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게 없는 것. 오랜 시간 나의 콤플렉스였다. 그게 내 콤플렉스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지한 건 내가 스타트업을 거의 말아먹을 즈음이었다. 옳은 방향이든 그른 방향이든 일단 하기로 한 일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봐야 한다. 끝까지 걸어간 길의 끝에서만 다음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문을 발견할 수 있으니까. 나의 경우에도 그랬던 것 같다. 몸도 마음도 망가져가면서 스타트업에 집착하던 시기의 끝자락쯤. 열심히 했는데도 도저히 잘 될 기미가 안 보여 애써 외면하던 절망감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쯤. 어느 한 방송에서 강형욱 훈련사를 봤다. 그때는 그가 지금처럼 유명해지기 전이었다. 그런데도 그에게는 어떤 아우라 같은 게 있었다. 강아지가 너무 좋아서 강아지똥은 무슨 맛일까 궁금해서 맛본 적도 있다는 그의 말을 듣고 마음 한 구석에서 좌절감이 밀려들었다. 그때 나는 온 세상을 오로지 사회적으로 성공했는가 성공하지 못했는가의 기준으로만 판별하던 사람이었다. 성공하면 행복, 실패하면 불행. 거의 그 정도의 거친 이분법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으니 얼마나 내가 성공하고 싶어 안절부절이었겠는가. 그래서 늘 불안했다. 열심히 했는데도 성공하지 못할까봐. 그런데 강형욱 씨의 표정에서는 불안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좋아하는 일이 아니면 지속할 수 없고, 지속하지 않으면 잘 할 수 없고, 잘 할 수 없으면 성공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 당시 나는 성공하고 싶었을 뿐,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내 성공이 중요했지, 내 일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니 나에게 성공을 가져다 줄 것이 아니면 그 일을 할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강형욱씨는 달라 보였다. 물론 그도 생계나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힘든 시기를 겪었겠지만, 그는 결코 자기가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강아지를 좋아하는 마음을 넘어서지 않는 것 같았다. 그에게는 흔들리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오랜 시간 묵묵히 지켜온 사람의 단단함이 있었다. 그 단단함이 부러웠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때가 내가 좋아하는 게 없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비루해보인 순간이었던 것 같다.
나는 무엇을 좋아할까? 그걸 고민했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어 끝까지 걸어갔던 길의 끝에서 나는 간신히 새로운 세계로 가는 문을 열었다. 나의 첫 번째 삶의 테마가 ‘성공’이었다면, 나의 다음 삶의 테마는 ‘욕망’이었다. 그 세상에서는 온통 네가 좋아하는 걸 찾아서 그것을 꽉 쥐라고 말했다. 막막했다. 나는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스승을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내가 질문을 하나 했다. “저는 아무 것도 하기 싫은데 빨래 개는 것만 좋아요. 그건 왜 그런 거예요?” 스승은 나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빨래 개는 것만 혜원씨 부모님이 혜원씨한테 시키지 않은 것이니까요.”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내 욕망이 어떤 식으로 교살되었는지 차츰 알아갔다. 운동, 음악, 미술, 전시회, 하다못해 여행까지. 보통 사람들이 좋아할 법한 일들을 나는 어릴 때부터 모조리 의무로 해왔다. 시켜서 한 운동, 시켜서 한 음악, 시켜서 그린 그림, 시켜서 간 공연과 전시회, 심지어 시켜서 간 여행까지. 아무리 즐거운 것이라도 시켜서 한 일이 어떻게 좋을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나의 욕망은 모조리 부모가 금지한 곳에서만 피어올랐다. 어린 시절에는 만화책과 게임 말고는 좋아하는 게 없었다. 그게 부모가 하지 말라는 것이었으니까. 커서는 유튜브와 술, 연애, 유흥, 섹스, 그리고 남들은 다 싫어한다는 몇몇 집안일들밖에 하고 싶은 게 없었다. 그게 부모가 하지 말라는 것이었으니까. 그게 내가 살면서 그나마 좋아한다고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내가 거의 모든 욕망이 교살된 인간이라는 걸 깨달은 날, 화가 나고 처참했다. 나를 이 따위 인간으로 만들어놓은 부모에게 화가 났고, 내가 마치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메마른 땅처럼 느껴져서 처참했다. 적지 않은 시간 또 자기연민에 빠졌다.
얼마 전이었다. 스승과 친구와 전시회를 보러 갔다. 스승과 친구는 미술 작품들을 보면서 마치 사랑하는 연인과 데이트를 할 때처럼 설레어 했다. 나는 미술작품을 보는 것에 익숙하다. 아마 그 셋 중 미술작품을 가장 많이 접했던 사람은 나일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거의 주말마다 갤러리와 음악회를 다녔다.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게 ‘있어보이는 일’이니까. 익숙하기에 그냥 보이는 것이 있다. 마치 회사일을 많이 하다보면 보고서 첫 장만 봐도 그 내용을 다 알 수 있는 것처럼. 나에게 미술 작품은 그 보고서의 첫 장 같다.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른다면 더 순수하게 알아갈 수 있을 텐데, 의무의 반복으로 생긴 이상한 안목 때문에 오히려 감성이 꼬여버린 느낌이다. 전시회장에서 그림을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두 사람을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신기했다. 무언가를 저만큼 좋아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뒤에 서서 혼자 생각해봤다. "내가 저만큼 설레는 순간은 언제지?" 처음 철학흥신소를 다닐 때, 매일같이 발이 새까맣게 탈 정도로 왕복 세 시간씩 지하철을 타고 오갔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내가 몸이 힘들고 아픈 순간에도 나를 기꺼이 방에서 나오게 할 수 있는 것은 현재까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밖에 없구나, 하는 자각이 들었다. '사람'. 어쩌면 그게 부모가 나에게 금지한 가장 큰 대상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인문주의에 강력히 끌렸던 이유도, 평생을 사람과 사랑을 금지당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 아닐까.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꽤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혔던 화두다. 이제 그 화두에 한 번 점을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좋아하는 것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나 자신과, 내가 함께 살을 부대끼고 있는 스승과 몇몇 친구들이 전부다. 나는 철학을 좋아하지도, 글쓰기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내가 그걸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몸이 힘들고 아픈 날에도 기꺼이 철학을 공부하고 글을 쓰러 나가야 할 테니까. 난 그러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내 자신과, 몇몇 소중한 이들을 빼고는 좋아하는 게 없다. 그게 현재 내가 서 있는 지점이다. 언젠가 스승이 말했다. 혜원이는 진짜 나르시스트라고. 혜원이는 진짜 나르시스트라서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그 말을 듣고 빙긋 웃음이 났다. 스승의 말이 맞았다. 난 내가 좋았다. 그래서 항상 뭔가 더 있을 것 같았다. 내 삶이 이대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나르시시즘의 뒷면은 자기혐오다. 자기비하가 아니라 자기혐오. 내 삶이 이대로 끝날 것 같지는 않은데, 지금 이 자리에서 한 발자국을 못 내딛어 주춤거리고 있는 나에 대한 자기혐오. 비록 그릇은 작지만, 그 나르시시즘/자기혐오가 나를 부잣집 딸래미에서 명문대 유학생으로, 명문대 유학생에서 스타트업 창업자로, 스타트업 창업자에서 철학도로 끊임없이 걷게 한 것은 맞다. 나는 이제 내가 어떻게 해야 잘 사는것인지 안다. 4년 동안 삶에 대해 빡세게 공부해서 안다. 그걸 아니까 이제 그냥 그걸 하면 되는 것이다. . 나는 여전히 내 삶이 이대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나는 나를 좋아한다. 나는 내 삶을 존중한다. 내가 좋아하는 나를, 내가 존중하는 내 삶을 이렇게 흐리멍텅한 채로 남겨두고 싶진 않다. 그렇게 남겨두는 만큼 나는 자기혐오에 시달릴 테니까.
가야할 길이 보이면 닥치고 하는 거다. 그게 좋아하는 것이 없었던 내 지난 삶이 나에게 알려준 삶의 지혜다. 욕망의 두 축은 대상과 힘이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대상이 있어야 하고, 그걸 찾았다면 그 좋아하는 대상을 꽉 쥐는 힘이 필요하다. 대상이 없어도, 힘이 없어도, 욕망은 죽는다. 모든 것에 시큰둥해 아무것도 좋아하는 게 없는 사람도, 모든 것에 힘이 없어서 아무것도 꽉 쥐지 못하는 사람도, 욕망을 따르는 기쁜 삶을 살 수는 없다. 이제 알겠다. 좋아하는 것을 찾겠다는 나의 4년의 시간은 사실은 도망이었다는 것을. 스타트업할 때도 자기 사업이 너무 좋아서 아침마다 일하고 싶어 눈이 번쩍 떠진다는 사람들이 부러웠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좋아하는 어떤 대상을 만나면 운명처럼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 믿고 싶었나 보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안다. 욕망이 대상과 힘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나는 '힘'을 내고 싶지 않았으니까. 어려서부터 너무 용을 쓰고 살아서 그게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것에는 다 질려버렸으니까. 그래서 자꾸만 '대상'에만 눈이 가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쉽게 가는 길은 없다.
이제는 안다. 나는 점점 좋아하는 것이 많아질 것이다. 나만 좋아하던 나는 이제 몇몇의 너를 좋아하게 되었으니까. 너를 좋아하는 만큼, 네가 좋아하는 그것을 나도 결국 좋아하게 될 것이라는 걸 안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대상은 점점 커질 것이라는 걸 안다. 문제는 '힘'이다. 나는 좋아하는 것을 정말 힘껏 좋아해본 적이 있는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나 자신'이라면, 나는 '나 자신'을 힘껏 좋아해본 적이 있는가? 나 자신이 좋아서 내가 비루한 삶을 사는 꼴을 도저히 볼 수 없다면, 아니, 나 자신이 좋아서 내가 더 근사한 삶을 살길 바란다면, 그렇게 힘껏 살아봐야 한다.
어린 시절 숙제를 하지 않고 논 적이 없다. 해야할 일을 먼저 하고난 다음에야 놀았다. 학창시절 시험시간에 조는 친구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나에게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스타트업할 때 단 하루도 출근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매일 컴퓨터 앞에서 10시간을 앉아 있었다. '의무'밖에 없었던 삶이다. 그 '의무'를 정말이지 강박적이게 잘도 해온 삶이다. 그 '의무'에 질식해서 내 마음은 메마른 땅이 되어버렸다. 그 땅에 스승이 물을 주고 친구들이 빛을 비추고 나도 열심히 갈고 닦아서 이제 싹을 몇 개 틔워냈다. 메말랐던 내 땅은 이제 제법 비옥해졌다. 이제는 다시 농사꾼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조심스럽게 틔워낸 싹들을 소중히 간직하며 다시 성실하게 밭을 갈고 싶다. 욕망의 의무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의무적으로 할 것. 다시 열심히 숙제하던 혜원이로 돌아가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이 해야 하는 일이다.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고 노는 것은 도망이다. 해야 하는 일은 하고 놀자, 학창시절에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