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 26일.
처음 블로그 계정을 개설하고 닉네임을 '소향'으로 활동을 시작했었다. 어찌 보면 상당히 오랜 기간 내가 글을 썼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글보다 방학이 더 길었던 시간들이었다. 그 긴 시간을 함께해 왔던 닉네임을 지난달 '병아리콩'으로 변경했었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자의든 타의든 어쩔 수 없이 '병아리콩'으로 한 달을 버텨야 변경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지금까지 세컨드닉네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낯설고 어색함. 아마도 근 20년을 따라다니던 이름처럼 익숙한 내 꼬리표가 바뀌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바쁘다는 핑계로 글을 자주 올리지 못하지만 그래도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사용한 정이 조금은 들었나 보다. 울퉁불퉁하고 찌그러진 모양의 병아리콩이 어쩌면 내 모습과 비슷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리고 나름의 매력을 느끼는 중이다. 원래 못생긴 것이 가만히 보면 예쁘고, 두고 볼수록 정이 가는 법이다. 어른들이 '진국이다.'라고 표현하시는 것은 이런 이유가 아니겠나 싶다.
그렇다고 닉네임을 '병아리콩'으로 변경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쓰다 보니 생각보다 괜찮다는 것일 뿐이다. 20년 가까이 사용하던 닉네임을 개명하듯 하루아침에 바꾸는 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쩌다 바뀐 닉네임이지만 한 달을 그냥 쓰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사용했고, 점점 익숙해져 가는 중인 것이다.
주변에 이름을 개명한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런 사람들은 나름의 사연이 숨어 있다. 입이 근질거리는 사람들은 굳이 묻지 않아도 미주알고주알 다 털어놓는다. '이름이 촌스러워서...', '너무 흔한 이름이라서...', '계속 사용하면 어찌 된다고 해서...' 등등 사소한 사연부터 샤머니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유에서다. 어쩌면 그만큼 절실한 뭔가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심심해서 개명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테니까.
이제 '병아리콩'을 보내야 할 시간이다. 한 달, 기다리는 시간이 제법 길게 느껴지기는 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시간이 종지부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내 삶을 기웃거려 본다. 영원할 것 같은 내 삶에도 언젠가는 정리해야 할 날이 존재할 것이다. 언제인지를 알 수 없기에 그저 막연히 생각을 하고 있지만 누구에게나 반드시 다가올 날이니까. 그때에 자연스럽고 무던하게 현실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면 좋겠다.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누구나 다 외면하고 있는 그 순간이 오롯이 평안하기를 바라본다.
휴대폰으로 별을 촬영해 본다. 아주 작은 그러나 반짝이는 모습을 찍기 위해 줌으로 최대한 당겼다. 분명 하나의 점과 같이 반짝이기만 할 줄 알았던 별에 꼬리가 붙어있다. 혹시나 해서 여러 번 촬영했는데 꼬리는 매번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신기함에 잠시 별과 숨바꼭질을 한다. 줌으로 잡은 별은 작은 호흡에도 시야를 벗어나기 때문에 방심할 수 없다. 긴장해야 잠시의 스쳐가는 찰나의 순간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 삶도 마찬가지다. 늘 준비하고 지켜보고 있어야 기회가 주어질 때 놓치지 않고 잡을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기회란 예고하고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방심하는 틈에 소리도 없이 지나가니 말이다.
오늘 병아리콩을 보내며 두서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생각은 아쉬움과 시원함의 공존이지만 그런 가운데 이런저런 생각들이 끼어들었나 보다. 그래도 밤, 별, 그리고 식지 않은 호흡이 있어 감사할 뿐이다. 아직 밤은 찬바람이 기웃거리고 있다. 따뜻한 차 한 잔이 생각나도록 말이다. 그래도 지금은 자야 할 시간이 다가오니 참아야겠다. 마당에 불을 소등하고 긴 여운을 남기며 조용히 현관문을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