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 중에 시詩는 없다

by 소향

내 글 중에 시詩는 없다

어쩌다 주운 낡은 허물 하나 그 자리에 있었고

성급함이 목졸라 토해놓은 설익은 시간이 있었고

탈수가 빼앗은 생기는 이미 행간을 떠나고 없었다


내 글 중에 시詩는 없다

생각은 이미 고목의 각질이 되었고

의미는 문자들 사이에 부서져 내렸고

욕심이 채워놓은 잉크는 후회만 진하게 뱉었다


고단은 이제 날들의 몫이 될 것이다

마감이 미뤄진 하루가 피로를 주문했던 것처럼

완성이 미뤄진 숙제가 마음을 괴롭힌 것처럼

마르지 못한 잉크는 어둠을 대신할 테니까


내리는 비를 베고 밤을 청해 본다

비가

토닥이는 엄마의 따스한 손길이 되면

자장가 밀고 오던 잠의 나른한 혼돈 속

그 달콤한 순간을 박제하고 싶다


고단이 달콤한 순간일 테니까

시름마저 달콤한 포장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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