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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Apr 15. 2019

불면증

하루를 끝내지 못하는 사람들

불면증에 걸린 적이 있다. 한밤이 되도록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하루종일 누워서 핸드폰 속 세상으로 도피한 것에 대한 형벌이었을까. 나의 몸은 피로해지지 않았다. 나는 내 하루가 제발 끝나길 뜬눈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불면증은 하루에 12시간씩 일을 하던 때에도 찾아왔다. 온몸이 쑤시고 눈이 시린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아니, 자고 싶지 않았다. 나는 새벽 네다섯시가 되도록 꾸역꾸역 무언가를 봤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을 때였지만, 정작 내 무의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보다. 나는 그렇게 하루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 육체는 피로했지만, 정신은 피로하지 않았기에. 나는 육체가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까지 하루를 붙잡고 있었다. 그렇게 적극적인 불면의 밤이 지속되었다.


철학자 들뢰즈는 한 인터뷰에서 피로를 이렇게 정의한다. "나는 항상 이렇게 말했지. '나는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나는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네. 그럼 된 거야. 하루가 끝이 나지. 피로란 생물학적으로 하루가 끝이 난 것을 의미하네. (...)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피로는 나쁜 기분이 아니라네.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면 기분이 나쁘겠지. 몹시 걱정스럽겠지. 그렇지 않다면 좋은 거라네. 그게 피로한 상태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누워있었던 날, 난 몸도 정신도 피로하지 않기 때문에 불면에 시달렸다. 한편, 일을 열심히 하긴 했지만, 그게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라 사회가 원하는 일이었을 땐, 스스로 하루를 끝내려고 하지 않았기에 또 불면에 시달렸다. 들뢰즈의 말처럼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럽게 하루가 끝나는 날은 육체와 정신이 동시에 피로한 날 뿐이었다.


글쓰기가 좋아서 글을 두세편씩 쓴 날, 난 잠을 잘 잔다. 침대에 누우면 '나는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일을 12시간씩 했을 때는 피곤했지만,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오늘도 남들이 시킨 일을 꾸역꾸역했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또 좋은 친구들과 좋은 대화를 한 날, 좋은 영화나 좋은 책을 본 날, 몰랐던 사실을 깨우친 날에도 잠을 잘 잤다. 그런 '감동'을 마주친 날, 난 좋은 섹스를 하고난 사람처럼 얼굴이 벌게지고 노곤노곤해진다. 진정한 의미의 피로는 하루를 제대로 보낸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어찌 수면만 그럴까. 몇년 전, 친할아버지가 죽음을 맞이하던 때가 생각난다. 할아버지는 췌장암 때문에 배에 복수가 가득찼음에도 불구하고, 돌아가시기 2주전까지 재활용 러닝머신을 탔다. 할아버지는 필사적으로 살고 싶어하셨다. 누군가에겐 그 모습이 '삶의 의지'로 보였겠지만, 난 그런 할아버지가 안쓰러웠다. 할아버지는 도저히 이대로 삶을 끝낼 수 없어서 고통스러운 몸으로 끝까지 몸부림치신 것이다. 내가 도저히 이대로 하루를 끝낼 수 없어서 눈이 씨뻘게지도록 핸드폰을 붙들고 있었던 것처럼.


5년째 요양병원에 계시는 외할머니는 할아버지와 정반대의 경우다. 그녀는 재활치료도 힘들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툭하면 '이렇게 사느니 곡기를 끊어 버리겠다'며 자식들을 협박한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무기력하게 죽음을 기다리기만 한다. 마치 내가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잠이 오기를 기다렸던 때처럼. 나의 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죽음 앞에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였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죽음의 문턱에서 불면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어떤 모임에서 한 할머니를 뵌 적이 있다. 그녀는 아주 담담하게 자신이 말기암 환자라며 이제 살 날이 몇개월 남지 않았다고 했다. 암환자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그녀의 얼굴은 아주 맑고 고왔다. 그녀는 암에 걸리고 나서 이렇게 생전 가보지 않았던 곳에도 와보고 있다며 즐거운 얼굴로 이야기했다. 죽음 앞에 서보니 그냥 하고싶은 일을 하고 살껄 그랬다며, 젊은 친구들은 꼭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녀는 죽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했다. 그 말을 하는 그녀의 얼굴엔 담담함과 의연함이 묻어났다. 이제 그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겠지만, 그녀의 얼굴은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나도 그 할머니처럼 피로해서 잠을 자듯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죽음 앞에서 싸우지 말고. 그렇다고 죽음 앞에서 무기력하게 생을 포기하지도 말고. 죽음 앞에서 담담하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였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기분좋게 피로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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