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분 인생 2막

야생화 이야기

by 소향

10년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동해안 7번 국도를 경유해서 강원도를 한 바퀴 도는 일정을 잡았었다. 바다도 보고 계곡도 보기 위한 계획을 잡았다. 휴가를 출발하는 첫날부터 찌는 더위에 휴가를 잘못 잡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폭염과 차량들이 내뿜는 열기가 더해져서 도로가 녹아내리고 있었다. 대형트럭이 지나가는 자리는 움푹 패여 흙길을 달리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계획을 변경하여 시원한 계곡으로 숨어들었다. 한여름 계곡물은 말 그대로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발을 담그자마자 시리도록 찬 기운이 발등을 시작으로 피부들을 깨우며 밀려 척추를 지나 머리끝까지 전달된다. 그사이 흥건했던 등줄기의 땀은 온데간데없고, 시리다 못해 아파오기까지 하는 발을 채 5분도 버티지 못하고 꺼내야 했다.


'큰 꿩의비름'을 만나다.


더위가 가시자 주변이 시야에 들어왔다. 한여름의 계곡은 무성한 나무들이 가림막이 되어 그늘을 만들어 주었고, 계곡에 흐르는 차가운 물로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어 약간의 몽환적인 분위기마저 연출되었다. 갑자기 서늘해진 기분에 햇살이 비치는 곳으로 산책을 했다. 바위틈 사이로 아주 작은 5cm 정도 되는 특이한 야생화가 보였다. 궁금해서 휴대폰으로 검색을 했다. '큰꿩의 비름'이었다.


사진출처: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4396221&cid=46694&categoryId=46694


큰꿩의 비름은 그렇게 나와의 첫 대면이 이루어졌다. 이 아이가 정상적으로 자라면 50cm 정도까지 제법 크게 자란다. 야생의 씨앗이 바람에 날려 이제 막 싹을 틔우고 자라고 있었던 것이 내 눈에 띄었던 것이다. 그런 아이를 대려 오기 위해 페트병을 반으로 잘라 아래쪽에 흙을 담아 심고, 위쪽은 혹시 상할까 해서 나머지 절반으로 뚜껑을 만들어 덮었다. 휴가 기간 내내 애지중지 관리하여 아무 탈 없이 우리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정이 토분을 살렸다.


토분을 좋아하기 때문에 항상 토분이 여유 있게 있었고, 그중 조금 크다 싶은 토분을 하나 골라 큰꿩의 비름을 심고 햇살 잘 드는 곳에 두었다. 해를 거듭해 갈수록 덩치가 커진다. 사람들은 큰꿩의 비름이 신기한 듯 물어보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매년 같은 화분에서 자라던 아이들이 이제는 화분이 비좁아 보일 정도록 풍성해졌다.


햇살 뜨겁던 어느 날, 큰꿩의 비름이 심겨진 토분 한쪽이 흘러내려 뱃속을 드러내고 있었다. 고이 간직하면 깨질 것 같지 않던 토분이 세월의 무게에 그만 무너지고 만 것이다. 깨진 화분이라 버리고 싶지만 손때 묻은 정이 아쉬워 한참을 바라보았다. 큰꿩의 비름을 화단으로 옮겨 심었다. 옮겨 심는 내내 고민을 했다.


"아하~!!"

무릎을 탁 치며 나도 모르게 소리를 쳤다. 별게 아니었지만 그래도 깨진 토분을 버리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마음에 서둘러 토분을 되살리는 작업에 돌입한다.


깨진 토분의 조각을 토분 안쪽에 자리 잡아 주고 빈 공간은 깨진 조각들을 올리며 계단을 만들어 준다. 이때 계단 사이를 키 작은 다육이 거처로 마련해 주고 그래도 남는 빈 공간에는 이끼를 심어 마무리를 했다. 위에는 미니 배롱나무를 싶고, 주변을 다육이와 키 작은 야생화로 꾸며 주었다.



꾸며 놓고 나니 토분을 버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잠시나마 뿌듯해진다. 처음이라 좀 부족함이 없지 않지만 나름 두고 볼만하다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좋아하는 토분이 수명을 다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제2의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토분 인생 2막을 실천하는 그 자리에 내가 한몫하고 있다는 것이 뿌듯하다. 꿩은 비록 둥지를 뜨긴 했지만 또 다른 생명이 그 자리를 빛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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