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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Apr 24. 2019

글쓰기의 두려움

내 글이 다음 메인에 떴다

지난 주에 내 글 <시누이를 질투한 새언니>가 다음 메인에 떴다. 평소 내 글의 조회수는 10~20밖에 나오지 않은 터라, 브런치 앱에서 내 글의 조회수가 1000을 돌파했다는 알림이 왔을 때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1000, 2000, 급기야 10000을 돌파했다는 알림이 왔다. 심상치 않은 조회수를 보며 혹시라도 포털에 노출이 되었나 싶어서 봤더니, 아니나다를까 내 글이 다음 홈/쿠킹 메뉴에 떡하니 올라가 있었다.


믿기지가 않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은 건 처음이었다. 나는 신이 나서 다음과 브런치 메인화면을 캡쳐해서 남편에게 보냈다. 브런치 앱 통계 메뉴를 새로고침할 때마다 방문자가 몇백 단위로 느는 것이 신기했다. 구독자도 몇명 늘었다. 브런치에 글을 쓴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흥분이 되어서 잠도 잘 안 왔다.


그런데 다음 날이 되자 갑자기 묘한 불편함이 밀려들었다. 다음 날에도 내 글은 다음 메인에 걸려 있었다. 전날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글을 읽고 갔다. 글이 인기가 있는 것과는 별개로, 이상하게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나의 내밀한 사생활을 엿보고 가는 느낌. 내가 자발적으로 공개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누군가에 의해 까발려진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계속 진짜 나를 드러내는 글쓰기를 할 수 있을까?' 갑자기 글 쓰는 게 두려워졌다.




지난 1년간 작은 공동체 안에서 매일 글을 썼다. 자본주의에 지치고 가족관계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모여 철학을 배우고 삶을 성찰하는 곳이었다. 그 공동체 안에서 나는 진짜 나의 이야기를 글로 썼다. 때로는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냈고, 때로는 내가 현재 느끼는 찌질한 감정들을 표현했다. 그래서 글을 쓰면서 운 건 기본이고, 너무 부끄러워 글을 다 지우고 싶었던 적도 많았다. 분명 감정적으로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그렇게 글 속에서 '진짜 나'를 마주하면서 나는 놀라보게 건강해졌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순간부터 내 이야기를 타인에게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감추고 싶었던 내 모습이 이제는 그리 못나보이지 않았으니. 그 즈음부터 브런치에 그간 썼던 글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내 못난 모습과 날것의 감정을 담은 글이었지만, 이미 공동체 사람들에게 그런 글을 자주 공개해 왔던 터라 브런치에 올리는 것도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글이 다음 메인에 올라갔을 때, 왜 두려운 감정이 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글이 다음 메인에 올라갔는데 기쁨보다 두려움이 앞선다고. 그러자 남편이 그러면 필명으로 글을 쓰는 건 어떻겠냐고 했다. 하지만 나는 필명으로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익명의 글에서 진짜 위로를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익명의 글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의 카타르시스는 느낄 수 있을 게다. 하지만 난 진짜 위로를 주는 글이란 작가가 자신의 상처와 감정을 숨김없이, 그렇지만 담담하게 드러낸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글을 읽을 때, 우리는 나와 비슷한 상처를 가진 이가 어떻게 그 상처를 긍정하게 되었는지 엿볼 수 있다. 그 엿봄을 통해 나도 내 상처를 긍정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긴다. 반면 익명의 글을 읽으면 공감을 할 수는 있어도, '아직 이 사람도 자기 상처를 당당하게 드러내지 못하잖아!'라는 찝찝한 생각이 남는다. 그래서 익명의 위로는 반쪽짜리 위로다.




며칠 고민하다가 내가 글쓰기가 두려워진 이유를 알았다. 난 지금까지 '공동체'라는 포근한 둥지 안에서, 나를 이해하고 사랑해주는 사람들 앞에서만 내 모습을 드러내왔다. 하지만 브런치에는 둥지가 없다. 내 글을 읽은 수만 명의 사람들은 나와 아무런 인간적 유대가 없는 지나가는 행인이다. 그 행인들 앞에서 내 진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 두려움의 근원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에 미치자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들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두렵다는 것은 계속해서 '진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뜻이니까. 나는 글쓰기가 두렵다. 내 감정을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행인에게 드러내는 것도 두렵고, 그들이 혹시라도 나를 오해할까봐 두렵다. 또 나는 어떤 감정을 맞닥뜨린 순간에만 글을 쓸 수 있는데 감정은 대부분 타인과 관계되어 있는지라, 내 글에서 타인의 이야기를 배제할 수 없어서 두렵다. 내 글에서 타인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하지 못해서 그/그녀의 감정을 상하게 할까봐 두렵다. 젠장할. 두려운 것 천지다.


하지만 난 계속 나를 두렵게 하는 이야기를 쓸 것이다. 애초에 나는 그렇게 글쓰기를 시작했으니까. 난 작가에 대한 꿈과 동경이 있어서 글쓰기를 시작한 것이 아니다. 난 내 상처와 감정을 마주하고자 글쓰기를 시작했다. 즉, 진짜 이야기를 쓰지 않는다면 난 글을 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둥지에서 나갔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나를 가르친 글쓰기 스승의 말처럼 그저 좀더 "욕먹으면 된다."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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