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보라 하늘거리는 그녀의 뒤태가 그리워진다.

야생화 이야기

by 소향

크지는 않지만 우리 집 화단에는 온통 야생화가 자란다. 처음부터 야생화만 키웠던 것은 아니다. 꽃을 좋아하다 보니 철 따라 새로운 꽃들을 보는 행복을 누리려고 조금씩 가꾸기 시작했다. 그랬던 것이 어느새 화단을 모두 점령해 버렸다. 이제는 더 이상 야생화를 키울 자리가 없을 정도로 빼곡히 들어서 있다.


늦가을이 되면 야생화를 모두 베어 화단을 정리한다. 다음 해에 아름다운 꽃을 보기 위해 죽은 줄기를 잘라주고 새롭게 나올 싹이 방해받지 않게 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배려다. 그렇게 화단의 야생화를 베어주고 나면 화단은 미용실을 다녀온 머리처럼 깔끔해진다.


빼꼼히 얼굴을 내미는 아이가 있다.


겨울을 보내고 봄을 준비하면 가장 먼저 반기는 얼굴이 하나 있다. 담장 아래서 누구보다 빨리 기지개를 켜고 빼꼼히 얼굴을 내미는 그 아이의 이름은 '깽깽이풀'이다.


잎이 초록색이 되기 전에 연한 갈색을 띠고 추위를 견디며 일어선다. 뒤따라 가녀린 줄기를 내밀며 몽글몽글한 꽃대가 서서히 올라온다. 꽃샘추위가 시샘을 하는 시간 깽깽이풀은 여유를 부리며 방긋이 웃어 보인다. 연보라 빛 꽃망울을 한껏 터트려 시샘하는 추위를 너그러이 달래준다. 처음에는 한 두 송이의 꽃이 피지만 오래지 않아 꽃다발을 만들어 보란 듯이 전해준다.


연보라 치마를 입은 처녀


나는 깽깽이풀이 참 예쁘다. 봄의 시작을 알려주기 때문 이기도 하지만, 추위를 견디고 피워내는 꽃이 너무도 맑고 깨끗한 모습이다. 추위를 견뎌온 꽃 같지 않고 그저 따스한 봄바람에 나풀거리는 연보라색 치마를 입은 처녀들이 마실 나온 듯 한 기분이 든다. 바람이 불면 처녀들이 나풀나풀 춤을 추며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모습이다.


깽깽이풀이 꽃을 피우면 처녀들 대신 아줌마들이 대문을 넘는다. 한 해를 시작하는 첫 꽃을 보기 위해 모여드는 것이다. 마당이 소란스러워지고 야외 테이블에는 한상 가득 음식이 차려진다. 아줌마들의 수다가 겨우내 얼어 있던 얼음이 녹아내리는 봄장마를 만난 듯 한가득 넘쳐흐른다. 이야기 삼매경에 빠진 아줌마들은 추위도 잊은 채 봄을 즐기곤 한다.


깽깽이풀은 참 귀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한 이름이다. 유래를 찾아봐도 이렇다 할만한 내용이 없고 사뭇 다른 주장만이 있을 뿐이다. 농번기에 한가롭게 홀로 피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듬성듬성 나는 모양이 깨금발을 뛰는 모양 같아서 붙여졌다기도 하고, 개가 풀을 뜯어먹고 우는 소리에 붙여진 이름이라기도 한다. 유래야 어떻든 그 이름이 정겹고 친근감이 간다. 뿌리는 약재로도 쓰인다고 하니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입추를 지나도 덥고 습한 날씨로 꿉꿉한 마음에 시원한 뭔가를 생각하다 보니 깽깽이풀이 머릿속에 자라났다. 지금도 마당 한 귀퉁이에서 초록잎을 열심히 가꾸고 있는 그 아이의 꽃이 또다시 보고 싶어 진다. 혹한이라는 고난을 넘기고 나에게 활짝 웃는 모습을 보여주겠지만, 나는 지금 연보라 하늘거리는 그녀의 뒤태가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