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왜 우리는 선택이 더 어려워졌을까

- 포모 사피엔스 시대의 소비 심리와 행동경제학

by 메자닌

요즘 사람들에게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선택이다.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살지, 어떤 뉴스를 읽을지, 어떤 주식에 투자할지, 어떤 자기 계발을 시작할지까지 우리는 하루 종일 선택한다. 문제는 선택지가 많아졌는데도 마음은 더 편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더 자주 불안해지고, 더 쉽게 흔들리며, 더 자주 후회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최근 『포모 사피엔스』를 읽으며 떠올린 것은, 오늘날 우리가 겪는 선택의 어려움이 단순한 정보 과잉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포모 사피엔스(FOMO Sapiens)』의 저자는 벤처 투자가이자 작가인 패트릭 J. 맥기니스(Patrick J. McGinnis)이다. 그는 하버드 경영대학원 재학 시절 '나만 뒤처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FOMO, Fear of Missing Out)'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낸 인물로, 이 책에서 현대인의 디지털 불안과 결정장애 현상을 분석했다. 사실 인간은 원래부터 타인과 비교하며 살아왔다. 행동경제학이 꾸준히 보여준 것도 인간이 완전히 독립적이고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타인의 선택, 분위기, 유행, 사회적 신호를 참고해 판단한다. 이 단어는 저자가 정의 내리기 전부터 있었던 표현이다. 미국에서 오래전부터 쓰인 “존스네 따라잡기(Keep up with the Joneses)”라는 표현도 같은 맥락이다. 이웃이 가진 것을 나도 가져야 안심이 되는 심리다. 비교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오래된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지금의 포모는 과거와 결이 다르다. 예전의 비교가 제한된 사회적 반경 안에서 이뤄졌다면, 지금의 비교는 스마트폰 하나로 무한 확장된다. SNS를 열면 누군가는 투자로 수익을 냈고, 누군가는 완벽한 식단을 실천하고 있으며, 누군가는 운동과 일과 취미와 인간관계까지 모두 잘 해내는 것처럼 보인다. ‘갓생’, ‘육각형 인간’ 같은 표현이 유행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이 시대가 인간에게 요구하는 비공식적 기준을 보여준다. 이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된다.

나는 지금 충분한가. 나는 혹시 늦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것이 바로 포모의 핵심이다. 포모는 더 많이 갖고 싶다는 욕망만이 아니다. 오히려 남들보다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불안에 가깝다. 그래서 포모는 소비와 투자, 건강과 자기 계발 영역에서 특히 강하게 작동한다. 새로운 건강법이 유행하면 효과를 검토하기 전에 먼저 초조해지고, 특정 자산이 급등하면 분석보다 조급함이 먼저 반응한다. 선택의 기준이 내 필요가 아니라 타인의 흐름이 되는 순간, 소비는 점점 더 불안에 의해 움직이게 된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여러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사회적 증거(Social Proof)다.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것은 옳을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다. 둘째는 군집 행동(Herd Behavior)이다. 사람들은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자신의 판단보다 집단의 움직임을 따라가려 한다. 셋째는 손실회피(Loss Aversion)다. 같은 크기의 이익보다 손실에서 더 큰 고통을 느끼는 인간의 특성 때문에, 사람들은 ‘기회를 놓치는 것’ 자체를 손실처럼 받아들인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 이 포모의 반작용처럼 보이는 정서도 함께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아보하, 즉 ‘아주 보통의 하루’다. 이 표현은 『트렌드 코리아 2025』에서 소개된 키워드로, 과시적 행복이나 과도한 성취의 압박보다 무탈하고 평범한 하루의 가치를 긍정하는 흐름을 담고 있다. 경제적 불안, 사회적 갈등, 경쟁 피로가 누적된 환경에서 사람들은 화려한 성공보다 일상의 안정과 심리적 평온을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아보하를 바라보는 시선은 하나가 아니다. 비판적으로 보면, 아보하는 포모에 지친 사람들이 포보를 정당화하는 방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더 나은 선택을 위해 도전하기보다 “이 정도면 됐다”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하는 태도, 혹은 경쟁에 치인 피로감과 “노력해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학습된 무기력이 뒤섞인 결과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겉으로는 평온을 말하지만, 속으로는 냉소적인 포기와 체념을 택한 것 아니냐는 시선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아보하는 포모의 해독제가 아니라, 현실 도피를 세련되게 포장한 언어처럼 읽힐 수도 있다.

반면 옹호하는 시각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모든 경쟁에 반응하고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태도는 결국 사람을 번아웃으로 몰아넣기 쉽다. 그렇다면 아보하는 무기력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한 속도 조절일 수 있다. 무작정 달리다가 무너지는 것보다, 내 삶의 리듬을 지키며 오래 가기 위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보하는 포기가 아니라 자기 보존의 기술이며, 무조건적인 후퇴가 아니라 롱런을 위한 숨 고르기에 가깝다. 실제로 관련 기사들 역시 아보하를 과시적 행복 피로에서 벗어나 평범하고 안정된 일상을 중시하는 흐름으로 설명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아보하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어떤 심리에서 선택되고 있는가이다. 정말로 내 삶의 균형을 지키기 위한 성숙한 조절인지, 아니면 선택의 부담과 경쟁의 피로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가능성을 너무 빨리 접어버린 것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같은 ‘평범한 하루’라도 누구에게는 회복이고, 누구에게는 체념일 수 있다.


이 지점에서 포모의 반대편에 있는 또 다른 심리, 포보(FOBO, Fear of Better Options)도 함께 떠오른다. 더 나은 선택지가 있을까 봐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심리다. 포모가 놓칠까 봐 서두르게 만든다면, 포보는 더 좋은 것이 있을지 몰라 머뭇거리게 만든다. 둘은 반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뿌리를 가진다. 둘 다 선택에 대한 불안을 전제로 한다. 하나는 선택을 성급하게 만들고, 다른 하나는 선택을 지연시킨다.

이 지점에서 현대 사회의 역설이 드러난다. 사람들은 오래도록 선택의 자유를 원해 왔다. 더 많은 상품, 더 많은 정보, 더 많은 기회는 더 나은 삶으로 이어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인간은 더 자유로워지기보다 더 피로해지고 더 망설이게 된다.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선택 과부하(Choice Overload)가 바로 이 현상이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더 좋은 결정을 내릴 것 같지만, 실제로는 판단이 복잡해지고 만족도는 오히려 낮아진다.


그리고 AI 시대는 이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AI는 원래 선택을 돕기 위해 등장했다. 추천 알고리즘은 내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골라주고, 플랫폼은 맞춤형 상품을 제안하며, 생성형 AI는 정보를 빠르게 정리해 준다. 표면적으로 보면 AI는 선택의 효율을 높여주는 도구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AI는 인간의 판단 과정을 점점 더 바깥으로 이전시키고 있다. 무엇을 볼지, 무엇을 살지, 무엇을 믿을지, 무엇을 쓸지까지 이미 상당 부분 추천 시스템과 자동화된 판단 구조에 영향을 받고 있다.

즉, 선택은 여전히 인간이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선택의 프레임은 점점 외부에서 설계되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 이 변화는 더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 2026년에는 에이전틱 AI가 본격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수준을 넘어 목표를 이해하고 여러 단계를 스스로 수행하는 AI다. 여기에 피지컬 AI까지 결합하면, AI는 더 이상 화면 속 보조 도구가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직접 움직이고 개입하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 흐름의 끝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AGI를 떠올리게 된다. 아직 완전히 도달하지 않은 미래라 해도, 인간과 유사한 범용적 판단을 수행하는 AI가 현실의 방향을 바꾸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인간은 자신의 역할을 다시 묻게 된다.

이럴수록 오히려 더 중요해지는 것은 질문하는 능력일지 모른다.

AI는 답을 빠르게 만들 수 있다. 정리하고, 비교하고, 요약하고, 제안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 어떤 질문이 본질적인지 정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에 가깝다. 정보가 부족한 시대에는 답을 많이 아는 사람이 경쟁력이 있었지만, 답이 넘쳐나는 시대에는 질문을 잘 설계하는 사람이 더 큰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앞으로 살아남는 인간은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가장 정확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결국 포모는 단지 유행 심리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흔들리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징후에 가깝다.

왜 우리는 이렇게 쉽게 남의 선택에 흔들리는가.
왜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더 자유로워지지 못하는가.
왜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오히려 자기 판단에 대한 확신을 잃어가는가.


나는 앞으로 몇 달 동안 이 질문을 붙잡고 더 깊이 탐구해 보려 한다. 포모와 포보, 소비심리와 행동경제학, 추천 알고리즘과 선택의 위임, 그리고 AI 시대 인간의 질문 능력까지.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선택지가 아니라, 내가 왜 이 선택을 하려는지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 판단의 힘인지도 모른다. AI 시대에 정말 중요한 것은 답을 빨리 찾는 능력이 아니라, 무엇을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지 묻는 능력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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