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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May 28. 2021

노예의 삶, 주인의 삶

의무와 욕망 사이

나는 안전한 길만 가려고 한다. 안전한 길은 다른 이가 미리 걸어본 길이다. 다른 이가 미리 가본 길을 가는 사람은 주인으로서 삶을 살 수 없다. 나는 단 한번도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본 적이 없다. 내 앞에는 늘 누군가가 나의 길을 가이드해주고 있었다. 그게 생물학적 부모든, 사회적 롤모델이든, 정서적 부모든.


의무와 욕망. 나는 의무짓눌려 삶이 소진되기 직전에 철학을 만났다. 철학을 만나고 나는 이제 욕망을 따르는 삶을 살리라 다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의무를 따르는  속에 진정한 기쁨은 없었다는 사실을 삶으로 앎으로 모두 체득했으니까. 의무의 삶을 끝까지 가본 것은 다행이다. 나는 남들보다 어린 시절부터 ‘해야만 하는  치이는 삶을 살았다. 공부 뿐만 아니라, 남들이 즐거워할 법한 것들, 운동, 취미, 독서, 여행조차 나에게는 ‘해야만 하는 이었다.  삶에서 ‘하고 싶은  싹틀 기회는 많지 않았다. 나는 하루종일 나에게 주어진 학생과 자식의 의무를 다하느라  지쳐있었으니까. 그래도 학창시절에는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그때는 원망할 대상이라도 있었다. 누가 나에게 의무를 부여하는지 뚜렷하게 보였으니까. 나는 주어진 의무를 성실히 다하면서도 나에게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시키는 부모와 선생을 미워했다. 나의 스탠스는 이런 것이었다. “하라는  다할 테니까, 쉬는 시간에는 나를 내버려둬!” 오랜 시간 나에게 자유란 ‘쉬는 시간이었다.  쉬는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했다. 만화책을 읽고 티비를 보고 유튜브를 봤다. 그것 말고 다른 ‘하고 싶은  찾을 여유는 없었다. 쉬는 시간이란 ‘쉬는시간이니까.  당시 나에게 쉰다는 것은 다시 일할 에너지를 채운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학창시절에는 상황이 조금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부모와 선생의 감시 하에 학생의 의무를 다하는 것은 분명 고된 일이었지만, 감시자가 있다는 것은 감시자의 눈을 피해 땡땡이를 칠 수도 있고, 감시자 욕을 하며 감정적인 스트레스를 떠넘길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 의무를 내면화할 때 조금 더 심각해진다. 나의 경우 스타트업을 할 때가 그랬다. 나는 스타트업이 오랫동안 찾아헤멘 나의 천직이라 생각했다. 부모의 욕망을 내면화한 나머지,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싶은 일’이라 착각했던 셈이다. 그래서 스타트업할 때는 힘든지도 몰랐다. 드디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기쁨에 취해 늘 기묘한 조증 상태였다. 의무를 내면화할 때 문제는 심각해진다. 내가 나의 감시자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감시자가 되면 내 눈을 피해 땡땡이를 칠 수도 없고, 아무리 스트레스가 쌓여도 원망할 대상을 찾을 수가 없어 스스로를 탓하게 된다. 스타트업을 할 때 딱 이랬다. 나는 나를 24시간 감시했다. 하루 종일 일을 해도 불안했고, 몸과 마음이 망가져도 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힘들지 않다고 자기 최면을 걸었다. '해야만 하는 일'을 학창시절에는 학교와 학원에서만 했다면, 스타트업 할때는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하루종일 하고 살았던 셈이다. 내가 스타트업을 한지 5년만에 삶의 의욕을 모두 잃어버린 건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의무의 결을 치는 것도 어려웠다. 의무에 두 종류가 있다는 것도 철학을 배우며 알았다. 푸코가 권력에는 ‘칼의 권력’과 ‘생체 권력’이 있다고 했다. 나에게 의무를 부여하는 주체가 뚜렷할 때(칼의 권력) 피권력자는 반항할 힘이 생긴다. 하지만 나에게 의무를 부여하는 주체가 불분명할 때(생체 권력) 피권력자는 반항조차 할 수가 없다. 처음에 글쓰기를 하며 내가 평생에 걸쳐 찾은 유일한 ‘하고 싶은 일’이 사실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을 내면화해버린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정말 당황스러웠다. 이제 대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지? 대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뭐지? 나는 평생 동안 ‘해야만 하는 일’만 하고 사느라 한번도 ‘하고 싶은 일’이 없었는데, 이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더 이상 의무에 질식된 삶을 살 수가 없으니까.


나는 어느 날 하고 싶은 일이 뿅하고 나타나길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의무에 질식된 나는 일단 욕망이고 뭐고 그냥 놀고 싶었다. 이제 ‘해야만 하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을 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그럴만도 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지난 내 삶에서 가장 금지된 욕망이니까. 라캉은 인간은 금지된 것을 욕망하는 존재라고 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철학을 배우고 이제 더 이상 내 마음 속 권력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겠다고 선언한 순간, 그간 권력자가 금지해놓은 온갖 욕망이 내 안에서 튀어올랐다. 그것은 학창시절의 반항과는 달랐다. 학창시절의 반항은 권력자가 시킨 의무를 성실히 한 뒤 뒤에서 비루한 나를 달래려 투덜대는 것이었다. '네 품을 떠나지 않을 테지만 나도 힘드니까 좀 봐주라'는 말과 다름 없었다. 그래도 나는 스승에게 철학을 제대로 배워, 내 마음 속의 권력자를 제대로 죽이려고 하긴 했나 보다. 권력자의 금기를 행하는 것은 그 권력자의 품을 떠날 각오를 한다는 뜻이다. "이걸 해서 네가 나를 버려도 어쩔 수 없어. 난 이걸 할꺼야!"라는 마음 말이다. 어쩌면 나는 권력자에게서 너무나도 벗어나고 싶어서 금기를 행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철학을 한지 3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간 나는 별의 별 미친 짓을 다 해봤다. 사회와 부모가 금지했던 많은 것들을 했다. 의무에 두 가지 종류가 있듯, 욕망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금기의 욕망과 생성의 욕망. 권력자가 금지한 것을 하고 싶은 욕망이 금기의 욕망이다. 금기의 욕망은 추동력이 세다. 반작용이기 때문에 눌린 만큼 더 크게 튀어 오른다. 나 또한 그랬다. 내 삶은 평생 ‘하지 마라!’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하지 말라는 것이 많았기에 그 ‘하지 말라는 것을 하고 싶다!’는 욕망도 거셌다. 나는 미친년처럼 나의 금기를 하나씩 해나갔다. 금기의 욕망은 추동력이 센 만큼 짜릿함도 세고, 짜릿함이 센 만큼 공허함도 세다. 술을 마시고 클럽에서 미친 듯이 놀다가 다음 날 아침 느끼는 공허한 마음과 비슷한, 전형적인 ‘기뻤다가 슬퍼지는’ 감정이다. 금기의 욕망은 자해의 정서와 닮아 있다.


금기의 욕망은 웅덩이다. 라캉은 욕망을 물줄기에 빗댔다. 시냇물이 흐르는 데 웅덩이가 패여 있으면 웅덩이가 다 찰 때까지 물이 흐를 수가 없다. 금기란 그런 것이다. 그렇기에 금기의 욕망도 하나가 채워지지 않으면 다음 욕망으로 흐르지 않는다. 나의 경우도 그랬다. 나는 남들보다 금기가 많았기에 한 금기를 해소해도 다음 금기가 또 열렸다. 어린 시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온갖 것들이 다 수면 위로 떠올랐다. 누드모델을 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타투를 했다. 모두 다 내가 욕망했지만 부모나 사회의 시선 때문에 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무엇보다 나에게 가장 금지되어 있었던 욕망,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빈둥대는 삶’을 무려 3년 동안이나 실천했다. 그래서 이제 나의 금기의 웅덩이는 거의 다 찼던 모양이다. 하지만 금기의 웅덩이가 다  차고 나의 시냇물을 다시 멈춰버렸다. 금기의 욕망이 아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 즉 생성의 욕망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서다.


그 즈음 스승에게 글을 받았다. 의무와 욕망 사이. 스승은 내가 그간 의무를 피하고 있었을 뿐, 욕망을 따르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의무에 대한 트라우마가 센 편이지만, 욕망을 따르는 삶을 살고 싶으면 ‘욕망’을 철저히 따르며 그 속의 의무마저 껴안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 글을 읽고 꽤 오랫동안 혼란함에 빠졌다. 스승의 말에 동의했으나, 당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서였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알았다. 지금까지 나는 의무를 피하고 금기의 욕망을 행해왔을 뿐, 단 한 번도 생성의 욕망을 따라본 적이 없다는 걸.


이건 세계관의 문제였다. ‘해야만 하는 일’에 포섭된 삶은 당연히 노예의 삶일 수밖에 없다. 하기 싫은데 한다는 말은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시키는 주인이 있다는 뜻이니까. 주인이 대놓고 시키든(칼의 권력), 주인의 명령을 내면화하여 알아서 기든(생체 권력), 나의 일을 주인이 결정한다는 사실은 동일하다. 내가 지금 의무의 삶을 사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무슨 일이든 불특정 다수의 인정을 받는 것이 목표라면, 모조리 노예의 삶일 수밖에 없다. 불특정 다수의 욕망은 권력자의 욕망을 반영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리고 금기의 욕망 또한 마찬가지다. 의무가 권력자에게 순응하려는 욕망이라면 금기의 욕망은 권력자에게서 벗어나려는 욕망이지만, 그렇기에 여전히 권력자에게 포섭된 욕망일 수밖에 없다. 의무가 선의 정방향을 가리키는 힘이라면, 금기의 욕망은 선의 역방향을 가리키는 힘일 뿐, 그 무엇도 그 선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의무를 따르는 삶과 금지된 욕망을 따르는 삶은 둘 다 노예의 삶이다.


내가 그리도 머뭇거렸던 이유를 알겠다. 나는 모든 삶을 레퍼런스로만 살아왔다. 내 눈은 늘 먼저 간 사람의 발자취를 향해 있었다. 그들 중 가장 확실해 보이는 길을 찾아 갔다. 그건 자본주의의 길을 걸을 때나 인문주의의 길을 걸을 때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스타트업을 할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은 아무 참조점도 없이 모든 결정을 스스로 내려야 한다는 점이었다. 물론 끝은 자본주의적 욕망(돈을 많이 벌자!)로 포섭되어 있지만, 스타트업은 자기 길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긴 하다. 스타트업은 지금까지 아무도 하지 않은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온갖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탄탄한 사업으로 키워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스타트업할 때는 아무도 레퍼런스를 삼을 수가 없었다. 그 아이템을 한 다른 사람이 없으니까. 그래서 늘 깜깜한 길을 혼자 걸어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 압박감을 견디지 못했다. 나는 가이드가 없는 삶을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선생이 하라는 대로, 사회에 나가서는 사회가 하라는 대로 했는데, 어두운 길을 혼자 걷는 담력이나 직관, 끈기가 있을 리 없었다. 한때 내가 예전에 생각해본 적 있는 사업 아이템이 요즘 들어 성공하는 걸 볼 때, 나도 저걸로 했으면 성공했으려나 미련을 가졌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아이템을 했어도 실패했을 것이다. 나는 본질을 빨리 파악하고 싶어하는 욕망 때문에, 그때도 ‘되는’ 아이템을 빨리 찾아내는 능력은 있었지만, 어떤 사업을 해도 혼자 길을 가본 적이 없기에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멘탈이 터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컨설팅형 인간이다. 사업할 때 컨설턴트를 제일 경멸했는데, 정작 내가 남에게 훈수 두고 이런저런 이론에만 빠삭할 뿐 내 길을 갈때는 한발자국도 어찌 둘지를 몰라 남의 조언이나 구하러 다니는 나약한 인간이었다. 나는 주인된 삶을 살고 싶다고 말만 했을 뿐, 진짜 내 삶의 주인이 되고 싶지 않았나 보다. 보이지 않는 길을 스스로의 힘으로 가는 것은 너무나 두렵기에.




“내가 자유한국당에 가더라도 넌 인문주의의 길을 계속 가야한다.”


스승이 종종 나에게 하는 말이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못 들은 체를 하곤 한다. 나는 그 말이 너무나도 무섭다. 심지어 갑자기 스승이 사라지면 이 길을 혼자 갈 자신이 없어서, 나이 마흔 초반밖에 안된 스승이 혹시 사고로 죽을까봐 걱정하던 시절도 있었다. 나도 알았다. 이 모든 건 내가 홀로 설 수 없기 때문이란 걸. 그 두려움을 내심 알면서도 오랜 시간 동안 똑바로 직면하지 않았다. 그걸 직면하는 순간, 이제는 정말 내 발로 내 길을 가야할 것 같아서. 그게 내 삶에서는 한번도 없었던 일이라 너무 두려워 두 눈 두 귀를 다 가리고 못 본 체 하고 있었다.


가끔 스승이 나를 보면 “대~단한 작가님!”이라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쑥스러워 손 사레를 치며 어색한 미소를 짓곤 한다. 나는 그 말을 그냥 기를 북돋아 주려는 말쯤으로 치부했다. 그런데 오늘 문득 내가 그 말을 듣고 손 사례를 치는 시점부터 나는 마음가짐이 글러먹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승은 만나는 출판사마다 거절을 당하던 시절에도 자기 글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훈수를 두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고 했다. 스승은 자기 글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내 글에 자부심이 있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 그렇기에 ‘대단한 작가님’이라는 말을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왜 나는 내 글을 지키지 못할 것 같은가. 그것은 글과 철학을 치열하게 마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과 철학과 삶을 진짜로 꼭 쥐어본 적이 없어서다. 진짜 내 길을 가본 사람은 말할 수 있다. 좆까라고. 이게 내 삶이고 이게 내 철학이라고. 진짜로 공부를 해본 사람은 말할 수 있다. 좆까라고. 네가 정말 나 만큼 고민하고 공부해서 하는 말이냐고. 내가 자꾸 누군가에 뒤에 숨는 건 내가 내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보지 않아서다. 나는 열심히 살았을 뿐 치열하게 살지 않았다. 누군가의 길을 따라 열심히 걸었을 뿐, 스스로 치열하게 고민해서 나만의 한 발자국을 떼지 않았다. 보호자가 있는 삶이 어찌 치열할 리가 있겠나.


어쩌면 나를 가장 못 믿는 건 나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보호자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약한 어린아이다. 버림받기 싫어서 나 열심히 하고 있다고 계속 보호자에게 어필이나 하는 나약한 어린아이. 언제까지 스스로를 ‘보호 받는 존재’로 전락시킬 건가. 나의 욕망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나의 길을 가는 것이다. 나는 진지한 삶, 치열한 삶을 욕망한다. 내가 욕망하는 그것을 두손으로 꽉 쥐고 싶다.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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