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엄친딸'의 몰락

by 김혜원

저는 '엄친딸'입니다. 부모님은 딸들의 일이라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 분이셨고, 저도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성실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좋은 환경에서 자란 덕에 공부는 꽤 잘 했습니다. 한번은 한 학원 강사가 제 학력을 보고 조작하려고 해도 티 날까봐 이렇게는 안 할 거라고 하더군요. 그럴 만도 합니다. 자식 교육에 열성인 부모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대치초등학교를 시작으로, 대청중학교, 민족사관고등학교, 대원외국어고등학교를 거쳐,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와튼 스쿨에 유학까지 다녀왔으니까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사업가인 아버지 밑에서 잠시 사업을 배운 뒤, 친구들과 함께 스타트업을 창업했습니다. 함께 한 친구들도 다 명문대 출신이라 초기 자금도 어렵지 않게 유치할 수 있었죠. 그야말로 ‘엄친딸’스러운 삶이었습니다. 적어도 여기까지는 말입니다.


만일 이것이 성공한 이의 자서전이었다면, 다음에는 사업 성공 스토리가 이어져야 하겠지요. 하지만 창업 이후, 엘리트 코스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 없었던 제 삶은 급격하게 선로를 이탈하기 시작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예정된 결과였습니다. 평생 부모님의 지원 아래 공부만 해왔던 범생이가 어떻게 사업처럼 변수가 많은 일을 잘 해낼 수 있었겠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저는 사업도 시험처럼 ‘열심히’ 하면 잘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매일 15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은 물론, 거의 수도승 같은 자세로 사업 이외에는 어떠한 관심사도 가지지 않으려고 했죠. 하지만 사업 준비 기간까지 합쳐 정확히 9년 뒤, 전 모든 투자금을 날린 채 망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업이 망한 후,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저를 따뜻하게 위로해주었습니다. 실패도 소중한 경험이다, 젊을 때 미끄러진 것이니 다시 도전하면 된다고요. 저도 정말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성공한 사업가’는 유치원 때부터 제 인생의 유일한 꿈이자 목표였거든요. 제가 학창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하고, 고된 유학 생활을 버티고, 창업 후 몸이 아플 때까지 일한 것은 모두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었거든요. 그런 저에게 꿈을 이루지 못한다는 말은 제 인생의 모든 의미가 사라진다는 말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니 어찌 제가 쉽사리 꿈을 포기할 수 있었겠습니까.


저도 다시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첫 번째 도전에서 정말 최선을 다했기에 두 번째 도전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실 사업이 망한 바로 다음날부터 다음 사업 아이템을 찾아 나섰어요. 그런데 시장 조사만 하러 나가면 구역질이 나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더군요. 게다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죽고 싶다는 생각만 나고, 사람들을 만나면 아무런 맥락 없이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길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의 시선이 얼굴에 꽂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사업은커녕 일상생활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죠.


뭐가 그리 힘들었냐고요? 실패했는데도 꿈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꿈은 여전히 저 앞에서 손짓하고 있는데, 저는 한 발자국도 뗄 수 없는 상황. 절망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오는 게 아니라, 원하는 것이 있는데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오는 것이더군요. 저는 절망했습니다. 이제 제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생 꿈만 보고 살았는데, 앞으로 꿈을 외면하는 삶을 살 자신이 없었습니다. 이미 천직을 놓쳤기에 지금부터 어떤 일을 해도 의미를 찾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망해버린 인생, 이대로 끝내고 다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매일 밤 내일 아침 눈 뜨지 못했으면 좋겠다고 기원하며 잠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울도 너무 깊어지면 바닥을 치고 반등하더군요. 어느 날 이렇게 살다가 진짜 죽겠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저는 살면서 한 번도 안 해본 짓을 해야겠다는 충동이 들었습니다. 쉴 새 없이 달려왔던 삶에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것. 바로 잠시 멈추어 서서 지난 인생을 돌아보는 일 말입니다. 이런 걸 필연적 우연이라고 할까요? 때마침 제가 평소에 좋아하던 한 철학자가 글쓰기 수업을 연다는 공지를 올렸습니다. 삼 개월 동안 매일 한 편씩 자기가 과거에 느꼈던 감정들에 대해서 글을 써야 하는 ‘하드코어’한 글쓰기 수업. 수업 소개글에는 자기 감정에 대한 글을 쓰다보면 자기 치유에 이를 수 있다는 말도 있었지만, 저는 그것보다는 ‘하드코어’라는 단어에 꽂혀 그 수업을 신청했습니다. 그 때는 뭐라도 빡세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불안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삼 개월 간 ‘하드코어’하게 제 과거의 삶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 철학자의 말이 맞았네요. 저는 글쓰기를 통해 제 삶을 돌아보며 자기 치유에 이르렀습니다. 아니, 지긋지긋했던 우울증을 치료한 것을 넘어 삶과 세상을 보는 관점마저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치유’라기 보다는 ‘재탄생’이라는 단어에 더 적합한 변화였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재탄생할 수 있냐고 물을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철학과 글쓰기를 시작한 뒤 주변사람들로부터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 걸 보면 그리 틀린 표현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변한 것일까요? 저는 지금까지 ‘망하지 않기 위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제가 성취에 목숨 걸고 실패를 용납하지 않았던 이유는 다 '망하지 않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저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결국 제 인생은 망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당연히 처음에는 그 망해버린 삶을 긍정할 수 없었습니다. 망하지 않기 위해 그토록 노력했는데 망해 버렸으니 얼마나 허망했겠어요. 하지만 깊은 절망과 빡센 성찰 끝에 제가 다다른 깨달음은 놀랍게도 ‘삶은 망해야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망하지 않기 위한 삶'의 태도들을 하나씩 버려나갔습니다. 그랬더니 정말로 삶이 조금씩 '기쁨'으로 채워지더군요. 그렇게 저의 삶은 '망하지 않기 위해 슬픈 삶'에서 '망해버려 기쁜 삶'으로 재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망하지 않기 위해서.’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성취를 갈망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일 것입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가정, 학교, 회사 등을 통해 끊임없이 ‘망하면 불행해진다’고 가르치니까요.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요? 저는 이 글을 통해 ‘망해버려 기쁜 삶’이 있다고 말하고자 합니다. 아니, 더 나아가 ‘삶은 망해야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장하려고 합니다.


제 이야기가 어떤 분들에게는 불편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성공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분들에게는 '성공해도 행복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와 닿지 않겠지요. 반대로 한 번도 실패해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실패가 진정한 행복으로 가는 출발점'이는 이야기가 루저의 정신 승리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또한 성취에 대해 생각해볼 여유 없이 생존을 위해 애쓰고 있는 분들께는 이 모든 이야기가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분명 저처럼 망해 버려서 절망에 빠진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아직 망하지는 않았지만 망하지 않기 위한 삶을 사는 것이 너무 힘든 분들도 있을 테고, 보란 듯이 성공했지만 알 수 없는 공허함에 시달리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생존하려고 아등바등 살았던 삶이 한스러워 자식들은 성취하는 삶을 살기 바라는 부모들도 있을 테고요. 그런 분들에게 제 삶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만난 철학자가 제게 그랬듯, 제 이야기가 여러분들이 생각하고 있는 '성공'과 '실패'의 이미지에 작은 균열을 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자, 그럼 '엄친딸'이 망해버린 이야기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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