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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Jun 05. 2021

심판, 처벌, 죽음, 생성

나는 처벌의 세계에 산다.

너는 나에게 심판을 내린다.

유죄를 받은 나는 쫒겨난다.

무죄를 받은 나는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나는 안도한다.

쫒겨난 너를 보며

한눈으로 연민하고

한눈으로 안도한다.

나는 살아남았다.

너의 마음에 들어

나는 살아남았다.


나는 안도의 세계에 산다.

나는 생존의 세계에 산다.

안도는 고통 없는 세계이며

생존은 죽음 없는 세계다.

심판과 처벌의 세계의 최대의 선은

나의 안위다.

나의 안위는,

나의 살아남음은,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쫒겨난 너보다,

억겁의 징역을 선포받은 너보다,

눈물을 머금고 나에게 벌을 내린 너보다,

소중하다.

심판과 처벌과 생존의 세계에서

나의 목숨보다 중요한 건 없다.

처벌을 기다리는 마음 속에

사랑이 피어날 틈은 없다.


너는 나의 심판자다.

너는 나의 분석가다.

너는 나의 판사이며

너는 나의 신이다.


나의 맹목적성은

나의 종교성은

나의 믿음은

어디를 향해 있는가.

나의 믿음은

나의 생존에 머물러 있지 않은가.

나의 믿음은

끊임없이 나의 안위만을 기도하는 기복신앙과 무엇이 다른가.

진정한 믿음이란

생존의 믿음이 아니라 죽음의 믿음이다.

네가 나를 살려주기에

너를 믿는 것이 아니라

네가 나를 죽일지라도

너를 믿는 것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나의 해체다.

내가 내가 아닌 상태가 되는 것.

목숨을 건 도약은

나의 해체다.

죽음 본능은

생성 본능이다.

너는 나의 독이다.

너는 내 안에 들어와

나를 흔들고 분열시키고 해체하고

나를 죽음 직전에 몰아넣는다.

생존하고 싶은 나는

너를 몰아내고 싶다.

이제야 안다.

너는 강간범이며

너는 예수다.

구역질은 입덧이며

죽음은 잉태다.


나는 나를 버린다.

나는 너를 안는다.

나는 내가 아닌 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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