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이 말하는 욕망의 본성
2016년 여름, 경남 양산에서 한 남자가 인생 역전의 꿈을 이뤘다. 로또 1등 당첨금 40억 원. 그는 세금을 제하고도 평생을 쓰고 남을 28억 원을 손에 쥐었다. 첫 마음은 따뜻했다. 오랫동안 자신과 자녀를 키워준 어머니에게 3억 원짜리 아파트를 사드렸고, 가족과 기쁨을 나눴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랫동안 연락조차 없던 여동생들이 찾아와 돈을 요구했다. 급기야 어머니를 내세워 “패륜아”라는 피켓을 들고 시청 앞에 세웠다. 두 달 만에 행복은 불행으로 바뀌었고, 로또는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되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나 자신이 겪었던 일을 떠올렸다. 임대차 계약을 끝내고 집을 비우던 날, 임대인은 세면대와 수납장 경첩까지 ‘원상복구 비용’이라며 보증금에서 차감했다. 일상생활의 흔적조차 탐욕의 명분이 되었다. 억울했지만 어디에도 말할 수 없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탐욕은 로또에 당첨된 형제들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평범한 세입자의 일상 속에서도 얼굴을 드러낸다는 것을.
미국 남가주대(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의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Richard Easterlin)은 1974년 역사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국가별 소득과 행복을 비교하며,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행복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를 **이스털린 패러독스(Easterlin Paradox)**라 부른다.
Easterlin, R. A. (1974). “Does Economic Growth Improve the Human Lot? Some Empirical Evidence.” In Nations and Households in Economic Growth.
형제가 로또에 당첨됐을 때, 내가 가진 것은 변하지 않았는데도 상대적 박탈감은 행복을 갉아먹는다. 임대인에게서 보증금을 빼앗긴 세입자의 고통 역시 마찬가지다. 돈의 절대적 액수보다, 남과 비교했을 때 불리해지는 순간 우리는 탐욕과 분노에 휩싸인다.
미국 시카고대학교(University of Chicago) 부스경영대학원의 리처드 세일러(Richard Thaler)는 1980년대에 유명한 실험을 했다. 참가자들에게 무작위로 머그컵을 나눠주고, 판매 희망 가격과 구매 희망 가격을 조사했다. 컵을 가진 사람은 평균 7달러 이상을 원했지만, 갖지 못한 사람은 3달러 이상은 내지 않겠다고 했다. 이는 단순한 물건에도 ‘내 것’이라는 인식이 가치를 왜곡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를 **소유효과(Endowment Effect)**라고 부른다.
Thaler, R. (1980). “Toward a Positive Theory of Consumer Choice.” Journal of Economic Behavior & Organization, 1(1), 39–60.
여동생들이 로또 당첨금에 대해 “가족이니까 당연히 내 몫이 있다”라고 주장하는 것도, 임대인이 세입자의 생활 흔적까지 “내 집이니까 다 원상 복구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뿌리다. 자격의식은 탐욕을 정당화하는 가장 흔한 심리적 장치다.
프린스턴대학(Princeton University)의 다니엘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스탠퍼드대학(Stanford University)의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는 1979년 “전망이론(Prospect Theory)”을 통해 인간이 합리적이지 않음을 보여줬다. 동일한 금액이라도 얻는 기쁨보다 잃는 고통이 약 두 배 이상 크다는 것이다.
Kahneman, D., & Tversky, A. (1979). “Prospect Theory: An Analysis of Decision under Risk.” Econometrica, 47(2), 263–291.
여동생들이 “못 받으면 잃는 것”처럼 느끼고 더 집요해지는 이유, 임대인이 원상복구 비용을 떼어내지 않으면 손해 본 것처럼 느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원래 없던 돈인데도, 받지 못하면 잃은 것처럼 느끼는 것, 바로 손실회피의 심리다.
탐욕은 인간의 본성이다. 하지만 그 본성이 언제나 사회를 파괴하는 방식으로만 작동할 필요는 없다. 최근 방한한 빌 게이츠는 게이츠재단을 통해 거액을 사회적 가치로 환원하는 사례를 보여주었다. 미국의 많은 앙트러프러너들이 돈을 쌓는 것보다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무게를 두는 모습은 한국 사회와 극명히 대비된다. 한국의 재벌, 일부 임대인들이 여전히 법의 허점을 이용해 더 많은 돈을 움켜쥐려는 모습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돈이 사람 위에 있고, 돈이 최고의 가치라는 믿음은 결국 사회를 더 깊은 불행으로 몰아넣는다. 그러나 돈이 공감과 협력, 사회적 기여의 수단이 될 때, 탐욕은 절제가 되고, 불행은 희망으로 바뀔 수 있다.
� 결론
로또 사건, 세입자의 억울한 경험, 그리고 행동경제학의 실험들이 말해준다. 탐욕의 끝은 언제나 파국이다. 그러나 법과 제도로 피해를 줄이고, 사람 사이의 공감을 늘릴 수 있다면, 우리는 본능을 넘어설 수 있다. 돈보다 사람을, 욕망보다 가치를 우선하는 사회. 그것이 탐욕의 시대를 넘어서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