진다.


내가 선택한 직업의 이런 특성을 잘 알고 있었고 본성의 나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했다. 역설적으로도 나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길을 선택했고 지금도 걷고 있다.


어려서부터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사람들을 동경했다. 정적이고 모든 자극에 느리게 반응하는 내가 싫었다. 그래서 학부 때부터 대외활동, 동아리 등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활동들을 의도적으로 선택했다. 그런 훈련들이 나를 더 나은 인간으로 발전시킬 거라고 믿었다.


물론 나의 모든 선천적 특성을 부정한 건 아니다. 나의 장점들도 잘 알고 있었고 자존감도 낮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더 나아지려면, 내가 부족한 외향적 특성들을 장착하려면 나를 더 시험에 들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육각형 인재가 되려면…


이번주 내내 부산에 출장 와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불편한 저녁 식사 자리에도 끝까지 남아있었다. 너무 힘들었다. 마음 맞는 사람 한 명과 조용하고 깊은 대화를 하고 싶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고 했던 노력들이 과연 나에게 이로운 것이었는지 생각했다.

그러한 노력과 마음의 상당 부분이 자기혐오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봤다.

그 시간들이 나를 발전시켰을까 아니면 그저 나를 더 피곤하고 예민하게 만들었을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않기로 했다.

부족한 부분은 부족하게 놔둬도 되지 않을까.


어지러운 생각과 불규칙한 호흡을 가다듬으려고 바닷가에 왔다.


지금 여기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이 유일하게 실존하는 나다. 내 환상 속에만 존재하는 완벽히 내향적이며 외향적인 나는 내가 아니다. 지워버려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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