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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향 Jul 15. 2022

이제야 시작입니다.

주택에 사는 맛

3월에 담장을 헐어낸 후 가림막으로 4개월을 버텼다.

넝마처럼 해어져서 속살 훤하게 내놓고 민망하게 지내던 날들이었다.

기다리다 지쳐 포기를 고민하던 어느 날이었다.

"오래 기다리셨네요. 내일부터 공사 시작할 겁니다."

"그래요? 우리는 내일 공사 포기한다고 전화드리려고 했는데요."

"하하하 하루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네요?"

"정말, 담도 우리가 쌓고 치우려고 했어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렇게 다음날이 되었다.

잠결에 밖이 소란스러워 부스스한 눈으로 일어나 대문을 열었다.

아직 어둠도 완연히 가시지 않은 새벽, 공사를 하기 위해 인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늦잠을 잤나 싶어 시계를 살펴본다.

'5시 30분, 이 사람들은 잠도 없나?'

공사를 시작한다니 반갑기는 했지만 새벽 2시가 넘어야 잠이 드는 나는 오늘 하루가 길 것만 같다.

서둘러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오늘 작업할 일정들을 확인하고는 서둘러 집안으로 발길을 돌렸다.

다시 잠들기는 글렀다.

아직도 잠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화장실로 가서 대충 샤워를 한다.

열대야로 인해 샤워기는 찬물을 틀었음에도 물이 차갑지 않았다.

서둘러 씻고는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든다.

시원한 커피 한 잔 씩 마신 사람들은 힘이 나는지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간다.

그 틈에 아내는 아직도 남아있는 화분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 바쁘다.


그렇게 공사는 시작되었다.

거푸집이 뚝딱 완성되고, 레미콘이 후루룩 콘크리트를 쏟아내고, 사람들의 손길이 오갔다.

그리고 또 적막이 흐른 후에야 기초가 완성되었다.

한쪽 담 중에서 외벽이 완성되고, 내벽이 진행된다.

아내는 외부보다는 내벽 쪽에 포인트를 주고 싶었나 보다.

벽돌을 깨서 깨진 단면이 돌출되도록 조적 하기를 원했다.

건설 사장님은 인허가가 늦은 죄로 공기가 늘어나고 일이 많아짐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깨진 단면이 보이는 담장이 서서히 쌓여가고 있다.

장마가 시작되고 비 오는 날은 거의 없지만 올 듯 말 듯 공사를 방해하는 날씨로 시간만 계속 흐른다.


오늘도 여전히 담장 공사는 멈췄다.

다른 일정들과 비로 인해 젖은 벽돌 등등 여전히 변수가 많다.

그래도 어쨌거나 공사가 시작되니 조만간 끝은 날 것 같다.

불투명한 시간을 기다리는 것보다 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니 막막하지 않아 참 다행이라 생각해 본다.


아직 마무리는 멀었지만 마당에 남아있는 꽃으로 카메라에 담아본다.

집 떠난 아이들이 돌아올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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