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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Feb 24. 2022

버스는 떠난다 - 영화 '우작(Uzak)'

우작(Uzak, 2002) 누리 빌게 제일란

*Uzak: distant, 멀리 떨어진, 무관한




할 수 있었다. 아니, 해야만 했다. 덜 떨어진 동생 유소프와 차를 타고 가던 길, 햇살이 쏟아지는 들판에 무심코 멈춰 너는 말했다. “여기 진짜 사진 찍기 좋은 장소다.” 덜 떨어진 동생 유소프가 말했다. “지금 카메라 설치할까요?” 너는 망설였다. 유소프가 다시 물었다. "할까요?" 너는 고민하다 말했다. “귀찮다. 뭘 찍냐.” 


고민하지 말아야 했다. 너는 그 차에서 내렸어야 했다. 차를 타고 가다 우연히 발견한 사진 찍기 좋았던 들판. 너는 거기서 사진을 찍었어야 했다. 그 사진 한 장이, 항상 집 작업실에서 예민하게 조형물을 배치해야만 사진을 찍는 너를 구원했을 테다. 그 사실을, 너만 모른다. 



할 수 있었다. 아니, 해야만 했다. 이혼한 전 부인, 나잔으로부터 마지막 전화가 왔을 때, 너는 하고 싶었던 그 말을 했어야 했다. 화장실 밖에 동생이 들락거려도, 전화기 너머 그녀가 정신이 없어보여도, 네 입이 정말 도저히 떨어지지 않아도, 너는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그 말, 그 말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너는 이제 외국으로 떠나 다시는 얼굴을 볼 수 없는 그녀를, 공항 먼발치에서 그저 바라만 보았다. 언제나 텅 비어 있던 너의 눈은 기둥 뒤에 숨어 그녀를 바라보는 그 순간에만 살아 있었다. 그 사실을, 너만 모른다. 



전 부인 나잔은 떠났다. 덜 떨어진 동생 유소프도 떠났다. 버스는 떠난다. 그 사실을, 너만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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