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함정과 집단지성 구축 사례
AI가 촉발한 변화는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경제와 사회의 지형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엔비디아는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를 제치고 처음으로 시가총액 4조 달러를 돌파한 기업으로 기록됐다. 이제는 엔비디아뿐만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 역시 잇따라 4조 달러를 넘어섰으며, 이들 기업은 전통 제조업을 대체하는 새로운 권력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 한국의 대표 기업들은 여전히 현대차, 기아, HD현대중공업과 같은 ‘레거시 기업(전통적인 제조기업)’ 중심이다. 세계 무대에서 아마존이나 테슬라와 맞먹는 혁신 기업을 배출하지 못한 현실은 우리에게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의 핵심은 모든 조직이 ‘리더십의 변화’를 통해 새롭게 다가오는 세상에 대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제 리더는 모든 것을 홀로 판단하는 ‘의사결정자’가 아니라, 조직의 의사결정을 설계하고 흐름을 만드는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집단지성을 끌어내고, 조직의 편향을 줄이며, 다양한 관점을 제도화하는 사람이 진정한 AX시대의 리더다. 하지만 현실의 리더들은 여전히 여러 함정에 빠진다.
▲지식 착각(illusion of knowledge)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할 때, 리더는 위험하다. 코로나19 초기 일부 전문가들은 불확실성을 인정하지 않고 근거 없는 낙관론을 펼쳤다가 사회적 혼란을 키웠다. 자신이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고 믿는 **‘지식 착각’**이 오히려 새로운 변수를 외면하게 만든 것이다.
▲무용 지식(useless knowledge)
정보의 범람은 때로 조직을 무력하게 만든다. 수많은 데이터를 모았지만 이를 실행 가능한 통찰로 바꾸지 못하는 회의실은 적지 않다. 더욱이 급변하는 시대에 30년 전 지식에 머문다면, 오히려 잘못된 판단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가짜 지식(Shopper’s Knowledge)
단편적 정보만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를 말한다. 투자자들이 SNS 소문만 듣고 특정 주식에 몰려들었다가 큰 손실을 본 사례가 대표적이다. 흔히 ‘운전자 지식(Driver’s Knowledge)’이라고도 부르는데, 자동차를 매일 몰지만 엔진 구조는 전혀 모르는 것과 같다. 익숙하고 많이 들어본 내용이 마치 내가 잘 아는 지식처럼 느껴지지만, 실제 의사결정을 내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혁신의 저주(Curse of Innovation)
‘혁신=성공’이라는 착각. 하지만 통계는 냉정하다. 혁신 제품의 95%는 실패한다. ‘혁신’이라는 이름만으로 시장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리더가 이 함정들을 피하려면 무엇보다 의사결정을 설계하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권위나 직관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과 검증 가능한 데이터, 그리고 집단지성이 의사결정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AI와 인간이 함께 일하는 AX시대, 중요한 것은 빠른 판단이 아니라 견고한 설계다. 결국 미래를 지배하는 리더는 가장 똑똑한 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똑똑한 시스템을 만든 사람일 것이다.
조직심리학 대가 에드거 샤인은 리더십의 본질을 ‘돕는 것’이라 말했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때 목표를 이루고, 성장하는 좋은 조직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리더십은 특정 직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발휘해야 할 기본 자질이다. (출처: Helping, 리더가 돕는 법, 조직심리학자 에드거 샤인 저서 중 발췌)
AI 시대에는 ‘한 사람의 천재’보다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으는 시스템이 강력하다. 하지만 단순히 회의실에 모여 의견을 주고받는다고 집단지성이 작동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무질서한 토론은 더 큰 오류를 낳기도 한다. 그렇다면 리더는 어떻게 집단지성을 의사결정 구조로 설계할 수 있을까?
1. 구조적 다양성 확보
전문가만이 아니라, 현장과 고객의 목소리까지 참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예: 구글의 ‘20% 프로젝트’처럼 다양한 부서 사람들이 참여해 아이디어를 내는 구조.
2. 익명성 보장과 편향 줄이기
위계가 강한 조직에서는 상사의 말이 곧 결론이 된다.
온라인 설문, 무기명 아이디어 보드, AI 분석 툴을 활용해 익명 의견 수렴 → 집계 → 토론 단계로 한다.
3. 의사결정 전후 분리 (Two-stage process)
아이디어 수집 단계와 의사결정 단계를 분리해야 한다.
한 회의에서 바로 “좋다/싫다” 결론을 내리면 창의적 제안은 사라진다.
4.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 제도화
모든 제안에는 반드시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을 둔다.
실패 시나리오를 사전에 검증해 위험을 줄이는 방법이다.
5. AI와 인간의 보완적 결합
데이터 분석은 AI가, 맥락적 판단은 사람이 한다.
예: AI가 제시한 소비자 행동 예측을 토대로, 마케터들이 직관과 경험을 더해 최종 전략을 수립
이와 같이 임원과 간부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가 아닌, 현장의 목소리와 바텀업 의견을 바탕으로 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때다. 왜냐하면 변화의 속도는 어느 한 사람의 통찰이나 권위로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매일 부딪히는 문제와 고객과 맞닿은 경험이야말로 가장 정확한 데이터이자 가장 빠른 경보 시스템이다. 따라서 리더의 역할은 모든 결정을 직접 내리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아이디어가 조직 전체의 실행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다. 이때 바텀업 의견은 단순한 제안이 아니라, 회사의 혁신을 움직이는 실질적 에너지가 된다.
DX(디지털 전환)라는 말은 흔히 본사 IT조직의 전유물처럼 들린다. 하지만 GS건설의 접근은 조금 달랐다. 이들의 출발점은 “답은 현장에 있다”는 믿음이었다. 기술을 앞세우기보다, 먼저 현장에서 불편을 겪는 직원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데서 혁신이 시작된 것이다.
1. 현장의 문제에서 시작된 기술
GS건설은 전 직원에게 아이패드를 지급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이북(Xi-Book)과 자이보이스(Xi-Voice)를 도입했다. 자이북은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시방서를 빠르게 검색하고 관련 영상을 보여주어 현장 이해도를 높였다. 자이보이스는 외국인 근로자와의 언어 장벽을 허물어, 안전과 소통 모두에서 큰 변화를 만들어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도입이 아니라 애자일 방식이었다. 작은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현장에서 직접 써보고, 피드백을 반영해 빠르게 개선했다. 덕분에 기술은 ‘본사에서 내려온 지시’가 아니라, 직원들이 직접 다루는 현업 친화형 도구로 자리 잡았다.
2. 자발적 아이디어가 만든 혁신, 자이마켓
DX는 때때로 거창한 기술보다, 작은 아이디어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한다. 현장 직원들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자이마켓(Xi-Market)**이 대표적이다. 비공식적으로 흘러가던 안전용품이나 자재를 플랫폼에서 거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첫 분기 거래 건수만 500건, 비용 절감 효과는 2억 원을 넘었다. 작은 발상의 전환이 곧 조직 전체의 성과로 이어진 사례다.
3. 협업을 새롭게 설계하다
GS건설은 협업 도구도 현장 맞춤형으로 바꿔나갔다. Notion 플랫폼을 도입해 프로젝트 관리, 문서 협업, 안전·자재 관리까지 연결했다. 처음에는 다양한 템플릿을 제공했지만, 곧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2~3개의 핵심 템플릿만 남겼다.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실제로 쓰이고 도움이 되는 체계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실시간 업무 공유와 위험 관리, 교육 영상까지 모두 Notion을 통해 운영된다. 심지어 임원 보고도 이 안에서 이루어진다. 현장의 실용성과 자율성이 존중될 때, 협업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의 변화로 확산된다.
GS건설의 사례가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혁신은 본사에서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자라나는 것이다. 리더는 더 이상 모든 걸 결정하는 ‘판단자’가 아니라, 의사결정을 설계하고 시스템을 만드는 ‘디자이너’다. AI와 DX가 일상이 된 지금, 조직이 가야 할 방향은 더욱 분명하다. 현장을 신뢰하고, 의견을 구조화하며, 실행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하는 것. 그때 비로소 기술은 사람과 만나 진짜 혁신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