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 v. Alvarez 판결이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12월 3일 늦은 저녁 윤석열 대통령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저는 그때 소파에 누워서 가족과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는데 너무 생소한 단어라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라 계엄령이 무엇인지부터 인터넷에 검색해야 했습니다. 현 시간부로 통행금지, 해외여행 금지, 국회 통제, 계엄사령부와 계엄군의 막강한 권한 등등 진짜뉴스와 가짜뉴스가 뒤섞여 쏟아져 나오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벌써 한 달이 지났지만 그날에 벌어진 일들과 일련의 수습과정을 실시간 뉴스로 지켜봐야 했던 우리 모두가 느낀 충격과 황당함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났을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United States v. Alvarez 판결이 떠올랐습니다. 미국 로스쿨에서 석사과정을 밟을 때 수강했던 헌법 과목에서 배웠던 판결인데 긴 내용 중 딱 한 문단이 뇌리에 깊이 박혀 있었습니다. 그때가 벌써 8년 전인데요, 아직까지도 그 문단이 생생히 기억날 만큼 너무나 인상 깊은 관점이었습니다. (사실 그 문단만 기억이 나고 사건 이름은 생각이 안 나서 chatGPT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몇 번의 채찍질 끝에 chatGPT는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바로 이 문단인데요,
The remedy for speech that is false is speech that is true. This is the ordinary course in a free society. The response to the unreasoned is the rational; to the uninformed, the enlightened; to the straight-out lie, the simple truth. If there be time to expose through discussion the falsehood and fallacies, to avert the evil by the processes of education, the remedy to be applied is more speech, not enforced silence. The theory of our Constitution is that the best test of truth is the power of the thought to get itself accepted in the competition of the market... Society has the right and civic duty to engage in open, dynamic, rational discourse. These ends are not well served when the government seeks to orchestrate public discussion through content-based mandates.
직역을 하자면 이렇습니다.
"거짓된 발언에 대한 해결책은 진실된 발언입니다. 이것이 자유로운 사회의 일반적인 절차입니다. 비합리적인 것에 대한 대응은 합리적인 것이고, 무지한 것에 대한 대응은 계몽적인 것이며, 명백한 거짓말에 대한 대응은 단순한 진실입니다. 만약 토론을 통해 허위와 오류를 드러내고 교육 과정을 통해 악을 피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택해야 할 해결책은 강제 침묵이 아니라 더 많은 발언입니다. 우리 헌법 이론에 따르면, 진실의 가장 큰 강점은 스스로가 시장 경쟁에서 이겨서 결국 받아들여지는 힘입니다. 사회는 공개적이고 역동적이며 합리적인 담론에 참여할 권리와 시민적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대중의 공론장을 내용 기준으로 규제하려 들면 이런 목표는 달성하기 어렵습니다."
이 부분에서 재판부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다양한 사상이 표현되는 것이 자유로운 사회이며 진실은 사회적 토론을 통해 스스로 드러나게 될 것이므로 정부가 특정 사상이나 발언을 거짓이라고 여긴다는 이유로 그것을 규제할 권리는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정부는 반대되는 발언을 하는 상대의 입을 막을 것이 아니라 두 팔 벌고 환영해야 할 것입니다. 정부가 진실이라고 믿는 그 사상이 진정 진실이라면 사회 토론을 통해 더욱 확고하게 진실로 나타날 테니까요. 모든 사상은 사회라는 시장에서 자유경쟁을 통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드러낼 것이라고 믿는 '사상의 시장(marketplace of ideas)'이라는 개념은 1919년 Abrams v. United States 판결(소수의견)에서 처음 거론되었고 이후 United States v. Alvarez 뿐만 아니라 Brandenburg v. Ohio 등 여러 판결에서 인용됩니다. 내용에 기반한 표현의 제한은 엄격한 심사(strict scrutinity)를 받아야 하며, 극히 드물고 극단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거의 항상 무효라고 보는 미국 대법원 판례의 가장 기본적인 헌법적 기조를 강화하는 관점이죠.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하는 발표에서 어떤 세력(그게 무엇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과 싸우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세력을 악으로 규명하고 그것에 대한 대응으로 가장 극단적인 정부 규제인 계엄령을 선보였습니다.
그가 지키려고 했던 사상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과연 합리적 논증을 거친 것인지에 대한 내용적인 비판은 뒤로 하고, 정부 또는 대통령 스스로가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다면 그 옮음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무력이 아니라 사회적 토론입니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선택은 우리 사회의 좌우 진영을 더욱 극명하게 나누는 계기가 되어 사회적 토론을 더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대통령은 무엇이 그렇게 무서워서 사람들의 입을 막으려고 했던 것인지 묻게 됩니다.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민주주의의 터널을 지나면 거짓이라고 판단받을까 두려워서, 그 터널의 입구를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아찔한 생각이 듭니다.
당당하면 숨을 필요도 대화를 거부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가 지키려고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백번 양보한다 치고 무죄추정의 원칙까지 적용해서 그 가치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신념을 주장하는 방법은 반대편을 지우는 무력이 아닌 대화여야 합니다.
매 주말 추운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각자의 구호를 외칩니다.
거짓은 진실로, 비합리는 합리로 고쳐나가는 민주주의의 힘을 믿어 보기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