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원 Jan 11. 2024

작은 것의 아름다움

다큐멘터리 <수라>를 보고

“혁명은 남이 하는 것이다.”


어느 날 스승이 화두를 던졌다. 내가 삶과 철학을 배우고 있는 인문 공동체 철학흥신소는 도심 속의 절 같은 공간이다. 철학자이자 작가인 스승은 종종 제자들에게 더 기쁜 삶을 위한 깨달음을 주기 위해 불교의 선문답 같은 화두를 던진다. 나를 포함한 제자들은 그 아리송한 화두를 붙잡고 각자의 방식으로 글을 쓰며 화두를 풀어 나간다. 어떤 글이든 상관없다. 하지만 ‘진짜’ 글이어야 할 것. 그것이 유일한 조건이다.


스승이 그때 던진 화두는 때마침 내가 고민하고 있던 주제였다. 그렇기에 다른 친구들에게 비해서 어렵지 않게 스승의 화두에 대한 내 글을 써내려 나갔다. 당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폐기가 결정되었던 시기다. 나는 그때 오염수 폐기 반대를 위한 서명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 결정에 직격타를 맞을 작은 어촌 마을에 찾아가 수산시장을 가보았다. 나는 원래 ‘우리’의 문제에 그다지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때 내가 작은 정치적 행동을 했던 것은 순전히 그때 내가 좋아했던 친구의 삶의 즐거움이 퇴근 후 해산물 한 접시를 먹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친구가 해산물을 못 먹게 되면 그 친구의 삶의 즐거움이 하나 사라질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혁명은 남이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친구 때문에 작은 혁명을 했다는 이야기를 글로 썼다.


그 당시 나는 ‘나’밖에 보지 못했던 내가 드디어 ‘너’를 조금이라도 볼 수 있게 되어서 스스로가 대견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상태였다. 온통 나 밖에 없는 세상을 살다가 내 새끼 하나를 이뻐하게 된 철부지 엄마의 마음과 비슷했다. 그런데 어느 날 스승이 수업 중에 후쿠시마 오염수 폐기에 대한 이야기를 스치듯이 했다. “이게 회를 못 먹는 문제야? 바다에 사는 돌고래랑 물고기들은 다 죽는 거잖아.” 나는 스승의 어린 딸이 후쿠시마 오염수 이야기를 듣고 “그럼 이제 우리는 멸치도 못 먹는거야?”라고 스승에게 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스승은 나처럼 그 딸의 이야기에도 마음이 아팠을 거다. 하지만 그 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바닷속 생명들의 죽음에 마음이 아팠을 거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내 새끼 하나 우쭈주하게 된 걸 대견스럽게 여기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시간이 지났다. 어느 날, 한 친구의 글을 보게 되었다. 스승의 화두에 대한 글이었다. 그 친구는 자신이 보았던 한 다큐멘터리에 대한 감상으로 그 화두를 풀었다. <수라>라는 다큐멘터리였다. 새만금 간척 사업으로 인해 바다 물길이 막혀 세계에서 가장 큰 서해안의 갯벌이 마르고 그곳에 살고 있던 생명들이 떼죽음을 당한 것을 담담하게 찍어낸 다큐. 그 글이 마음에 들어올 줄 몰랐다. 그런데 마음에 들어왔다. 아름다운 글이라고 생각했다. 동물 관련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그 친구의 고민과 부끄러움이 와닿았고, 무엇보다 작은 생명들을 어여삐 여길 수 있는 그 친구의 마음이 와닿았다. 물고기떼와 돌고래가 죽고 있는 마당에,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해산물을 못 먹게 된 것밖에 보지 못했던 내 어설픈 글도 생각났다. 내 새끼도 이뻐하지 못하면 돌고래도 이뻐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걸 대견스럽게 여길 일은 아니었다는 자각과 함께.


왜 그랬을까? 그 다큐 생각이 났다. 그 다큐를 봐야겠다는 마음과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정확히는 보기 무섭다는 마음) 사이에서 며칠을 갈등했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다큐를 켰다. 다큐는 슬프지만 아름답고, 무겁지만 가벼웠다. 새만금 간척 사업으로 서해안 갯벌에 바닷물길이 끊기자 그 넓은 갯벌에 살고 있던 조개 몇천만 마리가 폐사한다. 조개들은 물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다가 비가 내리던 어느 날 드디어 물이 들어온 줄 알고 일제히 모든 힘을 끌어모아 물밖으로 나온다. 그런데 그건 바닷물이 아니었고 빗물이었다. 그 기다림의 마지막 힘을 다 끌어 써버린 조개들은 동시에 입을 벌리고 폐사한다. 검은 갯벌에 조개들의 시체가 허옇게 물든다. 그 장면이 마음에 사무치도록 슬펐다. 인간은 저 작은 것들의 생명을 앗아갈 권리가 있는가?



새만금 간척 사업은 바다의 생명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과 생명 또한 앗아간다. 그곳의 주민들은 간척 사업을 막기 위해, 나중에는 가장 마지막 수문이라도 열기 위해 정부를 상대로 힘겨운 투쟁을 이어간다. 그 와중에 삶은 피폐해지고 몇몇 사람들은 생명마저 잃는다. 다큐에는 새만금 간척 사업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결 장면이 나온다. 판사들은 모두 삶과 동떨어진 엄숙한 제복을 입고, 모든 사람들을 내려다 볼만한 높은 단상에 빙 둘러 앉아 판결을 내린다. “새만금 간척 사업으로 인한 피해는 없다. 이 상고로 인한 모든 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그 판사들이 앉아 있던 높은 책상들이 서해 바다를 가로 막은 그 거대한 방조제처럼 느껴진 건 나뿐일까. 조개들의 명백한 떼죽음은 왜 명백한 피해가 아닌가. 단지 공부를 많이 했다는 이유로 그들의 삶과 완벽하게 유리된 곳에 있는 자가, 그들의 삶을 좌지우지할 권한을 갖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적어도 다른 이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줄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자라면, 그 갯벌에 와서 조개들은 어떻게 죽었는지, 조개를 캐며 살아가던 사람들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그리고 단지 자신의 삶의 터전을 되찾기 위해 항의했던 사람들은 어떤 보복을 당했는지 곁에서 지켜보기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판사들의 ‘삶에서 유리된’ 무표정한 얼굴이 그 무엇보다 나를 화나게 했다. 그 얼굴이 무엇인지 알아서, 그리고 나에게도 여전히 그 얼굴이 있다는 걸 알아서 화가 났다. 그 판사들은 죽기 전에 자신의 단순한 직업적 결정이 수천 만 개의 생명들을 죽였다는 걸 알게 될까.


바다 위의 방조제 만큼이나 부자연스럽다.


바다의 생명은 너무나 어여뻤다. 그 작은 생명들은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우리 눈에는 그저 ‘새’일 뿐이지만, 그들을 희망 없이 지켜오던 사람들의 눈에 그것은 그냥 ‘새’가 아니었다. ‘전도요’고 ‘민물도요’고 ‘뒷부리도요’였다. 천천히 걸으면서 톡톡 먹이를 먹는 ‘전도요’, 다리 걷는 폭이 넓어 툭툭 튀어 다니며 먹이를 먹는 ‘민물도요’, 전력 질주를 해서 먹이를 먹는 ‘뒷부리도요’였다.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만 그것의 단독성이 보인다. 단지 그 작은 생명들을 사랑하게 되어 몇 십년을 희망없이 새만금을 지키고 있는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사람들. 그들의 눈으로 본 작은 것들의 아름다움은 경이로웠다. 정말이지 그 작은 것들은 각자만의 아름다움으로 완전했다. 검은머리갈매기는 흑단처럼 까만 머릿깃털이 우아해서, 도요새는 오동동하고 짧둥한 다리가 귀여워서, 흰발농게는 한쪽만 큰 집게발이 자연물에 어울리지 않는 언발란스한 유쾌함을 자아내서. 차마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매혹적인 색깔과 곡선, 움직임, 지저귐의 선율. 그 모든 게 그 자체로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그것을 사랑하게 된 사람의 눈에만 그것의 단독적인 아름다움이 보인다. 그리고 그것의 아름다움을 보게 된 순간, 그것과 ‘나’ 사이를 잇는 자연의 보편적인 아름다움이 보인다. 작은 것들의 아름다움을 사랑하게 된 이들은, 그 작은 것들과 자신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군산에 사는 동필 씨는 집을 고치고 가구를 만들면서 생계를 이어간다. 군산에 사는 물새들은 갯벌에서 먹이를 잡으며 생계를 이어간다.” 그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다큐멘터리 감독 ‘윤’도 그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아 간다. “나는 군산에서 아들 도영을 키우며 살아간다. 검은머리물떼새들은 군산에서 새끼새들을 키우며 살아간다.” 이 모든 자연스러운 삶의 진실은 재판정의 높은 단상 위에서만 보이지 않는다.


사랑이란 작은 것에 대한 지향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큰 것일 수 있다. - 이성복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달의 밝음만큼이나 어둠을 볼 수 있고, 달의 어둠만큼이나 밝음을 볼 수 있는 역량이다. 아니, 비록 내가 본 면이 달의 어둠뿐일지라도 그 뒤의 밝음을 느끼고, 내가 본 면이 달의 밝음뿐일지라도 그 뒤의 어둠을 느낄 수 있는 역량이다.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일 테다. 내가 본 면이 그 사람의 밝음이라고 해서 그 사람을 '밝음'으로 규정하는 것은 '미화'다. 반대로 내가 본 면이 그 사람의 어둠이라고 해서, 그 사람을 '어둠'으로 규정하는 것은 '비겁'이다. 나에게 잘해준 사람은 '좋은 사람', 나에게 상처준 사람은 '나쁜 사람' 취급하는 것은 쉽고 간편하지만 얼마나 미숙한 일인가. 세상에는 완전한 '밝음'도 완전한 '어둠'도 없다. 늘 '밝음'과 '어둠'은 공존한다. 이 삶의 진실을 패배주의나 회의주의가 아닌, 단단하고 명료한 마음으로 받아 들일 수 있는 것이 '성숙함'일 테다. 세상의 '밞음'만 보는 것은 순진한 어린아이고, 세상의 '어둠'만 보는 것은 겁먹은 헛똑똑이고, 세상의 '밞음'과 '어둠'을 모두 보았지만 그것을 제대로 보지 못해 '혼란'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은 염세적인 늙은이다. 나는 이제 세상에 공존하는 '밝음'과 '어둠'을 모두 보고 싶다. '밝음'은 '밝음'대로 '어둠'은 '어둠'대로, 두 눈 똑바로 뜨고 제대로 보고 싶다. 나는 그렇게 성숙한 어른이 되고 싶다.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적어도 아름다워질 잠재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설령 나에게 어둠으로 인식되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내가 보지 않은 그 사람의 뒷면에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 사람은 어둠 만큼이나 밝음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보고 싶지 않았다. 어둠의 뒷면에 밝음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도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 사람을 '어둠'으로 인식하는 것이 나에게 더 편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로 하여금 그 사람을 보게 만든 건 그 사람의 밝음 때문이었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느낄 수 있는 마음. 온통 어둠으로 처리해놓은 내 마음에 그 밝음이 한 줄기 빛처럼 들어왔다. 나는 그 빛에 끌려 그 사람의 어둠 뒷편으로 걸어가봤다. 그 뒷편에는 어쩌면 나도 알고 있었던, 그 사람의 밝음이 있었다.


지난 일년 동안 나를 끈질지게 따라붙던 고민이 있었다. 목구멍이 뜨거울 정도로 그 복닥거리는 고민을 품고 있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도 나는 어떻게든 근사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무엇이 근사한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저 멀리 있는 근사함에 가닿고 싶었다. 많은 좌충우돌이 있었다. 내가 철학을 하면서 배운 모든 앎과 수행방법들을 총동원했다. 그래도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이건 무조건 참는다고, 날카롭게 분석한다고, 또 주구장창 몸만 조진다고 될 일이 아니었으니까. 언제 마음에 틈이 생겼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일년 동안 나는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보았다. 아름다운 사람들. 아름다운 철학들. 아름다운 자연들. 아름다운 영화들.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진짜' 아름다운 것들. 그래서 나 또한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느낄 수 있는 마음이 생겼던 것일까. 여전히 알 수 없지만, 모든 것은 '어떤 것을 아름답게 느낄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은 알았다.


논리는 얼마나 허접한가. 자연은 '빨강이 있어서 파랑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빨강도 있고 파랑도 있는 것'이다. 빨강도 파랑도 그냥 있는 것이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는 마음도 거기서 시작하는 것일 테다. "빨강도 파랑도 그냥 있다." 그러니 "빨강이 있는데 어떻게 파랑이 있을 수 있냐?"는 물음은 얼마나 순진한 물음인가. 내가 던져야 할 진짜 물음은 "빨강과 파랑을 둘다 볼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빨강과 파랑의 공존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가?”일 테다. 그리고 전자와 후자는 같은 문제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밖에 없을 테니까.


오랜 시간 그림이 보고 싶었다. 그림에서 아름다움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나마 사람을 표현한 그림에서는 무언가 작은 감정이라도 느껴졌지만, 자연을 그린 그림에서는 그 무엇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잘 그렸네' 이상의 아무 감상도 들지 않았다. 자연은 밍숭맹숭하다고 생각했다. 그런가? 그렇지 않았다. <수라>에 나온 검은물떼새의 부리는 그 어떤 화려한 색보다 화려한 주황빛이었다.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은 무엇일까? 한때 자연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나보다 큰 것을 보고 있으면, 어린아이가 부모의 품에 안긴 것 같은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안정감' 또한 나를 향한 감정일 뿐이다.


어제 글을 다 쓰고 한 그림이 떠올랐다. 스승의 글에 등장했던 세잔의 산 그림이었다. 그 그림이 처음으로 마음에 들어왔다. 산과 마을을 그린 그 그림을 보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울컥했다. 왜 울컥했는지는 모른다. 그런데 나는 세잔의 산 그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