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심이는 내 남편 정도의 동생이다. 나이는 나보다 한살 어리고, 현재 갓 돌 지난 아들을 키우며 회사를 다니고 있는 워킹맘이다.
정도와의 연애기간이 길었던 만큼 나와 정심이와의 인연은 오래되었다. 나와 정도는 25살에 출판사 편집자와 여행 작가의 관계로 처음 만났다. 당시 정도는 아메리카 대륙을 종단하는 여행을 하고 있었고, 난 그 여행을 책으로 담고 싶어서 연락을 했다가 그만 사귀게 되었다. 사귄지 한 2달쯤 되었을 때인가. 정도가 자기 동생을 만나보지 않겠냐고 했다. 황당했다. 그때 정도는 아직 미국에서 여행 중이었다. 자기가 소개해줄 것도 아니면서, 나랑 정심이 둘이서 만나라니. 하지만 정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랑 정심이를 카톡방으로 초대해 서로 인사를 시켰다. 우리는 어버버대다가 정도의 주도하에 만날 약속을 잡아버리고 말았다.
나와 정심이의 첫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정도도 없이 뻘쭘하게. 처음 정심이를 만나러 가던 길 많이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때까지 남자친구의 여자 형제를 만나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막연히 여동생은 오빠의 여자친구를 싫어할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날 싫어하면 어떡하지? 까탈스러운 새침떼기면 어떡하지?' 별 걱정을 다했는데, 처음 본 정심이는 정말 소탈하고 유쾌한 아이였다. 우리는 정도도 없이 이태원 멕시코 음식점에서 만나서 2시간을 수다떨며 친해졌다. 난 정심이가 참 귀여웠다.
나는 정도와 연애했던 5년 내내 정심이랑 친하게 지냈다. 정심이는 내 친구들 사이에 껴서 노는 것을 좋아했다. 나, 정도, 정심이, 내 친구 몇몇이랑 클럽에 간 적도 많았다. 같이 클럽에 가면 정도랑 정심이는 서로 못 볼 꼴을 본다는 듯 내외했는데, 그런 현실남매의 모습이 되게 웃겼다. 나는 정심이의 20대 연애사를 옆에서 지켜봤다. 정심이가 지금의 남편과 연애할 때도 종종 고민상담을 해주곤 했다. 나도 정도와 연애하면서 힘들 때 정심이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그렇게 참 좋은 언니-동생 사이였다. 우리가 결혼하기 전까지는.
정심이는 나보다 2년 빨리 결혼을 했고, 결혼을 하자마자 남편을 따라 2년 미국에 갔다왔다. 정심이가 미국에서 오자마자 나랑 정도는 결혼했다. 그렇게 각자 결혼을 해서 새언니와 시누이의 관계가 되자,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나는 예전처럼 정심이를 편하게 대해도 되는지 몰라서 혼란스러웠다. '아가씨'라는 호칭을 쓰기 싫어서 의도적으로 정심이에게 말을 걸지 않은 적도 많다.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정심이와 거리를 뒀다. 더 나아가 나는 어느 순간부터 정심이를 질투하기 시작했다.
정도랑 연애를 할 때는 한번도 정심이를 질투한 적이 없었다. 그때까지 정심이는 그냥 귀여운 동생이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니 달라졌다. 나는 여러가지 상황 때문에 결혼할 때 양가로부터 지원을 많이 받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나랑 정도는 대학 졸업 후 줄곧 스타트업을 했기 때문에 모아둔 돈도 많지 않았다. 쓸 수 있는 자금이 적어서, 우리는 꽤 소박한 신혼집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우리집이 친구들의 신혼집에 비해 초라한 게 싫었다. 그래서 몇개월에 걸쳐서 오기를 부리며 셀프 인테리어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정심이가 자기 집 인테리어 공사를 끝냈다며 나와 정도를 집들이에 초대를 했다. 정심이네 집에 갔는데, 집이 인스타그램에서 보던 집처럼 삐까뻔쩍한 게 아닌가. 그 당시 나는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서 마루만 봐도 견적이 얼마일지 감이 잡혔다. 나는 어설프게 셀프 인테리어를 한 우리집이 갑자기 초라하게 느껴졌다. 정심이는 그런 내 속도 모르고, 시댁에서 신혼집은 깨끗해야 한다면서 인테리어 공사비를 지원해주셨다고 했다. 그때 처음으로 정심이에게 질투를 느꼈다.
그 후 그런 일은 많았다. 나랑 정도의 스타트업은 5년 동안 성공할 기미가 안 보였다. 회사에 돈이 많지 않아 계속 최저임금으로 버티는 것도 지긋지긋했고, 무엇보다 심적으로 너무 위축됐다. 나는 부족할 것 없이 자란 덕에 돈에 절절 매본적이 별로 없었는데, 그때는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어 보일 지경이었다. 한번은 정심이가 차를 살꺼라고 하길래 뭘 살 꺼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막연하게 소나타나 그랜저쯤을 얘기할 줄 알았는데, 정심이가 렉서스를 살 꺼라고 했다. 나는 괜히 발끈해서, 그렇게 젊은 나이부터 좋은 차를 타면 나중에 탈 차가 없어진다고 훈계했다. 그러면서 정도한테는 난 알뜰하고 검소한 사람이라는 걸 어필했다. 그러다가 한달에 몇번씩은 난 돈 때문에 인테리어도 마음껏 못한다며 울면서 열폭했다. 참 철이 없어서 여러 사람 고생시키던 시기다.
난 왜 정심이를 질투했을까? 그 당시 정심이는 '내가 갈 수도 있지만, 가지 않은 길'을 표상하는 사람이었다. 난 내 마음대로 살고 싶어서 스타트업도 하고 반대하는 결혼도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내가 가지 않았던 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난 내 마음대로 살면서, 동시에 남이 누리는 것도 다 누리고 싶었다. 연애할 때만 해도 난 정심이가 누리는 것쯤은 당연히 나도 다 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질투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부모로부터 지원을 못 받고 스타트업도 점점 망해가면서, 나는 정심이가 누리는 것을 앞으로 누리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한살 어린 시누이를 남몰래 질투하는 꼴불견 새언니가 되어갔다.
다행히 이제 정심이를 향한 질투는 완전히 사라진 듯 하다. 연초에 시댁에 가서 오랜만에 정심이를 만났는데, 이상하게 정심이를 안아주고 싶다는 충동이 느껴졌다. 처음 만났을 때는 안아주고 싶었고, 옆에 앉아있을 때는 머리결을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정심이에게 그런 충동은 처음 느껴봐서 내 자신에게 놀랐다.
나는 정심이에게 아들 사진을 보여달라고 했다. 정심이는 신이 나서 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보여줬다. 지금까지 나는 정심이가 아들 사진을 보여줄 때마다 왠지 불편한 마음이 들어 제대로 보지 않았다. 나는 아이를 갖고 싶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아이라는 존재 또한 '내가 갈 수도 있지만 가지 않은 길'을 표상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한참동안 정심이 아들 사진들을 봤다. 웃고, 울고, 찡그리고, 기고, 뒤뚱뒤뚱 걷는 아이는 정말 귀여웠다. 처음으로 그 아이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아이가 내 조카라는 사실도 와닿았다.
정심이에게 미안했다. 정심이가 출산을 한 날 찾아가서 어색하게 굴어서. 아들을 보러오라는 말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서. 아들 사진을 보내주면 의례적인 리액션만 해서. 언니가 되어서는 찌질하게 질투나 해서.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사라지자, 조카의 찡그리는 얼굴이 귀엽다는 것이 보였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사라지자, 정심이의 머리결이 출산 후에 많이 상했다는 것이 보였다. 다행히 이제 나에게 정심이는 다시 정심이로 돌아왔다. 클럽에서 같이 춤을 췄던, 내 앞에서 '정도 오빠 개짜증나'라고 툴툴댔던, 애써 다이어트해놓고 결혼식 전날 장어탕을 먹은, 귀여운 동생 정심이 말이다. 아가씨라는 호칭이 싫어서 늘 약간 오기섞인 마음으로 정심이를 '정심이'라고 불렀는데, 이제는 좀 더 좋은 마음으로 다시 정심이를 '정심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