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를 쥔 어린아이처럼, AI부터 찾고 있지는 않은가

AX의 함정과 해결의 설계도

by 메자닌

요즘 기업의 회의실에서는 이상할 만큼 자주 비슷한 질문이 반복된다.
“이것도 AI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 AI를 붙이면 더 혁신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요즘 다 AI 하는데 우리도 빨리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 질문들이 완전히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문제는 순서다. 원래는 고객이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현장의 병목이 어디인지, 우리가 정말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조직은 문제보다 도구를 먼저 집어 든다. 마치 손에 망치를 쥔 어린아이가 세상을 온통 못으로 보듯, AI를 쥔 조직은 모든 문제를 AI로 풀 수 있다고 착각한다.


"특정 아이디어에 항상 찬성하거나 항상 반대하면 자신의 관점에 맞지 않는 정보에 눈이 멀어집니다.

현실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는 일반적으로 좋지 않은 접근 방식입니다. 대신, 좋아하는 아이디어에 약점이 없는지 끊임없이 테스트하세요. 자신의 전문 지식의 범위에 대해 겸손하세요.

나와 맞지 않는 새로운 정보나 다른 분야의 정보에 호기심을 가지세요. 그리고 내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과만 이야기하거나 내 생각에 맞는 사례만 수집하기보다는 나와 모순되거나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 다른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사람들을 세상을 이해하는 데 훌륭한 자원으로 여기세요."

- 팩트풀니스 한스 로슬링


우리는 지금 매우 강력한 도구를 손에 쥐고 있다. AI다.
문제는 강력한 도구를 갖게 된 뒤부터 이상하게도 문제를 보는 방식까지 달라진다는 데 있다. 원래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먼저 있어야 한다. 고객이 어디서 불편을 느끼는지, 현장에서 무엇이 낭비되고 있는지, 조직의 어떤 비효율을 줄여야 하는지부터 봐야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질문의 순서가 바뀐다.

“무엇을 해결할까?”가 아니라 “AI로 뭘 할까?”를 먼저 묻게 된다.

이 순간부터 기술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된다.


베스트셀러 팩트풀니스 저자 '한스 로슬링'은 이런 인간의 습성을 경계했다. 스웨덴의 의사이자 보건 통계학자인 그는 하나의 도구에 익숙해질수록, 사람은 그 도구로 세상을 해석하려는 유혹에 빠진다고 말한다.

망치를 쥔 아이가 세상의 모든 것을 못으로 보듯, AI를 손에 쥔 조직은 모든 문제를 AI로 풀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세상에는 못도 있지만 나사도 있고, 줄여야 할 것도 있고, 정교하게 재야 할 것도 있고, 아예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그럼에도 망치 하나만 손에 쥐고 있으면 모든 것이 두드려야 할 대상으로 보인다. 지금 많은 기업이 AX를 대하는 방식이 딱 그렇다.

AI를 앞세운 혁신이 공허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기 전에 기술부터 들이밀면, 조직은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AI를 적용할 대상을 찾아다니게 된다. 고객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보다, 어디에 AI를 붙이면 더 앞서 가는 기업처럼 보일지 고민한다. 그 결과 겉으로는 혁신처럼 보이지만 정작 고객은 더 편해지지 않고, 현장은 더 나아지지 않으며, 조직 내부에는 설명 자료와 데모 화면만 남는다. 기술은 도입되었는데 경험은 좋아지지 않는 이유다.


그래서 나는 AI는 출발점이 아니라 결과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AX는 언제나 문제 정의에서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해결하려는 고객의 페인 포인트는 무엇인지, 지금 운영 방식의 병목은 어디인지, 어떤 프로세스를 바꾸어야 더 나은 경험을 만들 수 있는지부터 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난 뒤 마지막 단계에서 묻는 것이다. 이 해결책을 구현하는 데 AI가 정말 가장 적합한 도구인가. 이 순서를 지킬 때에만 AI는 유행이 아니라 경쟁력이 된다. 반대로 이 순서가 뒤집히면 AI는 전략을 돕는 기술이 아니라, 전략 자체를 흐리는 화려한 소음이 된다.


문제는 많은 조직이 AI를 논하면서 정작 연장통은 비워둔 채 망치만 들고 있다는 데 있다. 하지만 망치 하나만으로는 집을 지을 수 없다. 무엇을 만들지 방향을 잡아주는 설계도도 있어야 하고, 크기를 정확히 재는 줄자도 있어야 하며, 수평이 맞는지 확인하는 도구도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AX에도 AI 외에 반드시 갖추어야 할 다른 도구들이 있다.


그중 첫 번째는 데이터 리터러시다. 이것은 마치 줄자와 같다. 아무리 좋은 AI를 도입해도 데이터의 상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시작부터 잘못된다. 데이터가 얼마나 쌓여 있는지, 어떤 기준으로 수집되고 있는지, 빠진 값은 없는지, 편향은 없는지조차 모른 채 AI부터 붙이면 정교한 분석이 아니라 정교한 오류만 얻게 된다. 흔히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고 말한다. AI는 그 원리를 더 빠르고 더 그럴듯하게 보여줄 뿐이다.

두 번째는 업의 전문성이다. 이것은 설계도에 가깝다. 기술은 많은 패턴을 읽어낼 수 있지만,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 정의해주지는 못한다. 고객이 왜 불편한지, 이 서비스의 본질이 무엇인지, 어떤 변화가 실질적인 가치로 이어지는지는 결국 현장을 이해하는 사람이 판단해야 한다. AI는 답을 잘 정리할 수는 있어도,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까지 대신 결정해주지는 못한다. 문제를 정의하는 힘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세 번째는 고객 공감이다. 이것은 고객 관점 균형을 말한다. 조직은 기술을 논하기 시작하면 쉽게 기술 중심으로 기울어진다. 자동화하면 좋다, 개인화하면 좋다, 추천하면 편하다 같은 말들이 빠르게 쏟아진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주 놓치는 것이 있다. 이 변화가 고객에게 정말 따뜻한 경험인가, 아니면 더 차갑고 기계적인 경험인가 하는 질문이다. 기업은 종종 효율을 높였다고 생각하지만, 고객은 연결이 끊겼다고 느낀다. 더 불편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고객 공감은 기술적 흥분 속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도구가 된다.

네 번째는 비판적 사고다. 이것은 보호경 같은 역할을 한다. AI가 내놓은 결과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 조직은 금방 위험해진다. 환각이든 편향이든, 엉뚱한 추천이든 잘못된 판단이든, AI는 얼마든지 그럴듯한 오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신뢰가 아니라 더 많은 질문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이 데이터는 믿을 만한지, 혹시 놓친 맥락은 없는지 계속 되묻는 문화가 있어야 한다. AI 시대에 가장 중요한 역량 중 하나는 잘 묻는 힘이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유연한 조직 문화다. 이것은 윤활유에 가깝다. 새로운 도구가 들어왔을 때 조직이 굳어 있으면 마찰만 커진다. 기존의 관성이 강한 조직일수록 AI는 혁신의 도구가 아니라 내부 갈등의 씨앗이 된다. 반대로 실패를 어느 정도 허용하고, 작은 실험을 반복하며, 틀리면 빠르게 방향을 바꾸는 문화가 있는 조직은 AI를 훨씬 건강하게 활용한다. 결국 AX는 기술 프로젝트가 아니라 조직 변화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정말 중요한 질문은 “우리 조직에 AI가 있는가”가 아니다. 더 본질적인 질문은 “우리 조직은 AI를 다룰 수 있는 설계도 갖추고 있는가”다. 망치 하나를 손에 넣었다고 갑자기 좋은 목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알고, 상황에 맞는 도구를 고르고, 필요할 때는 망치를 내려놓을 수 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태도다. 모든 문제를 AI로 풀겠다는 조급함이 아니라, 더 넓은 연장통을 준비하는 일 말이다. 데이터 리터러시, 업의 전문성, 고객 공감, 비판적 사고, 유연한 조직 문화 같은 도구들이 함께 갖춰질 때 AI는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그때의 AI는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만능 망치가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만 꺼내 쓰는 유능한 도구가 된다.


혁신의 수준은 결국 질문의 수준이 결정한다.
우리 조직에 AI가 있는지가 아니라, 우리 조직이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지 제대로 묻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혹시 지금도 망치 하나만 들고, 세상에 못이 어디 있는지만 찾아 헤매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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