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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향 Nov 19. 2023

군고구마

가을을 손질한다

마지막까지 쥐어짜 낸 물감들

농도를 놓쳐버린 나뭇잎들을 자르다 보니

어느새 손가락엔 시린 계절이 깊숙이 박혀버렸다


갈대와 억새가 논쟁의 중심이었지만

더 깊어진 것은 야행성이었을까

아주 가끔 달이 손가락 사이를 드나들었고

그때마다 물감은 짙어졌다가 흐려졌다가


물속은 고요하기만 하다

기억이 내려놓은 그물에 걸린 것은

뒤늦은 후회가 뱉어놓은 구겨진 대립들

축축함이 배어 나오는 사춘기의 배회

곳곳에 멍든 얼룩들이 물거품처럼 비린내를 토해낸다


아직 성장통이 완성하지 못한 귀가의 시간

손에 꼭 쥔 몰래 열어놓은 행방의 실마리

그 사이에서 눈치와 줄다리기를 한다


황급히 외상으로 불씨를 빌린다

아직 겨울은 아니니

잘 쌓아놓은 장작을 방패로

몇 개의 뭉툭한 위로를 던져 놓는다


포장이 까맣게 염색을 손에 물들인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속살 노란 감정

시침과 분침의 만남이라면

온기가 붙잡은 밤은 아직 자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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