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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Apr 08. 2023

'나의 이혼식' 프롤로그

연애 6년, 결혼 7년.


나와 남편의 관계는 끝났다. 사랑해서 결혼한다고 생각했다. 결혼을 하면 도리어 사랑이 사라진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결혼 4년차, 나와 남편의 사랑은 애초에 끝났음을 알았다. 우정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와 남편은 오랜 시간 함께 한 친구였으니까.


나와 남편의 우정도 끝났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결국 모든 관계가 끝나는 이유는 하나다. ‘어긋남’. 나와 남편은 어긋나 버렸다. 그게 길었던 우리 관계가 끝난 이유다.


이혼이라는 선택 앞에 섰다. 결혼한 부부 중 삼분의 일이 이혼하는 세상이라지만, 이혼은 아직 나에게 실존적인 선택지다. 연인이었으면 헤어졌을 관계, 결혼이라서 머뭇대고 주저하고 있다.


나는 이혼이 무섭다. 그래서 이혼을 파헤쳐보려고 한다. 무엇이 두려울 때 그 두려움을 해소하는 방법은 그 두려움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다. 어둠이 두려운 이유는 그 어둠 속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니까. 결혼과 이혼이라는 문제 뒤에 뒤엉켜 있는 가족주의, 사회적 시선, 여성의 성.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을 가로지르고 있는 나의 미숙한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한다. 이 글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글이 나를 어디론가 데려다줄 것은 알겠다. 이 글이 나를 어디론가 데려다 주면 그곳에서 다시 걸으면 된다. 글은 그렇게 써야하는 것이었다.


내 브런치는 공개적인 공간이다. 내 남편, 내 가족, 내 이혼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사람들, 내 이혼을 걱정하거나 응원하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하든 행복하길 바라는 친구들이 드나드는 공간이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는 어떻게든 내 삶을 살아보려고 이 글을 쓰지만, 이 글이 누군가에게 불편이나 불안을 일으킬지언정 상처를 주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내 길을 가지만, 그 과정에서 최대한 누구에게도 상처주고 싶지 않다. 그럴 수 있도록 애를 쓸 것이다. 이것이 내 진심이다.


서른여덟. 적지 않은 나이. 결혼 제도에서 벗어나는 것이 무섭다. ‘이혼녀’ 타이틀을 다는 것이 무섭고, 가족들에게 ‘무난하지 않은 딸’이 되는 것도 무섭다. 더 이상 회복할 수 없음을 알지만, 12년이라는 긴 관계를 마무리 짓는 것도 무섭다. 백수에다가 이혼까지 한 딸. 앞으로 부모님이 걱정할 것을 생각하면 미안하고, 싸가지 없는 며느리 늘 잘 대해주셨던 시댁 어른들께도 진심으로 죄송하다. 어쩌면 나라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별 탈 없이 결혼 생활을 잘 이어갔을 내 남편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있다. 하지만 이 두려움과 미안함 뒤에 작은 설렘도 있다. 그 설렘을 부여잡고 한 걸음씩 걸어보려 한다.




“내가 배우는 것은 모두 어떠한 일을 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고, 그 일을 하고 나면 나는 그것을 잊어버린다네.” 질 들뢰즈


철학공동체에서 들뢰즈 수업을 한다. 이번에 수업을 하면서 가장 마음에 들어왔던 문장이다. 철학을 하면서 항상 공부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궁금했다. 들뢰즈가 말한다. 철학은 의미있는 문제에 대한 개념을 생성하는 것이라고. 나는 철학자가 아니기에 개념을 생성할 역량은 없다. 하지만 삶의 공부도 그와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삶의 의미 있는 문제를 직면하고 그 문제를 둘러싼 개념을 배워나가는 것. 삶의 실존적인 문제 앞에서 사람이 얼마나 절실하게 공부하게 되는지, 나는 이미 경험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배운 것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체득한다는 걸, 그렇게 배운 것만이 지적허영이 아닌 진짜 지식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이 글은 내 개인적인 이야기다. 내 결혼생활을 돌아볼 것이다. 잘 돌아보고 잘 보내줄 것이다. 미우나 고우나 내 삶에서 남편과 결혼생활은 부모만큼이나 큰 조각이니까. 지금은 여러 가지 감정으로 때가 묻어 흐리멍텅하지만, 다시 잘 닦아 빛나게 만들어 마음 한켠에 정성스레 묻어줄 것이다. 그게 소중한 것의 끝을 애도하는 방법이라 배웠다.


그리고 이 글은 결혼과 이혼, 한국 여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한국의 여성이며, 한국의 여성이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어떤 구조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 구조 안에서 그 구조를 파헤칠 생각이다. 그것이 누구도 원망하고 싶지 않은 지금의 내가 이 응축된 감정을 폭발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 같다.  




7년 전 지금만큼이나 따사로웠던 봄날, 결혼식을 올렸다.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웃고 있었다. 7년이 지나 그때만큼이나 따사로운 봄날, 이혼에 대한 글을 쓴다. 이 글은 내 이혼식이다. 이 이혼식이 끝나는 날, 그때의 나는 모든 것을 안 채 웃고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가장 심한 위험에 처하게 될 때,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더 없는 행복 속에 있게 된다.『선악을 넘어』 프리드리히 니체


두려움과 미안함, 그리고 설렘을 안고 한 걸음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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