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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May 11. 2021

눈빛

나는 나만 본다. 그래서 나를 바라보는 눈빛을 볼 수가 없다. 나를 사랑해주는 이 앞에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운 적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혼자였다. 앞에 그가 있었지만 나는 혼자였다. 나의 슬픔과 나의 상처와 나의 혼란스러움에 잠식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사랑하는 이를 앞에 두고 한참을 혼자 울었다. 너무 울어서 눈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 여전히 일렁이는 시야 속으로 그가 보였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는 언제부터 나를 저런 슬픈 눈으로 보고 있었던 걸까. 그는 나를 보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보이지 않았다. 언제나 나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를 본 건 내 눈물이 마르는 찰나의 순간뿐이었다. 내 눈물이 마를 때 겨우 그가 보였다. 그때마다 그는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야 알겠다. 내 눈물이 말랐던 만큼,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는 걸. 나는 그 앞에서 늘 울었다. 아이처럼 생떼를 쓰며 울었다. 철없는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내가 눈물을 거두고 해맑게 웃게 되었던 시간만큼 그의 세상에는 폭우가 쏟아졌다는 사실을.


나만 바라보는 나는 아무도 볼 수가 없다. 나는 너무나도 사랑받고 싶어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나를 사랑해줄 사람을 찾아 헤맸다. 기적적으로 그런 사람이 나타났는데 나는 나를 바라보느라 나를 바라보는 그를 보지 않았다. 시선의 엇갈림. 시선이 엇갈리는 외로움의 시간 속에서 그는 기다렸다. 내 눈물이 마를 때까지. 내가 눈물이 말라 나를 바라보는 그를 볼 수 있을 때까지. 하지만 나는 나만 힘들고 나만 아파서, 툭하면 울고 툭하면 우울해졌다. 그때마다 그는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겠지. 눈물이 앞을 가려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나를.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기적 같은 일이다. 사랑은 귀하고 드물다. 나는 아직 여리고 어리석어서 누군가에게 깊은 사랑을  수가 없다. 나는 사랑을 주는 법을 모른다. 아니다. 나는 사랑을 주는 법도 모를뿐더러 사랑을 받는 법조차 른다. 이제야 알겠다. 사랑받는 자의 의무는 기쁜 삶을 살아나가는 것이다. 나의 눈에 눈물이 맺힐 , 나를 사랑하는 이의 세상에는 폭우가 쏟아지니까. 나의 눈에 눈물이 일렁일 , 나를 바라보는 눈빛을    없을 테니까. 나는 나만의 세상에 빠져 그를 외롭게 했다.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다. 아니, 그럴 수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하게 아는 것. 스피노자가 그것을 자기만족이라고 했다. 나는 자기만족이 나를 위해 도달해야하는 곳이라 생각했다. 부자연스러운 삶을 살아나가는 것은 힘든 일이니까. 아니었다. 자기만족은 나를 사랑하는 이를 위해 도달해야 하는 곳이다. 내가 부자연스러운 삶을 살면 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힘들어진다. 내가 슬퍼지면 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슬퍼지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는 것.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려고 하는 것. 그 둘 다 나를 슬픔으로 몰아넣는다. 그래서 나는 기쁨의 의무와 탐욕의 절제를 껴안아야 한다. 그것이 내가 이 땅을 걸어 나가는 두 다리가 되어줄 것이다.


나는 나의 상처와 나의 어둠이 있다. 누구에게나 상처와 어둠은 있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가 있는 사람만이 그 상처와 어둠에서 시선을 떼고 사랑하는 이의 눈을 바라보며 삶을 살아나갈 수 있다. 나는 누구에게 사랑받을 것인가. 언젠가 스승이 삶의 모든 문제는 이 질문 하나로 귀결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제야 그 말이 마음으로 와 닿는다. 나는 너에게 사랑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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