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처음 스승의 책을 편집하는 일을 맡았다. 스승과 출판 계약을 맺었다. 출판계약서는 원래 철저히 출판사가 ‘갑’, 저자는 ‘을’의 입장에서 작성되어 있다. 그래서 혹여나 내가 스승에게 ‘갑’질을 하는 부분이 있을까봐 출판계약서를 한줄 한줄 다시 썼다. 깨끗한 종이로 계약서 2부를 뽑았다. 스승에게 싸인을 받고 출판사에서 법인 도장을 찍어오면 계약은 끝이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그 계약서를 스승에게 그냥 건네기가 꺼려졌다. 갑자기 우리 사이에 이 딱딱한 종이가 끼는 게 어색했다.
뭔 바람이었을까. 도장 찍는 곳 옆에 예쁜 낙엽이라도 붙이고 싶어졌다. 나도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함께 공부하는 친구 중 가장 감성적인 친구마저 내 아이디어를 듣더니 “그건 나조차도 따라가기 어려운 감정선인데”라며 깔깔 웃었다. 그 친구가 내가 갑자기 감성충만한 소녀가 된 게 귀여웠는지 함께 낙엽을 주으러 가자고 해주었다. 선선한 가을 밤이었다. 우리는 집필실을 나와 쭉 걸었다. 구민센터 쪽 뒷 마당에 예쁜 낙엽들이 쌓여 있는 게 보였다. “야, 저기서 골라오자.” 처음에는 펜스 사이로 손을 넣어 낙엽을 주웠다. 그런데 마침 딱 예쁜 낙엽 두 장이 저 멀리 보였다. 그 낙엽을 주으러 서른 중반의 아줌마들 둘이서 구민센터 담을 넘었다. 마치 서리를 하는 소년들이 된 것처럼 가슴이 콩닥거렸다. 빨간 단풍잎 두 장과 노란 은행잎 두 장을 골라왔다. 혹시라도 구겨지거나 바스라질까봐 손바닥에 조심스럽게 펼쳐서 가지고 왔다. 계약서 마지막 장 도장 찍는 곳에 노란 은행잎 한 장과 빨간 단풍잎 한 장을 겹쳐 붙였다. 계약서에서 우리는 갑과 을이지만, 사실 우리는 단풍잎과 은행잎이라는 마음을 담아서. 그 가을 밤, 친구와 둘이 주민센터 뒷마당에서 낙엽을 서리하던 기억은 작은 씨앗이 되어 내 마음 속 한 구석에 심어졌다.
나는 어린 시절 어린애답게 논 기억이 많지 않다. 그나마 내 어린 시절은 아직 IMF 전이라 요즘 아이들에 비하면 정도 좀 있고 아이들도 뛰어놀던 시기이긴 했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모래를 파서 수로를 만들어 놀던 기억이 난다.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지금이면 참으로 위험천만한 길들을 씽씽 달리던 기억. 언니와 둘이 아파트 공터에서 꽃을 꺾어 화관이나 반지를 만들어 끼고 놀았던 기억. 아버지와 함께 연을 날리거나 미니카를 만들어서 놀던 기억. 아쉽게도 초등학교 고학년쯤부터는 부모들이 애들 공부시키느라 정신없는 동네라서, 친구들이랑 제대로 논 적이 거의 없다. 학원과 학원 사이에 떡볶이를 먹거나 잠시 오락실을 가거나 아니면 몰래 만화책을 보거나 게임을 하던 기억 정도. 그래서 그랬을까. 어른이 되고 나서는, 어린 시절 얼굴이 새까매질 때까지 놀았던 기억이 많은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에 비해 내 어린 시절은 참 삭막하고 차가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은 친구들과 함께 시골 마을에 놀러갔다. 밤하늘에 별이 잔뜩 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민사고를 다닐 때도 밤하늘에 저만큼씩 별이 떠 있곤 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하늘을 볼 여유가 없었다. 단 한 번도 밤하늘의 별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빡빡했던 내 마음에 별빛이 들어올 틈이 없었으니까. 같이 놀러간 한 친구가 말했다. “여기 한 번 누워볼래?” 길바닥이었다. 그야말로 콘크리트 길바닥. 그 친구가 먼저 길바닥에 벌렁 누웠다. 나도 좀 머뭇대다 옆에 누웠다. 밤하늘의 별이 몸에 쏟아질 것 같았다. 콘트리트 바닥의 잔열이 등에 따뜻하게 전해졌다. “너는 맨날 이렇게 누워서 별을 봤어?” “응.” “좋았겠다.” “근데 나는 항상 그래서 좋은지 몰랐어.” “그렇구나.”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가진 것은 잘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여름밤의 대화. 밤 하늘의 별과 콘크리트 바닥의 온기 또한 마음 한 구석에 남았다.
따뜻한 유년 시절. 난 늘 그게 부러웠던 것 같다. 걱정도 상처도 없이 자랐지만, 많이 웃고 많이 놀고 많이 부대끼며 자라진 못했으니까. 깔깔대는 웃음소리. 손잡고 껴안으면 느껴지는 온기. 실컷 울고 웃고 노는 마음.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기에 항상 모호한 느낌으로만 가지고 있었지만, 사실 늘 그런 것들이 그리웠던 것 같다. 참 다행이다. 내가 그렇게 갈구했던 그 삶에 이제서라도 다다를 수 있어서.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던 ‘따뜻한 유년 시절’을 나이 마흔이 다 되어서 되찾을 수 있어서. 누가 뭐래도, 두 번 사는 삶은 행운이자 축복이다.
며칠 전 친구들과 함께 겨울 눈밭을 뛰어 놀았다. 나이 서른 마흔 예순이 다된 사람들끼리 눈오리를 만들고 눈밭에 벌렁 누워 뒹굴고 강아지와 실컷 뛰어놀았다. 오락기계 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게임을 하고 서로 주짓수를 하고 복싱을 하며 깔깔대며 웃었다. "함께 보낸 어린 시절." 어느 날 아이폰이 지멋대로 사진들을 분류해놓더니 떡 하니 붙여놓은 폴더명. 그 이름이 마음에 들어 한참을 바라봤었다. 그리고 알았다. 나 두 번째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구나.
어린 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고 어른의 삶을 씩씩하게 살아가는 것. 그게 진정 성숙한 삶이 아닐까 싶다. 나는 먼길을 돌고 돌아, 함께 있으면 어린 시절의 마음이 되살아나는 사람들을 찾았다. 그들과 함께 두 번째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어서 기쁘다. 나도 겨우 되찾은 이 동심으로 내 소중한 사람들의 동심을 되찾아주어야지. 나에게 따뜻한 유년시절을 선물해준 소중한 사람들에게 다시 따뜻한 유년시절을 선물해주고 싶다. 나를 아이로 만들어줘서 고마워, 나도 너를 더 씩씩한 아이로 만들어줄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