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향 Mar 25. 2023

봄은 바람 사이로 숨어왔다.

밤새 숨죽여 내리는 비가 반가운 것은 아마도 기대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정'이라는 것이 기대가 되고, 기다림이 되고, 그리움이 된다.

내가 아는 어느 작가님(?)이 그러셨다.

'몸의 만남이 마음을 길들여 놓은 것이 정(情)이다.'라고.

그 말이 내내 가슴에 남아 가끔씩 생각이 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몸이 봄을 만나 마음을 길들여 놓은 것이다.

흙만 남아있는 맨땅에 뾰족이 올라오는 초록의 생명과 마른 가지에 피가 돌기도 전에 꽃부터 피워 사람의 마음을 길들여 놓은 것이다.

그러니 봄이 기다려질 밖에...

밤이 되면서 비가 그쳤다.

밖이 궁금해서 마당을 둘러보다 생각지도 못했던 꽃을 발견한다.

아직 필 시기가 아닌 줄 알았는데 어느새 튤립이 피었다.

깊어 빠져나오지 못할 것만 같았던 겨울이 사라지고 바람 사이로 숨어 봄이 찾아왔나 보다.

마당 곳곳에 심어놓은 튤립들 중 제일 먼저 올라왔던 아이들은 어느새 꽃봉오리가 소담하다.

조만간 곳곳에 튤립들이 꽃을 피워 벌들을 불러 모을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환하게 밝아온다.

그러니 어찌 기대하고 기다리지 않을 수 있을까.


봄이 되니 마당에 할 일들이 눈덩이처럼 쌓여간다.

장미나무에 거름을 듬뿍 줘야 하고, 병충해 예방을 위해 살충제도 뿌려주고, 새로 좋은 가지를 얻기 위한 전지도 필요하다.

추위에 얼어버린 수국 가지들도 정리가 필요하고, 화분에서 겨울 난 아이들도 이제는 자리를 잡아줘야 한다.

마당을 비워버린 한 해의 공백으로 일감들은 더 많이 늘어났고, 덕분에 주말은 평일보다 더 분주하기만 하다.


아직 마당 식물에 대한 구성이 완전하지 못하기에 구성에 대해 고민도 해야 한다.

미적 감각이 별로 없는 사람이니 고민이 더 많아지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럴 때면 옆지기의 말을 가만히 따르는 것도 한 방법이기도 하다.

어쩌면 회피의 한 방법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비가 그친 봄, 밤의 공기는 눅눅하기만 하다.

대지는 낮동안 깊이 들이마신 비를 '푸우~~'하고 대기로 뿜어내고,  땅거미는 방울들을 모아 한 땀 한 땀 세상에 채워놓는다.


짙게 내려앉은 안개  뒤에서 오랜만에 느긋한 밤의 시간을 누려본다.

그때, 앞집 카페의 문이 열리고 손님이 들어간다.

그 틈에 새어 나온 커피 향이 진하게 유혹의 손짓을 한다.

깊은 호흡으로 정신을 차려보려 하지만 유혹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다.

가만히 대문  손잡이를 붙잡는  나를 본다.

마음이 벌써 주문을 넣고 있나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제야 시작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