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 이야기
'담쟁이덩굴'이라는 말이 있다. '울타리(담)에 기어오르며 사는 덩굴'이라는 순우리말이다. 풀이를 잘 살펴보면 담쟁이는 '넝쿨'이라 하지 않고 '덩굴'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왜 그럴까 가만히 생각을 해 본다. '넝쿨'은 나무나 물건 같은 것을 감고 오르는 식물을 말한다. 담쟁이도 담을 넘고 나무를 오르는데, 그렇다면 담쟁이는 나무를 감고 오르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확인을 해 보았다. 칡넝쿨은 나무를 감고 올라서 나무에 칡넝쿨 굵기의 자국을 남기고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담쟁이가 오르고 있는 나무에는 아무런 상처가 없는 것이 아닌가? 신기한 마음에 담쟁이가 나무에 오르는 것을 자세히 살펴본다.
담쟁이는 나무나 벽을 오를 때 '덩굴손'이라는 흡반을 나무에 붙여서 오르고 있었다. 그러니 담쟁이는 다른 식물에 해를 입히지 않고도 높은 곳을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오르는 식물이 해를 입으면 죽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담쟁이는 더 이상 높이 오를 수 없기 때문에 담쟁이는 덩굴손으로 나무를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넝쿨식물들은 나무를 오를 때 칭칭 감고 오르기 때문에 나무가 오래 자라지 못하거나 기형으로 변하기 십상이고 심지어 그 나무를 죽이는 경우도 왕왕 있다는 것이다.
담쟁이는 공생을 아는 것일까.
담쟁이의 삶을 보면 공생을 떠올리게 된다. 담을 기어오를 때 담을 감지 않고 오르기 때문에 담을 무너뜨릴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사람들에게도 담쟁이의 존재가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담쟁이 한 포기를 심으면 온통 담을 담쟁이가 뒤덮어 준다. 그러면 건물은 복사열의 저감효과가 커지기 때문에 여름철에 시원하게 보낼 수 있다. 또한 돌담이나 토담 등에 자라는 담쟁이는 정겨운 풍광을 창출하는 미적인 역할도 한다. 생태계의 입장에서도 담쟁이는 많은 열매를 맺어 설치류나 조류의 먹이를 공급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런 여러 가지를 근거를 볼 때 담쟁이는 더불어 함께 사는 공생을 실천하고 있는 식물임에는 틀림없다.
우리 집 담에도 담쟁이가 자라고 있다. 야생화 틈에 따라왔을 담쟁이가 어느 순간 우리 집 담을 덮을 정도로 많이 자랐다. 담을 뒤덮고 있는 담쟁이는 얼마나 보기에 좋은지 모르겠다. 최소한 나에게는 그렇게 보인다.
옆집에는 환갑을 갓 넘은 부부가 살고 있다. 자녀들은 출가를 하고 두 부부가 단출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옆집이다 보니 우리 담을 같이 사용하고 있다.
어느 날 마당을 둘러보다가 뭔가 변화된 담이 눈에 띄었다. 담 위로 풍성하게 자리 잡았던 담쟁이가 꼭대기에서부터 30센티미터 정도 아래로 밀려 내려와 있었다. 깜짝 놀라 무슨 일인가 자세히 살펴보니 누군가가 일부러 담쟁이를 걷어서 내려놓은 것이었다. 정말 화가 났다. 담쟁이가 옆집에 피해를 준 것도 없는데 옆집 아줌마는 담쟁이에게 상처를 입히고, 나에게도 마음의 상처를 입힌 것이다.
현재 옆집과 구분되어 있는 담은 우리 담이다. 원래는 옆집과의 경계에 우리 담과 옆집 담이 각각 있어 구분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 옆집이 새로 집을 지으면서 옆집 담을 헐어내고 자신들의 담은 새로 쌓지를 않았다. 그때도 옆집 아줌마와 담을 쌓아 달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그 아줌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웃이라 크게 싸우기도 뭣하고 해서 그냥 넘어갔다.
담쟁이가 입은 상처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 작년에도 몇 번 그런 일이 있었다. 그때는 화가 났지만 꾹꾹 눌러 참았는데 이번에는 참지 못했다. 옆집으로 찾아갔다. 초인종을 누르자 두 부부가 같이 나왔다. 나는 담쟁이를 걷어 내린 것에 대해 설명을 하고 왜 그랬냐며 따졌다. 아줌마는 자신들 집으로 넘어오는 게 싫어서 그렇게 했다고 대답을 한다. 나는 우리 집 담에 자라는 식물을 왜 허락도 없이 건드리냐며 재차 따졌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아저씨가 대신 사과를 하며 중재에 나선다. 나는 담을 넘어 옆집에 피해가 갈 때 말하면 잘 정리해 줄 터이니 이런 식으로 잘 가꿔 놓은 식물을 망치지 말아 달라고 다시 한번 당부를 했다. 아저씨는 다시 한번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시고는 아줌마한테는 본인이 잘 말해 놓을 터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옆집 아줌마는 아직까지는 담쟁이를 건드리지 않고 있다.
올 장마에는 유난히도 비가 많이 내리고 있다. 덕분에 담쟁이는 더 열심히 담을 채워나가고 있다. 회색 담장을 초록으로 물들이는 담쟁이의 수고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화단에 야생화를 보호하듯이 온통 초록의 보호막을 두른 모양이 썩 좋아 보인다.
다른 식물이나 사물에 조차 해를 주지 않고 공생하며 살아가길 원하는 담쟁이가 너무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나는 온통 담쟁이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하다. 그 작은 '덩굴손'이 더없이 귀엽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