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 있는 양성평등 문화 만들기 이슈
오래전 골든글로브 작품상 후보에 오르고,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흥행에 성공한 마이클 더글러스 주연의 영화 ‘장미의 전쟁(The War of the Roses)’의 결말은 너무나 충격적이다. 사랑해서 결혼한 두 남녀가 성공하여 상당한 부도 이루고 아이 둘을 키우며 행복한 생활을 하다, 어느 날부터 특별한 이유 없이 사소한 일로 다투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다 싸움은 점점 커지고 서로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하게 싸우다 결국 둘 다 부부싸움 중에 사고로 사망한다는 다소 황당한 블랙 코미디 영화다. 일반적으로 부부갈등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배우자의 외도나 금전적인 문제와 같이 ‘명확한 사유’가 등장하기 마련인데, 이 작품에선 부부가 파국으로 치달을 때까지 이렇다 할 설명이 없다. 이러한 장미의 전쟁은 비단 가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고,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눈에 띄게 늘어나면서 양성평등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직장 내에서도 남녀 사이에 다양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tvN 드라마 <미생>에서 강소라가 연기한 ‘안영이’는 신입사원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에 임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가 유독 힘들었던 건, 일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 때문이었다. 같은 팀 남성 선배들은 술 접대, 회식, 격의 없는 농담으로 고객과 관계를 쌓는다. 안영이는 실력 있는 신입사원이지만, 남성 중심의 조직문화 안에서는 늘 ‘특이한 존재’로 여겨진다. 술자리를 꺼리면 유연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외부 고객에게 적극적이면 ‘오버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똑같이 열심히 일해도, 그녀에겐 늘 ‘여자라서 그런 것 아니냐’는 렌즈가 덧씌워진다. 이건 단순한 성격 차이나 개인의 문제일까? 사실은 남성과 여성의 일을 대하는 태도, 감정 소통 방식, 조직 내 관계 맺기의 우선순위가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블라인드 스폿’ 일 수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와 연구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원제 Men are from Mars, Women are from Venus)'로 너무나 유명한 심리학자 존 그레이 박사와 하버드대 심리학 박사인 바바라 애니스가 제시한 ‘블라인드 스폿(blind spot)’ 개념이 가장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이들은 포천 선정 500대 기업 중 60여 곳의 남녀 임원들을 인터뷰하고 10만여 명의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남녀 모두 ‘이성에 대한 이해 부족’이 직장 내 다양한 갈등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이를 ‘남녀 간 블라인드 스폿(blind spot)으로 명명했다.
1970년대 초 양성 평등운동이 시작된 이후로 지금까지 남녀는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믿음에 익숙해져 있으며, 조직에서는 맹목적으로 동일한 기준으로 다루려 했다. 그러나 애니스 박사팀의 연구에 따르면 놀랍게도 남녀는 일 처리 방식, 의사소통, 문제 해결, 의사 결정, 갈등 해결, 업무 우선순위 선정, 감정 처리, 스트레스 해소 방식 등 8개의 블라인드 스폿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The 8 Blind Spots Between Men and Women in Business).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차이는 남성들은 업무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결과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여성들은 결과 못지않게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의사결정까지 시간이 지나치게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차이는 무의식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며, 조직 내 블라인드 스폿은 상대방의 생각이나 말을 오해하고 서로를 명확하고 확실하게 보지 못하게 방해하는 장애물로 생산성을 떨어트리는 주범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남녀의 다른 점은 능력에서 나온 결과가 아니며 서로 다른 시각과 경험을 갖고 있기에 근본적으로 다른 렌즈로 세상을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각각 다른 렌즈로 세상을 보기에 서로가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서로에게는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를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성별이해지능 (Gender Intelligence)'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애니스 박사팀과는 달리 미국 아이오와대 심리학과 즐라탄 크리 전 교수는 이러한 고정관념은 성별에 따른 차이가 클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부풀려진 결과물이며 남녀의 심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내용의 논문을 ‘아메리칸 사이콜로지스트(Journal of American Psychologist)’에 발표했다. 또한 이스라엘 텔아브비대 신경과학과 다프나 조엘 교수도 그의 저서 ‘젠더 모자이크(원제: Gender Mosaic)’에서 ‘화성 남자 금성 여자’의 시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남성과 여성은 결코 화성, 금성으로 구분할 수 없으며 인간은 모두 지구라는 같은 별에서 왔다”라고 했다. 성인 1,400명의 MRI 검사 결과, 남녀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화성 남자 금성 여자’를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연구가 최근 부쩍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미국 로체스터대 신경과학 연구소, 백신 생물학 및 면역학 연구센터, 환경의학과, 의과학 교육센터, 시각 과학 연구센터 공동 연구팀은 뇌의 기능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미세 아교 세포 (microglia)’가 성별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내용을 생명 과학 학술지 ‘셀 리포츠 Cell Repots)에 실었다.
스탠퍼드대 정신의학과 비노드 메논 교수는 AI와 뇌의 활동을 판단하는 fMRI를 활용하여 남녀의 뇌 구조 패턴에는 확실한 차이가 있으며, 이 차이가 생각과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메논 교수는 단지 뇌 영상만으로 남녀를 90% 이상 정확도로 판별해 냈다. 이 연구결과는 오랫동안 논란이 된 ‘뇌 조직에 상당한 성별 차이가 존재한다’는 이론에 힘을 싣게 했다. 의학계에서도 '화성 남자 금성 여자’가 화두다. 남녀 간의 근본적인 차이가 큰 만큼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도 이런 부분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학자들은 이를 '성차의학(sex specific medicine)’이라는 학문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한국 사회에서 남녀 갈등은 점점 더 민감하고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특히 Z세대 남성과 여성은 정치 성향은 물론 직장 생활, 결혼·출산에 대한 가치관까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마치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이방인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런 현상은 해외 언론에서도 우려의 시선으로 비치고 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한국은 젊은 남성과 여성이 갈라설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의 사회”라며, 극단적으로 나뉜 성 인식의 단면을 조명했다. 실제로 한국은 혼인율이 급락했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를 기록 중이다.
이런 사회적 불안은 기업 문화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직원 대상 성희롱 예방 교육을 법정 필수 항목으로 지정해 매년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대부분 과거의 사례와 처벌 중심이다. 문제는 이런 교육이 실질적인 이해를 돕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남녀 간 대화를 더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괜히 말 꺼냈다가 문제 될까 봐."
"그냥 조심하고 거리를 두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조직 내 곳곳에서 떠돈다. 퇴근 후 동료들과 한잔 하며 현업의 이슈를 터놓고 나누는 시간은 사라지고, 남성과 여성은 점점 서로를 조심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다. 우리는 성희롱을 방지하기 위한 교육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성별 간 신뢰와 대화의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고 있는 셈이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필요한 것은 ‘법을 지키는 교육’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방법을 배우는 훈련’이다. 단순히 금지와 조심만을 반복하는 교육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다르게 일하는 방식을 존중하는 조직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문제는 교육에서 끝나지 않는다. 기업의 거버넌스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2022년 개정된 자본시장법은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기업의 이사회에 특정 성별만으로 구성할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떨까? 2025년 현재, 30대 그룹 중 20개 그룹에는 여성 사내이사가 한 명도 없으며, 여성 사외이사는 법적 최소 인원인 ‘1명’만 형식적으로 선임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법은 만들었지만, 실행하지 않는 것이다. 처벌 조항도 없으니 지킬 이유도 없다.
‘평등하게 보이기 위한 평등’은 결코 진짜 평등이 아니다. 이사회에 여성이 앉아 있는가가 아니라, 그 여성이 실질적인 발언권을 갖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다양성은 숫자가 아니라 영향력이다.
기업이 진정으로 양성평등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이제는 법정 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 서로를 조심하는 문화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하는 문화로 전환해야 한다.
장미의 전쟁을 끝내는 길은 결국, 서로 다른 렌즈로 보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것은 법이 아니라, 대화와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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