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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Apr 29. 2024

한  사랑

좋아하는 이의 사랑 이야기를 알고 있다. 햇살이 좋은 어느 봄날, 출근을 하던 남자는 우연히 한 카페에 들어갔다. 그 카페에서 자스민 차를 마시고 있던 한 여자를 만났다. 둘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이후의 이야기도 알고 있다. 어느 날 여자는 남자에게 둘이 처음 만났던 그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다. 남자는 이별을 직감했다. 여자는 자스민 차를 마셨고, 고맙고 행복했다는 말을 하고 일어섰다. 카페에서는 룰라의 쓰리포가 흘렀다. 둘의 사랑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한 사랑이 있었다. 그 사랑은 벚꽃이 흩날리던 어느 봄날, 어느 아름드리 나무 밑에서 시작되었다. 둘은 캔커피를 나눠 마셨고 좋아하는 음악 이야기를 나눴다. 남자는 그 나무에 얽힌 자신의 옛날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여자는 남자를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둘 사이에는 설렘과 두려움과 조심스러움이 공존했다. 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곧 일어섰다. 남자는 나무를 돌아보는 여자의 모습을 보았고 그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둘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한 사랑이 있었다. 그 사랑은 어느 봄날, 어느 아름드리 나무 밑에서 끝이 났다. 어긋난 둘은 한동안 만나지 않았다. 어느 날 남자는 마지막으로 선물을 주고 싶다고 했고, 여자는 그 나무 밑에서 다시 만나자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둘은 환하게 웃었다. 둘 사이에는 미안함과 고마움과 후회와 안쓰러움이 공존했다. 남자는 여자에게 선물과 편지를 건넸고, 여자는 한참을 울었다. 둘은 캔커피를 나눠 마셨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곧 일어섰다. 남자는 나무를 돌아보는 여자의 모습을 보았고 그 모습을 마음에 담았다. 둘의 사랑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한 사랑이 있었다. 그 사랑은 성급한 섹스로 시작되었다. 술과 욕정과 애정과 외로움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슬픈 섹스였다. 남자는 서툴렀고 여자는 혼란스러웠다. 섹스가 끝난 뒤 둘 사이엔 아무 말이 없었다. 둘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한 사랑이 있었다. 그 사랑은 정다운 섹스로 끝이 났다. 둘은 서로를 마주 보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자는 여자를 웃겼고 여자는 큭큭 웃었다. 섹스가 끝난 뒤 둘은 말없이 서로를 안았다. 둘의 사랑은 그렇게 끝이 났다.


안녕.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돌아오는 길, 햇살이 따사로웠다. 좋은 사랑을 했다. 여자는 생각했다. 그 순간 시간은 직선이 아닌 나선으로 흐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랑은 삶의 연습이구나. 여자는 되뇌었다. 한 사랑이 있었다. 아름드리 나무에서 시작되어 아름드리 나무에서 끝난, 성급한 섹스로 시작되어 정다운 섹스로 끝난, 한 사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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